UPDATED. 2024-03-29 08:55 (금)
‘술 마시고 우리가 하는 말’ 한유석 작가 “술은 늘 뒤에 있는 친구이자 인생을 거스르는 마법”
‘술 마시고 우리가 하는 말’ 한유석 작가 “술은 늘 뒤에 있는 친구이자 인생을 거스르는 마법”
  • 장혜승
  • 승인 2020.06.11 14: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유석 작가

"술을 마시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는, 어쩌면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을 잊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술은 적당한 것이 좋다고 말을 한다. 그러나 적당한 술로는 적당한 이야기밖에 할 수 없지 않은가."(270쪽)

늘 사람에게, 사랑에, 기억에 자리를 양보하면서 적당히 살다 보면 목마름이 생기기 마련이다. 적당한 선을 넘고 싶어진다. 25년간 광고대행사에서 광고기획을 하다 제주도에서 카페 겸 술집 '술의 식물원'을 운영하는 한유석 대표도 '인생을 거스르는 술의 마법'으로 갈증을 채운 사람이다. '술 마시고 우리가 하는 말'이라는 책을 낸 작가이기도 한 한 대표를 만나 술 마시고 하고 싶은 말에 대해 들어봤다.

-25년간의 직장 생활을 접고 제주도에 ‘술의 식물원’을 여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술의 집’이라는 꿈 때문입니다. 육지에서는 술을 파는 술집을 다니며 술을 마시는 사람이었고, 제주에서는 ‘술의 식물원’이라는 술집에서 술을 파는 사람으로 살고 있습니다. 술의식물원은 술집 이름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만들 양조장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몇 년 뒤에는 술이 익어갈 ‘술의 집’을 만들어 술을 만드는 사람으로 살고자 합니다. 제 삶이 이렇게 다양한 ‘술의 집’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유석 작가가 운영하는 술집 겸 카페 '술의식물원'. 한유석 작가 제공
한유석 작가가 운영하는 술집 겸 카페 '술의식물원'. 한유석 작가 제공

 

-서울에서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으셨나요.

“서울에서는 사람의 숲에서 살았습니다. 광고기획 업무를 했기에 하루에 전화와 메일이 50건 이상이고, 하루의 절반은 광고주미팅, 업무미팅, 기획미팅, 제작미팅 등등 사람들과 만나고 부딪히는 회의의 연속이었습니다.
제주에서는 자연의 숲에서 살고 있습니다. 출퇴근길이 바다와 숲의 길입니다. 가끔 찾아오는 마음의 어두움도 자전거로 해안로를 달리거나, 숲을 산책하면 어느새 사라집니다. 서울에서는 사람이 살아가는 힘이었다면 제주에서는 자연이 살아가는 힘입니다.
저는 왁자지껄한 삶보다는 고요한 삶이 맞는 사람입니다. 어울리지 않는 삶을 살았기에 서울에서는 힘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주에서는 제 본성에 맞는 삶을 살고 있기에 이 평화로운 삶을 서울에서의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과 바꿀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한유석 작가의 '술 마시고 우리가 하는 말'. 한유석 작가 제공
한유석 작가의 '술 마시고 우리가 하는 말'. 한유석 작가 제공

 

-책 ‘술 마시고 우리가 하는 말’을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고등학교 시절 문예반이었고, 신문방송학과를 갔지만 국문과를 갈까도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글에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포기하고 그저 읽는 사람으로 만족하고 살았습니다. 그래도 내가 쓴 책 한 권은 갖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을 때, 일로 출판사 대표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술자리에서 대표님께서 에세이를 내자는 제안을 주셨습니다. 좋아하는 술과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 사람들이 버무러져 ‘술 마시고 우리가 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제가 만났던 술과 사람들의 이야기가 책의 내용입니다. 술 마시고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고맙다’는 말이었습니다.”

한유석 작가가 운영하는 술집 겸 카페 '술의식물원'. 한유석 작가 제공
한유석 작가가 운영하는 술집 겸 카페 '술의식물원'. 한유석 작가 제공

-‘술은 인생을 거스르는 마법이다. 술로 지금의 내가 이전으로 돌아가 그때의 나를 만나고 위로한다’고 하셨는데 작가님이 위로해주고 싶은 시절의 나는 어떤 시절의 나인가요?

“어느 시절의 ‘나’라기 보다는 이전으로 돌아가 위로하고 싶은 ‘나’는 사람을 잃었을 때의 ‘나’입니다. 좋아하는 친구, 동료, 사랑하는 이를 의도하지 않았는데 상처주고 잃어버렸습니다. 관계가 힘들어져 손을 놓기도 했습니다. 아직은 가족을 잃지는 않았지만 아버지가 5년째 병원에 계시기에 아버지를 잃는 일이 두렵습니다. 사람을 잃는 일이 제게는 가장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고, 일입니다. 그래서 돌아가 위로하고 싶은 ‘나’는 사람을 잃은 ‘나’입니다.”

-술을 마시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는 어쩌면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을 잊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고 하셨는데 작가님이 잊고 싶은, 스스로에게 던지신 질문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나이를 먹으며 타협하고, 포기하는 것들이 늘어납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손해보지 않고, 안전한 길을 택하려는 계산 때문이지요. 술을 마시면 하지 않았던 일, 가지 않았던 길이 생각납니다. 그러면 제게 묻습니다. ‘괜찮은가’, 정말 하지 않고, 가지 않아도 괜찮은지 묻습니다. 그중에 절실하게 아쉬운 것들, 속상한 것들이 있습니다. 자꾸 묻다 보면 그런 것들은 하게 됩니다. 가게 됩니다. 아주 뒤늦게 미안함을 전하게 되고, 말하지 못한 고백을 하게 되고, 용기를 내서 시작하게 됩니다.
제주로 온 것도 술을 마시며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괜찮은가’를 물었기 때문입니다.”

-술을 좋아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요.

“술을 진짜로 좋아하는 이유를 짧게 쓸 수는 없기에 책에 썼습니다. 
‘친구, 늘 뒤편에 있을게. 앞편은 사람의 자리니까. 사랑의 자리니까. 기억의 자리니까.’(395쪽) 술은 제 뒤에 있기에 좋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