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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혁신 특집좌담 (3)] 서로를 향한 적대시 문화가 뒷담화의 자양분
[사회혁신 특집좌담 (3)] 서로를 향한 적대시 문화가 뒷담화의 자양분
  • 장정안
  • 승인 2020.07.28 14: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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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두번째부터 박상병 정치평론가, 좌장을 맡은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 손애경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융합콘텐츠학과 교수, 정재룡 전 국회 수석전문위원, 성봉근 서경대학교 법학과 교수, 이경선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행정법무학과 교수.
왼쪽 두번째부터 박상병 정치평론가, 좌장을 맡은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 손애경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융합콘텐츠학과 교수, 정재룡 전 국회 수석전문위원, 성봉근 서경대학교 법학과 교수, 이경선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행정법무학과 교수.

■ 정재룡
정이 많아서 그렇다고 하지만 오히려 정작 한국사회가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뒷담화에 천착하는 한국 사람들의 의존성과 자존감이 매우 낮은 상태이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달리 말해 열등감, 위화감, 상대적 박탈감, 질투심이 많다고 할 수 있겠다. 다른 이의 사생활, 프라이버시, 소소한 생활상을 일일이 품평하고 수근거려야 비로소 속이 후련해지는 행태는 정이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비정이다. 뒷담화의 당사자조차도 뒷담화당할까봐 무리짓고 있는 자리를 쉽게 떠나지 못하는 모습들은 비극에 가깝다. 

■ 박상병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아주 대표적인 뒷담화와 모략의 사례 몇 가지를 찾아볼 수 있다. ‘기축옥사(1589년)’의 경우다. 황해도 관찰사 한준(韓準)의 장계(狀啓)와 구봉 송익필의 음모와 모략을 주목해 볼 수 있다. ‘정여립 모반사건’은 선조의 콤플렉스와 구봉의 절망과 송강 정철의 원한이 겹쳐 일어난 음모적 사건이다. 송강에 의해 동인 세력이 사실상 초토화된 것은 음모와 모략 시대에 절정을 이룬 상징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 조선 최초의 방계(중종의 서손) 국왕인 선조의 콤플렉스와 무능이 더해서 최악의 참화가 빚어진 것이다. 음모와 모략이 분출하고 권력이 이를 이용해서 정치적 이익을 도모한다는 것은 곧 정치사회적으로 갈등과 분열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 이경선
뒷담화는 ‘끌어내리기’이기도 하다. 질투심에서 사적 감정에서, 못마땅함에서, 이질적 존재이기 때문에 나오는 험담, 악평이 아니라, 상대방의 잘난 점, 훌륭한 점, 성공, 인기 등을 평가절하하고 궁극적으로 자신보다 못한 존재로 내려놓거나, 자신이 올라서려는 일종의 물귀신 습생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더 잘낫다고 인정받고 싶어 안달난 유아적 발로이기도 하다. 조금 배웠다는 연구자들 조차도 다른 연구자를 유난히 헐뜯는 SNS를 올리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 젖어있다. 나름 엘리트층에 진입하고 출세했다는 천박한 욕망에 빠져 타자를 깍아내리고 SNS에 연일 뒷담화와 자랑질을 늘어놓는다. 역설적이게도 열등한 자아와 낮은 자존감이 엘리트주의와 만나 졸부 지식인의 민낯을 보여주는 듯하다.     

■ 박상병
한국의 정치영역에서 뒷담화와 모략이 전횡하게 된 배경을 몇 가지로 나눠 이해해볼 수 있다. 우선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일제강점기에서의 국권상실은 공적 영역에 대한 불신과 절망을 의미했고, 공적영역의 붕괴는 뒷담화와 모략이 분출하는 정치적 토양이 되었다.
그리고 한국전쟁과 분단 과정에서 서로 간의 적대의식이 강화되었고, 적군과 아군의 편가르기가 강요되었다. 서로를 향한 적대시 문화는 공동의 적에 대항하기 위한 아군의 결속력 강화 수단이 되었다. 뒷담화와 음모, 모략은 그 자양분이 되었다. 이러한 적대시 문화는 군사독재정권의 권력유지를 위한 노골적인 수단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에 대항해서 민중은 오히려 저항의 담론으로 뒷담화에 빠져들기도 했다. 반면에 권력집단은 그들의 권력기구를 동원한 언론 플레이로 뒷담화와 모략, 음모를 사회적으로 확산시키면서 사회적 갈등과 모략의 시대를 심화시켰다. 민주화 이후에는 뒷담화와 모략의 기술이 기득권 세력의 각 부문별 저항 단위로 이동하면서 정치권을 비롯해 권력기구․언론․사회단체 등으로 그 범위가 확산된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도 있다.
구조적 배경으로 보면, 중앙집권적 ‘승자독식 구조’가 뒷담화와 음모를 용이하게 만드는 풍토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대통령 권력을 장악한 그룹이 정치권력은 물론 정보․언론․여론 등 모든 것을 주도했다. 또한 거대 양당체제가 적대적 공생관계의 기본 프레임으로 지속되면서, 진영 내에서는 상대방을 향한 뒷담화와 음모가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구조가 고착화됐다. 언론․지식․시민사회․지지층 등도 정치적으로 양분된 소통구조를 벗어나지 못했다. 음모와 모략이 던진 하나의 불씨가 금세 들불처럼 번질 수 있는 조건이 된 것이다.    
경제 및 사회적 배경으로는 미디어 채널의 다양화 및 유투브 등의 매체가 대중의 관심과 조회수 등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도모할 수 있게 됐다. 따라서 시청률․구독자수․조회수 등이 곧 경제적 이익으로 연결되는 미디어 환경이 뒷담화와 모략의 문화를 자극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친정부 성향의 언론 보도에 대한 강한 불신이 가중되면서 뒷담화와 음모를 생산해 내는 다른 비판적 언론에 더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SNS 등을 통해 개인 및 소규모 그룹끼리 연결된 네트워크 사회가 되면서 뒷담화 문화가 최적의 유통 시스템을 만나게 된 것이다.

● 좌장 김만흠 
뒷담화를 어찌 보면 표현의 자유와 연결지어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표현의 자유 속에서 뒷담화는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 성봉근 
헌법 제21조 제1항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특히 표현의 자유에 대하여는 헌법 제21조 제2항에서 허가제를 금지하도록 하여 허가제를 금지하지 않는 다른 기본권들과 구별하고 있다. 물론 표현의 자유라고 하더라도 무제한적인 것이 아니라, 헌법 제21조 제3항에서 보듯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와 같은 제3자의 이익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와 같은 공익 등 이익형량을 통하여 제한받을 수 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하여는 원칙적으로 최대한 보장하고 예외적으로 최소한 제한하는 접근방식이 타당하다고 할 것이다. 
실용주의적인 사고는 법이 현실에서 규범력과 설득력 및 문제해결능력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목표를 분명히 하고, 특정한 이익을 위하여 법이 봉사해서는 안 되고, 공익과 사익, 사익과 사익 간에 이익형량을 통하여 이해관계의 조절과 조화를 목표로 하는 것을 수용하여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하지만 실용주의적 사고가 심화되면 지나치게 경제적인 인간의 모습을 추구하게 되어 이기적인 각종 비방들마저 이익을 위한 정당한 행동이 될 수 있어 문제이다. 
이러한 법철학적 고민들 속에서 표현의 자유와 제한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갈등구조 속에서 주목하여야 할 것은 하버마스의 대화이론이라고 생각한다. 
하버마스(Habermas)의 대화이론은 행정작용의 수단들이 정보통신력의 발달로 변화하면서 국민들을 통치의 객체로 삼아 감시하고 통제하는 방향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국민을 대등한 행정의 협력자로 취급하여 대화와 소통의 상대방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법철학적인 해답을 시사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근본적인 문제는 대립되는 세계들 사이에 소통이 어려운 장벽들이 존재하여 갈등과 대립의 구조를 가진 문제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해결해 나가기 위한 타당한 방법론의 설정이 가장 중요한 관건이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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