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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문화칼럼] 함께 살자!
[김희철의 문화칼럼] 함께 살자!
  • 김희철
  • 승인 2020.10.21 08: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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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카트' (부지영 감독, 2014) 리뷰

정규직만 바라보고 일하던 비정규직
하루아침에 계약 해지 통보받아

노동조합 만들어 단체행동 나서지만
대체인력 고용·공권력 동원 등 방해
영화 <카트> 포스터

마트의 개장 전 조회 시간, 마치 군대 기상 점호처럼 오와 열을 맞춰 선 매장 직원들이 보인다. 일장연설을 하고 있는 점장의 뒤에는 정규직, 점장의 앞에는 비정규직 직원들이 서 있다. 

“고객은 왕이다!”, “회사가 살아야 우리가 산다!”, “사랑합니다~” 한선희 직원의 선창에 따라 모든 직원이 구호를 외치고 나서 각자의 위치로 움직인다. 때론 왕 같은 고객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는 이유로 무릎 꿇고 사과해야 하거나 사소한 실수에 대해 반성문을 써야 한다. 립스틱도 회사 측이 정해주는 색깔로 발라야 할 정도다.

5년 전 마트에 입사한 한선희(염정아 분)는 고등학생 아들, 초등학생 딸과 함께 산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그녀는 악착같이 일했다. 까대기(물품을 싣고 내리는 일), 판매, 계산 업무 등을 하면서 벌점 하나 없이 일해 온 그녀는 “열심히 일하면 정직원이 된다”는 점장의 공언대로 3개월 후면 정직원이 될 예정이다. 정규직만 된다면 아들의 제주도 수학여행 경비 같은 목돈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을 것이다. 마트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비정규직들이 한선희와 비슷한 처지다. 어린 아들과 단둘이 사는 싱글맘, 대학 졸업 후 면접만 50번 넘게 본 취업준비생... 2년간 벌점 없이 다니면 정직원 시켜준다는 얘기는 사실 모든 비정규직들이 입사할 때 들었던 사탕 발린 말이었다. 

이들에게 날벼락 같은 일이 벌어진다. 각자의 핸드폰으로 ‘근로계약 해지 통보’를 알리는 문자가 도착한다. 회사의 일방적인 외주화가 시작된 것이다. 날벼락을 맞은 듯 일자리를 잃게 된 비정규직들이 정규직 사원들에게 따져 묻지만 그들 역시 본사의 방침에 어쩔 도리가 없다. 대책을 논의하던 끝에 이들은 단체 행동을 하기 위한 노동조합을 만든다. 하지만 협상을 하기 위해 기다리는 노동조합 대표들은 투명인간처럼 취급된다. 결국 노조는 파업이라는 강공을 취하기로 한다. 분홍색 단체티를 맞춰 입은 노조원들은 마트 계산대 옆에 박스를 깔고 파업 점거에 들어간다. 

영화 <카트>의 한 장면

노조 대표단과 테이블에 마주 앉은 회사 측 간부는 “반찬값이나 벌러 온 여사님” 운운하며 점거를 풀어야 협상할 수 있다고 회유하지만 노조원들은 흔들리지 않고 투쟁을 이어나간다. 사측은 비정규직들의 파업이 불법 점거, 업무 방해라면서 노조를 와해시키려고 한다. 파업 주동자에게 정직원이라는 미끼를 던지거나 알바생 대체인력을 고용하는 불법을 자행하지만 먹히지 않는다. 

급기야 사측은 농성장의 전기까지 끊어버리지만 농성장의 어둠은 촛불로 다시 밝아진다. 촛불 조명 속에서 마트의 일상을 풍자하는 연극도 즐기고 개사한 트로트 가요를 함께 부르며 농성장의 분위기는 더욱 끈끈해진다. 결국 사측은 경찰 공권력을 동원한다. 방패와 헬멧으로 무장한 전투경찰이 에워싸고 여경들이 완력을 동원해 농성을 와해시킨다. 사원들이 경찰서 유치장에 갇혀 있는 동안 마트의 점거 농성이 강제진압됐다는 뉴스가 나오지만 편파적 보도다. 앵커는 “노조의 불법점거로 고객들이 큰 불편을 겪었고 70억 원대의 손실이 발생했다”는 사측의 입장만을 대변한다. 노조는 과연 전원 복직이라는 노조원 모두의 목표를 이룰 수 있을까? 

추석과 개천절 연휴가 끝났다. 대다수의 국민이 휴식과 충전의 시간을 갖는 시간이지만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다. 소방서, 경찰서, 코로나19를 검사하는 선별진료소, 365일 연중무휴 문을 여는 매장 등의 정상적 운영을 위해서 누군가는 휴식 대신 일을 택해야 했다. 반대로 일하고 싶어도 일을 하지 못해 애타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방과 후 강사, 프리랜서 등 코로나19로 인해 일자리를 잃고 생계가 막막해진 사람들이 너무 많다. 코로나가 잠잠해진다 해도 세상이 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바뀔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말이 난무한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대형 마트나 잡화점, 패스트푸드 체인의 계산대에는 이제 사람 대신 기계가 들어서고 있다. 물건을 사는 사람이 직접 물건의 바코드를 읽게 해서 카드로 결제하는 시스템이다. 익숙하지 않은 고객들을 도와주는 사람이 있긴 해도 나중엔 그 자리마저 기계로 대체될 것이다. 모든 사람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은 이제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유토피아가 된 것인가?
마트 노동조합원들이 맞춰 입은 분홍색 단체티에는 이런 문구가 들어갔다.  

“함께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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