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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희의 박물관 여행]감상하는 전시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박찬희의 박물관 여행]감상하는 전시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박찬희
  • 승인 2020.07.06 13: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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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림박물관
감상에 초점을 맞춰 전시실을 흥미롭게 구성한 박물관
관람객의 동선이 단순해 유물에 몰입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
박물관이 멈추지 않고 방향성 되물어야
호림박물관 신사분관 제3전시실. ⓒ호림박물관
호림박물관 신사분관 제3전시실. ⓒ호림박물관

박물관마다 고유한 전시 방향이 있다. 박물관의 정체성과 소장 유물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방향이 설정된다. 역사박물관이라면 기본적으로 시대사에, 민속박물관이라면 생활사에 초점을 맞춘다. 다양한 분야의 유물을 소장한 박물관이라면 여러 유물의 특성을 두루 살리는 방향으로 설정한다. 박물관 전시실의 구성도 관람객에게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에 따라 달라진다. 소장 유물의 이해를 돕는 목적이 크다면 다양한 설명 자료들을 구비한다. 반면 유물의 감상에 초점을 맞춘다면 이해를 돕는 전시실과는 구성 방식이 달라진다. 감상에 초점을 맞춰 전시실을 흥미롭게 구성한 박물관 가운데 한 곳이 호림박물관이다. 

호림박물관은 다양한 분야의 유물을 소장한 종합박물관이다. 소장품 가운데 토기, 불교 전적, 도자기가 널리 알려졌고 특히 도자기는 걸작들이 많다. 이러한 유물들은 신림본관과 신사분관 두 곳에서 전시한다. 신림본관은 다양한 분야의 유물들을 골고루 전시하고 신사분관은 성격을 달리해 명품 도자기를 전시하고 기획전을 진행한다. 특히 신사분관 4층에 있는 제3전시실은 명품 도자기의 감상에 초점을 맞추었다. 

전시실의 전체적인 모습은 원통을 반으로 자른 모양과 비슷하다. 사각형으로 만든 일반적인 박물관의 전시실과 진열장 배치가 다를 수밖에 없다. 벽부장(벽에 붙은 진열장)과 벽에서 떨어진 단독 진열장 두 종류를 벽면의 곡선과 직선에 맞춰 배치하였다. 두 가지 형식으로 구성된 진열장은 전시에 잔잔한 변화를 주었다. 전시실 중앙에는 따로 진열장을 설치하지 않고 의자를 놓아 시원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관람객이 유물을 보며 이동하는 동선은 복잡하지 않고 산뜻하고 단순해 관람객이 유물에 몰입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전시에서 유물을 부각시키는 극적인 장치는 조명이다. 일반적인 전시실이 실내가 훤히 보일 정도로 밝은데 비해 이곳은 전체적으로 어두운 편이다. 관람객은 어두운 전시실로 들어가는 순간 조심스러워지고 차분해진다. 눈길은 여러 곳으로 분산되지 않고 유물에 집중된다. 집중적으로 조명을 받은 유물은 연극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연 배우 같다. 전시실의 조명은 유물 한 점 한 점을 부각시키고 관람객의 집중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설정되었다. 

진열장 내부도 관람객이 유물을 감상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유물 한 점 한 점을 돋보이게 하려면 유물 사이의 간격이 적절해야 한다. 이곳에서는 유물 사이의 간격이 넉넉해 관람객이 다른 유물에 방해받지 않고 오롯이 그 유물을 감상하기에 좋다. 유물은 비교적 높낮이의 변화가 크지 않도록 전시했고 배열도 대부분 옆으로 나란히 맞추려고 했다. 언뜻 보면 변화가 적고 밋밋해보이지만 관람객들이 유물을 보기에 안정적인 전시 흐름을 만들어 준다. 

일반적인 전시실과 다른 점은 또 있다. 전시실에 전시와 유물을 설명하는 다양한 안내문이나 설명 자료들이 별로 없다. 이름표 옆에 놓인 해당 유물의 설명 자료가 전부다. 최소한의 것만 갖추었다. 특히 이 부분에서 전시실의 정체성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만약 연령대가 다양한 관람객이 온다고 가정했다면 전시실에 좀더 많은 안내문과 설명 자료들이 설치되었을 것이다. 이곳에서는 주로 도자기에 관심있는 관람객에게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이러한 요소들을 대폭 줄였다. 

전시는 청자, 분청사기, 백자 순으로 배치하였다. 청자는 벽부장과 단독 진열장을 이용해 전시하였다. 청자는 다른 도자기보다 훨씬 빛에 예민하다. 마치 빛을 빨아들이는 스펀지와 같아서 청자를 전시할 때는 특히 빛에 신경을 써야 한다. 지나치게 붉은 빛이 내려오거나 푸른빛이 내려오면 청자는 붉은색이나 푸른색으로 물든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되면 관람객은 청자를 눈 앞에 두고도 고려 청자 특유의 비색을 찾아보기 어렵다. 때문에 관람객이 청자의 비색을 찾고 느낄 수 있도록 박물관에서는 각별히 신경을 쓰며 이곳 역시 마찬가지다.

사진2. 호림박물관 신사분관 제3전시실 청자 전시. ⓒ박찬희
호림박물관 신사분관 제3전시실 청자 전시. ⓒ박찬희

청자 가운데 오리 모양으로 만든 연적(청자압형연적)과 생김새가 특이한 정병(청자양각포류수금문정병)을 먼저 만난다. 집중적으로 조명을 받은 연적과 정병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주인공처럼 반짝거린다. 나머지 부분은 어두워 관람객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두 점에 집중된다. 두 점 모두 고려 청자가 최고의 비색을 자랑하던 시기의 작품이다. 연적과 정병의 색감은 조금씩 다르지만 고려 청자 특유의 깊고 푸른색이 일품이다. 정병은 선의 흐름이 유연하고 세련되었으며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잡혔다. 오리 모양 연적은 도자기가 아니라 조각 작품을 보는 것처럼 실감난다.

사진3. 호림박물관 신사분관 제3전시실 분청사기 전시. ⓒ호림박물관
호림박물관 신사분관 제3전시실 분청사기 전시. ⓒ호림박물관

분청사기가 청자의 뒤를 이었다. 분청사기는 긴 벽부장에 모두 전시해 다양한 분청사기를 연이어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 유물 사이는 적당히 간격을 벌렸고 한 점 한 점마다 집중 조명을 비춰 유물들을 부각시켰다. 유물을 받치는 받침대를 비교적 낮게 만들어 진열장 안에 잔잔한 변화를 주었다. 분청사기는 자유롭고 생동감 넘치는 문양이 특징이다. 긴 진열장 안에 다양한 기법으로 문양을 표현한 분청사기가 연달아 전시되어 한편의 파노라마를 보는 것 같다. 

상감 기법으로 문양을 표현한 병에서 파노라마가 시작된다. 물결 위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를 표현한 이 유물(분청사기상감파어문병)은 물속을 들여다 보는 듯 생동감이 넘친다. 이어지는 분청사기에서도 문양들은 생기발랄하고 때로는 파격적이다. 파노라마는 소고처럼 양쪽이 동그랗게 생긴 편평(분청사기박지연어문편병)에서 절정에 이른다. 생김새도 당당하고 문양 또한 예사롭지 않다. 연꽃 사이에서 노니는 물새와 물고기가 표현되었는데, 처음에는 복잡한듯 보이지만 조금 지나면 한가하고 여유로운 연못의 풍경을 목격하게 된다. 그림같은 풍경을 보고 있으면 어느새 마음이 맑아진다.

마지막은 백자가 장식한다. 백자는 전시 유물 가운데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 순백자와 청화백자 가운데 아무런 문양이 없는 순백자를 먼저 전시하였다. 박물관이 소장한 백자 가운데 특히 뛰어난 순백자가 많아 전시된 유물도 청화백자에 비해 순백자가 많다. 백자는 청자와 달리 조명을 받으면 더욱 빛나 멀리서 봐도 존재감이 확실하다. 전시된 백자 가운데 덩치가 작은 유물도 집중 조명을 받아 큰 유물 못지 않은 존재감을 발휘한다.

사진4. 호림박물관 신사분관 제3전시실 백자 전시. ⓒ박찬희
호림박물관 신사분관 제3전시실 백자 전시. ⓒ박찬희

백자 전시의 하이라이트이자 전시실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진열장이다. 큰 진열장 안에 단 두 점만 전시되었다. 덩치가 우람한 유물도 아니다. 그런데 이 두 점은 큰 진열장에 비해 왜소해 보이거나 눌려 보이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다. 또 내뿜는 기운이 대단하다. 두 점 모두 백자의 역사를 대표하는 걸작들이다. 오른쪽에 전시된 청화백자 항아리(백자청화매죽문호)는 당당한 생김새, 맑고 깨끗한 색, 뛰어난 솜씨로 그린 매화와 대나무가 일품이다. 왼쪽에 있는 백자 밥그릇(백자반합)은 가장 뛰어난 조선 전기의 순백자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다. 명작 두 점이 큰 진열장을 이긴다.

전시실을 둘러보다 보면 유물과 직접적으로 대면하고 대화하고 교감하는 느낌이 든다. 이처럼 박물관이 추구하는 방향에 따라 관람객과 유물과의 관계가 달라진다. 박물관이 멈추지 말고 방향성을 되물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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