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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다시 박물관을 묻다
지금, 다시 박물관을 묻다
  • 박찬희
  • 승인 2020.08.12 0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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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0일 국립중앙박물관 디지털 실감 영상관이 개관했다. 영상관1에서는 관람객이 참여하는 책가도 영상(인터랙티브 미디어)과 4가지 주제의 입체감 넘치는 영상(프로젝션 맵핑)이 상영된다. 영상관2에서는 선명한 터치스크린 영상인 태평성시도(고해상도 인터랙티브 미디어)를 만나고 3가지 주제의 가상현실(VR) 체험이 진행된다. 고구려실 안 영상관3에서는 고구려 벽화 무덤의 입체 영상이 펼쳐진다.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경천사 십층석탑에는 외벽 영상(미디어 파사드)이 구현된다. 박물관이라기보다 어느 첨단 기술 박람회장을 둘러보는 느낌이다. 

시대의 변화에 무심할 것 같던 박물관이 디지털 실감 영상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근래 영상에 익숙하고 디지털 미디어 기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사람들이 대폭 늘어났다. 한편 디지털 미디어는 급속도로 발달해 상상을 현실로 만들었다.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여러 박물관에서는 박물관의 시공간적인 제약을 극복하고 박물관을 어려워하는 관람객에게 새로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방법으로 디지털 미디어에 주목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가 디지털 실감 영상관의 개관으로 이어졌다.

관람객이 전시실에서 유물을 만나는 방식과 비교해보면 실감 영상의 특성이 분명해진다. 외벽 영상이 진행되는 경천사 십층석탑을 제외한 나머지 실감 영상관에는 실재 유물이 없다. 대신 그곳에서 만나는 모든 영상에는 유물이나 유적 혹은 박물관 속 공간이 등장한다. 전시실에서는 관람객이 유물에 한걸음 더 다가가야 유물과 교감이 이루어진다. 반면 실감 영상관에서는 관람객이 그곳에 들어서는 순간 영상이 관람객을 휘어잡는다. 화려한 색감, 강렬하고 빠른 화면, 생생한 현장감이 눈을 사로잡고 배경 음악과 효과음이 귀를 자극하고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관람객의 행동과 몸의 반응도 다르다. 전시실에서 관람객은 동적이라기보다 정적이기 쉽다. 반면 실감 영상관 특히 참여형 영상과 가상현실 체험 코너에서는 적극적으로 몸을 움직인다. 전시실이 아는 만큼 보이는 곳이라면 영상관은 특별한 지식 없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전시실에서는 사전 지식, 설명글, 관찰, 감상을 바탕으로 관람객이 직접 유물과 마주하는 반면 영상관에서는 유물을 재해석한 영상이 보여주는 세계를 체험한다. 전시실이 관람객에게 다가서서 알아가고 감상하는 즐거움을 준다면 실감 영상관은 직접 해보고 몰입하는 즐거움을 준다.

디지털 실감 영상관3. ⓒ박찬희

영상관 가운데 가장 먼저 살펴볼 곳은 영상관3이다. 이곳에서는 <돌벽 위에서 만난 고구려>라는 이름으로 대표적인 벽화 무덤인 안악 3호 무덤, 덕흥리 무덤, 강서대묘를 다루었다. 벽화 무덤은 고구려를 대표하는 유적이지만 갈 수 없는 곳이 많고 갈 수 있어도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때문에 벽화 무덤의 구조가 어떻게 생겼는지, 또 벽화는 어떻게 배치되었는지 알기란 무척 어렵다. 또 안다고 해도 실제로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에 현장감이 없을 수밖에 없다. 영상은 마치 관람객이 직접 무덤 안으로 들어가 눈앞에서 곳곳을 살펴보는 것처럼 입체적으로 구성되었다. 영상이 끝나면 벽화 무덤의 구조가 머릿속에서 선명하게 그려지고 따로 떨어져 인식되던 벽화들이 전체적인 구조 속에서 재배치된다.

디지털 실감 영상관1. ⓒ박찬희

영상관1은 영상관 가운데 가장 넓다. 공간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박물관 소장 유물 가운데 이야기가 풍부하고 색감이 화려한 그림을 바탕으로 영상을 만들었다.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자동문이 열리는 순간 넓은 영상관이 시야에 들어온다. 높이 5미터, 길이 60미터 위에 펼쳐지는 입체적인 영상은 순식간에 관람객을 빨아들인다. 금강산 그림에 바탕을 둔 <금강산에 오르다>, 정조의 화성 행차 기록과 그림에 바탕을 둔 <왕의 행차, 백성과 함께 하다>, 시왕도에 바탕을 둔 <영혼의 여정, 아득한 윤회의 길을 걷다>, 요지연도에 바탕을 둔 <신선들의 잔치>가 교대로 상영된다. 이곳의 영상은 유물을 활용한 디지털 미디어 아트로 관람객이 실제 그곳에 있는 듯 생생하다. 

4개의 영상은 조금씩 느낌이 다르다. <금강산에 오르다>는 계절마다 달라지는 금강산 곳곳을 편안하게 여행하는 기분이다. <왕의 행차>는 정조의 화성 행차가 어머니의 환갑잔치를 위해서였던 만큼 떠들썩한 분위기가 곳곳에서 묻어난다. <영혼의 여정>은 불교의 사후 세계관에 바탕을 두었는데, 마치 관람객이 망인과 같이 지옥을 가는 것처럼 생생하다. <신선들의 잔치>는 신비롭고 환상적이며 영상을 보는 동안 관람객은 성대한 생일잔치에 초대된 손님이 된 듯하다.

디지털 실감 영상관2. 태평성시도. ⓒ박찬희

앞에서 본 두 종류의 영상이 보고 듣는 면에 집중했다면 책가도와 태평성시도는 관람객과 그림 사이의 접속을 중요시했다. 책가도는 영상관1의 앞부분 거대한 벽면에 자리를 잡았다. 관람객이 태블릿 PC를 이용해 책가도에 원하는 장면을 넣도록 만들었다. 이때 책가도는 관람객이 만들어가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전시물이다. 영상관2에 있는 태평성시도는 다른 방식을 적용하였다. 고해상도 영상을 구현해 조선 후기의 생활상을 선명하게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다양한 생활상 가운데 흥미로운 요소를 게임으로 활용해 관람객이 태평성시도 앞으로 다가가도록 만들었다. 

디지털 실감 영상관2. 가상현실 체험. ⓒ박찬희

가장 적극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곳은 영상관2의 가상현실 체험 코너다. 이곳은 단지 눈으로 가상현실을 실감 나게 체험하는 것에서 벗어나 온몸을 움직여야 한다. 궁금하지만 경험할 수 없는 보존과학실(말 탄 사람 모양 토기의 보존 처리), 관람객이 갈 수 없는 보물 창고인 박물관 수장고, 유물의 디테일이 살아있는 감은사 삼층석탑 사리장엄구 등 모두 3개의 주제로 운영된다. 체험이 끝나면 체험한 유물이나 공간을 강하게 기억한다.

경천사 십층석탑 외벽 영상. ⓒ박찬희

실감 영상의 대미는 경천사 십층석탑 외벽 영상이 장식한다. 그동안 경복궁 경회루, 전주성 풍남문, 덕수궁 석조전, 수원 화성 화홍문 등 야외 문화재에 외벽 영상을 구현한 적은 있지만 실내 유물인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 탑은 각 면마다 뛰어난 조각들이 풍부하게 새겨졌지만 관람객들이 탑의 진가를 알지 못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생기곤 했다. 외벽 영상은 이런 점에 주목해 탑을 재조명했다. 

매주 수요일, 토요일 저녁 8시마다 14분 동안 외벽 영상은 탑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는다. 삼장법사와 손오공 이야기, 부처님의 법회와 열반 이야기가 쉼 없이 펼쳐진다. 또 탑에 비가 쏟아지고 낙엽이 떨어지고 눈이 내리는 자연의 변화와 불교 철학의 핵심을 영상으로 입혔다. 탄탄한 스토리에 바탕을 둔 화려하고 역동적인 영상들이 탑 위에 쉴 새 없이 펼쳐지면서 관람객은 넋을 잃은 채 경천사 탑의 변신에 동참한다. 그래서인지 영상이 끝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경천사 십층석탑 외벽 영상은 유물과 디지털 미디어가 직접 만났을 때 어떤 효과를 발휘하는지 잘 보여준다.  

국립중앙박물관 실감 영상은 과감하게 디지털 미디어를 독립적으로 활용하였다. 그동안 전시에서 디지털 미디어를 부분적으로 사용하던 것과는 상당히 다르다. 이런 점에서 실감 영상관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박물관이며 또한 박물관의 지금을 묻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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