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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희의 박물관 여행] 박물관으로 온 한국 현대사
[박찬희의 박물관 여행] 박물관으로 온 한국 현대사
  • 박찬희
  • 승인 2020.10.28 08: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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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다룬 만큼 다양한 논쟁 벌어져
외부 의견에 대한 성찰로 만들어가야

국가 중심 아닌 사람이 보이는 전시
역사 속 이야기 코너로 그 시대 체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외경. ⓒ박찬희

한국 현대사의 중심지인 광화문 광장, 그곳에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무엇을 전시했을까? 한국 현대사를 주제로 한 박물관과 기념관은 여러 곳이다. 그런데 대부분 현대사의 특정 사건, 인물, 지역을 중심으로 다룬 반면 이곳은 그 이름처럼 한국 현대사를 전반적으로 다뤘다. 때문에 한국 현대사를 한자리에서 살펴보려면 먼저 이곳을 들려야 한다.

현대사가 다른 어느 시대보다 논쟁적인 것처럼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역시 논쟁적이다. 현대사는 바로 지금과 이어진 시대로 당사자들이 생존한 경우가 많고 같은 사건과 인물이라도 평가가 사뭇 다르거나 때로는 첨예하게 대립되기도 한다. 현대사를 전반적으로 전시한 이곳 역시 전시를 둘러싸고 다양한 논쟁이 벌어진다. 박물관이기 때문에, 더욱이 국립기관이기 때문에 전시의 중립성과 객관성을 담보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는 있지만 이곳은 역사에 대한 가치 판단을 내리고 그것을 전시에 반영한다는 점에서 중립적이기 쉽지 않다. 따라서 이곳을 둘러싼 논쟁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국립기관이며 현대사를 다뤘고 게다가 현대사의 중심지인 광화문 광장에 자리 잡아 여러 사람들은 이곳에 특별한 관심을 보낸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전시되는 현대사가 곧 공식적인 역사라고 생각하는 경우, 더욱 예민하고 촘촘하게 전시를 바라본다. 더구나 한해 100만여 명이 관람한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더 그렇다. 그래서인지 때로는 논쟁이 매우 치열해지기도 한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다른 박물관과 상당히 다른 위치에 서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계적인 중립성이나 객관성보다 관람객들에게 현대사의 무엇을 어떻게 보여주고자 하는지, 외부에서 제기하는 의견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성찰하고 되물으면서 전시를 만들어가려는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

제주 4.3 특별전시. ⓒ박찬희

박물관의 노력은 무엇보다 전시를 통해서 구현된다. 전시는 크게 상설전시와 특별전시로 구성되는데, 이중 특별전시는 박물관의 노력과 변화가 비교적 빨리 반영된다. 몇 년 사이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는 흥미로운 특별전시가 여러 번 개최됐다. 그동안 역사에서 소홀히 다뤄졌지만 꼭 기억돼야 할 역사나 재해석돼야 할 역사에 주목한 전시였다. 지난 2018년에 열린 제주 4·3 70주년 기념 특별전시인 ‘제주 4·3 이젠 우리의 역사’가 대표적인 사례다. 반면 상설전시는 속성상 특별전시와 달리 박물관의 노력이 반영되는 속도가 느리다. 부분적으로 개편하기도 하지만 전시의 일관성을 얻기 위해서는 전면 개편을 해야 한다. 상설전시를 전면 개편하기 위해서는 긴 시간과 적지 않은 비용과 지속적인 노력이 들어간다. 특히 그동안 박물관이 쌓아온 성과, 박물관의 정체성, 추구하는 방향이 반영돼야 하기 때문에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다.

체험관·주제관으로 입체적 접근

올해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상설전시가 개편됐다. 변화된 상설전시의 내용이 무엇인지 살펴보면 그동안 박물관에서 무엇을 고민했고 그것을 어떻게 전시에 반영했는지 잘 파악할 수 있다. 우선 공간적으로 큰 변화가 생겼다. 기존의 상설전시는 세 층에 걸쳐 이뤄진 반면 이번 상설전시는 한 층으로 줄어들었다. 대신 상설전시실이 있던 두 층은 체험관과 주제관으로 바뀌어 순차적으로 문을 열 예정이다. 체험관과 주제관은 눈으로만 전시를 보는 방식에서 벗어나 입체적으로 현대사에 접근하기 위한 파격적인 시도다. 이러한 시도를 한 박물관은 많지 않아 앞으로 이 공간이 어떤 효과를 거둘지 눈여겨봐야 한다.

역사관 안내도. ⓒ박찬희

상설전시는 5층 역사관에서 이뤄진다. 이 전시는 현대사를 역사의 흐름에 따라 개괄하는 통사 방식으로 구성됐다. 통사 방식의 전시에서 중요한 점은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시대를 구분했는가라는 것이다. 이것은 전시에서 박물관의 정체성을 제시하고 전시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개편된 전시에서는 근대사를 포함해 이 시대를 크게 세 시기로 구분했다. 1894년∼1945년까지는 ‘자유, 평등, 독립을 꿈꾸며’, 1945년∼1987년까지는 ‘평화, 민주, 번영을 위하여’, 1987년∼현재까지는 ‘나, 대한민국, 세계’가 그것이다. 이전 전시의 시기 구분과 비교하면 변화된 지점이 선명하게 보인다. 이전에는 1876년∼1948년까지는 대한민국의 태동, 1948년∼1961년까지는 대한민국의 기초 확립, 1961년∼1987년까지는 대한민국의 성장과 발전, 1987년부터 현재까지는 대한민국의 선진화, 세계로의 도약으로 구분했다. 이전 전시가 국가 중심이었다면 이번 전시는 사람 중심이다. 이전 전시에서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역사관 입구 벽면에 쓴 글은 전시의 전체적인 방향을 알려준다. “여러분은 역사의 길을 걸으며 이 거대한 변동의 시간을 일궈온 평범한 사람들의 크고 작은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전시는 1894년 동학농민전쟁의 주역 전봉준으로부터 시작된다. 전시실 곳곳에는 그 시대를 살아갔던 다양한 사람들이 전시됐다. 특히 사람들 사진과 개인의 사적인 기록인 일기를 활용해 그 시대에 사람들이 살았고 또 그들이 역사를 만들어간 주역이라는 점을 계속 상기시킨다. 또한 이전에서는 소홀하게 다룬 노동자와 노동의 문제도 비중 있게 전시했다. 전시의 마지막 부분에는 참여하는 시민들을 전시해 전시를 보는 관람객이 바로 역사를 만들어가는 주역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국민이 일군 경제성장 진열장. ⓒ박찬희

디지털 아카이브로 흥미 더해 

근현대사박물관에서 관람객의 특별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려면 몇 가지 문제를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 대개 전시물은 글자로 된 자료들이 많다. 연구자에게는 중요하더라도 관람객에게는 지루하게 비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또한 전시실 곳곳에는 전시와 자료를 설명하는 설명문이 자주 보인다. 이런 요소들로 자칫 무미건조해지기 쉬운 전시실 분위기를 어떻게 흥미로운 공간으로 만들 것인가라는 문제다. 다른 하나는 전시하고 싶은 자료와 유물이 많아도 전시 공간은 한정됐고, 또 만약 제한된 공간에 지나치게 많이 전시할 경우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이다.

개편된 전시에서는 단조로울 수 있는 전시실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흥미로운 전시 기법을 사용했다. 먼저 주목되는 것은 각 전시실마다 마련된 역사 속 이야기 코너다. 진열장과 구별되는 특별한 공간을 만들고 그 시대를 이해할 수 있는 영상, 구술, 그림, 모형, 사진, 유물로 그곳을 구성했다. 이 공간에서는 잠시나마 그 시대, 그 현장으로 들어갈 수 있다. 특히 방으로 구성된 곳이 많아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시선을 집중시키는 효과가 크다. 이 밖에 진열장과 벽면에 쓴 인용 글, 6.10민주항쟁 당시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당시 신문을 날짜별로 전시한 방식도 인상적이다. 한편 전시의 공간적인 한계를 벗어나고 전시의 이해를 돕기 위해 곳곳에 디지털 아카이브를 마련했다. 아카이브는 사진, 영상, 구술 등 다양한 방식으로 구성돼 흥미를 더한다. 

각 전시실마다 마련된 역사 속 이야기 코너 <3> - '접어둘 수 없는 이야기'의 모습이다.

그러나 다소 아쉬운 점도 있다. 진열장 내의 전시물을 관람객 스스로 읽어낼수록 도와주는 장치는 더욱 다양해야 한다. 전시된 유물이 서로 어떤 관련이 있는지, 전시물을 어떻게 읽으면 좋을지 손쉽게 알면 관람객 입장에서는 전시가 더 흥미롭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 부분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근현대사 박물관이 공통적으로 겪는 어려움이다. 앞으로 이 문제를 효과적으로 풀어나간다면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내디딘 발걸음의 의미는 더욱 커질 것이다.

박찬희 박찬희박물관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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