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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의 씨네로그] 남을 위해 자신을 버리는 진정한 사랑
[정재형의 씨네로그] 남을 위해 자신을 버리는 진정한 사랑
  • 정재형
  • 승인 2020.08.20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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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와 야수', 현대인이 잃어버린 것 일깨워
마음의 평화는 내면 보기에서 시작해

“사랑은 비천한 것도 귀하게 만들지. 사랑하면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보거든. 그래서 그림 속의 큐피드는 늘 장님이라네”. 영화 <미녀와 야수>(2017)에 나오는 대사다.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에 나오는 구절을 벨과 야수가 같이 읊조린다. 프랑스 고전 동화 <미녀와 야수>는 현대인이 잃어버린 게 뭔지 분명히 자각하게 한다. 이 영화의 주제는 내면과 외면이다. 추한 외모의 괴물을 사랑하게 된 처녀 벨은 외면의 허상을 보지 않고 내면의 진실을 봤다. 그녀가 괴물의 외모를 바로 바라볼 때 모든 마법이 풀어져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현대인이 잃어버린 것, 그건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을 응시하는 거다. 내면 보기를 잃어버린 후 인간은 외면으로만 모든 걸 판단하고 불안해하고 고통스러워하다가 죽는다. 마음의 평화란 이처럼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어머니를 어려서 흑사병에 잃고(지금의 팬데믹 상황과 흡사하다. 세상은 슬픔에 잠겨있다. 허망한 죽음 속에서 인간은 내가 누구인가에 대해 골똘히 사유한다) 화가인 아버지 밑에서 홀로 자란 벨(엠마 왓슨)은 유난히 책 읽는 걸 좋아한 별난 소녀였다. 당시로서 여자가 깨어 있다는 건 유별난 일에 속했다. 지금도 그렇게 보는 남자들이 많지만. 그녀가 가장 좋아한 책은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사랑 때문에 두 남녀가 죽는 비극이지만 영원하고 순수한 사랑을 표현한 작품이다. 외딴 성에 사는 야수에 잡혀간 아버지를 구출하기 위해 벨은 용감하게 대신 잡히고 아버지를 내보낸다. 성안의 모든 사물들은 마법에 걸린 과거 성주를 따르던 시종들이었다. 그들은 성주와 벨이 사랑에 빠질 수 있도록 작전에 돌입한다.

영화의 소재인 마법과 야수는 동화에나 존재한다. 마법으로 외모가 변한 건 내면의 모습을 바로 보지 못하는 인간 시각의 불완전함을 말한다. 시각은 단지 생물학적 현상이 아니라 내면의 인지작용이고 판단이다. 권력을 남용하고 남을 배려하지 않는 오만한 남자를 야수로 표현했다. 현실적으로 해석해보면 겉으론 인자한 얼굴을 하고 있어도 하는 행동이 폭력적이라면 그는 야수의 내면을 갖는다. 동화는 야수를 인격화 시켜 초자연적으로 만들고 마법을 동원해 신체가 변모된다는 상상력을 동원했다. 주변을 돌아보면 정치권 남자들이 대부분 야수인 걸 알 수 있다. 입으로 하는 말은 서민 경제를 위하고 정의와 도덕을 외치며 온갖 거룩하고 숭고한 말들을 쏟아내지만 권력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을 만드는 장본인들, 곧 야수들이다.  

그에 비해 주인공 벨은 옥에 갇힌 아버지를 대신해 옥에 갇히고 원수인 야수가 늑대의 공격에 쓰러져 죽기 직전일 때 그를 업고 성으로 돌아가 극진 간호해 회복시킨다. 용감하고 공평하고 정의로운 벨은 비천한 신분에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소녀다. 모든 권력을 가졌고 폭력적인 이기적 남성 야수는 아이러니하게 소수자인 벨의 도움으로 살아난다. 사랑의 가치를 모르던 야수가 사랑에 빠져 어떻게 인간으로 되돌아오는가를 그린 영화다. 

또 다른 한 명의 위선적 남자가 있다. 벨과 결혼하길 원하는 멋진 외모의 건장한 남자 가스통이다.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이 잘못해도 남에게 뒤집어 씌우는 비겁하고 계략적이며 공명심만 있는 남자다. 겸손하면서도 용감하고 과감한 벨의 성격과는 정 반대 인물이다. 자신의 잘못을 아버지와 딸에게 다 뒤집어 씌운 가스통은 그러면서도 벨과 결혼하고자 한다. 위선적이고 뻔뻔한 내로남불 남자의 전형이다. 역시 주변의 현실 정치가들 상당수가 그렇다. 벨의 아름다움에만 이끌린 그는 벨이 자신의 허전함을 채워줄 여성이라 일방적으로 생각한다.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벨의 행동과 가스통은 정 반대로 작용한다. 그 역시 또 한 명의 야수다. 사랑의 진정한 가치와 내면을 모르고 외면만 보던 그는 자신이 누군지도 깨닫지 못한 채 허망하게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만다.   
 

정재형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정재형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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