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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고 뒤집는 바람의 그림
흔들고 뒤집는 바람의 그림
  • 손철주
  • 승인 2020.11.03 16: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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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철주의 미술놀이 ‘외화내빈(外華內彬)’ 7

바람은 인간의 마음을 들쑤시고 물결을 일으키며 무늬를 아로새긴다. 바람 따라 마음이 변하는 이를 변덕쟁이라 놀리지만, 바람만큼 심기(心機)를 깊이갈이하는 외력도 드물다. 하여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는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며 가슴 저릿한 바람의 탄생을 노래했고, 우리의 시인 김수영은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풀의 뒤척임을 시대사에 견주었다.

애초에 바람보다 마음이 우선이라는 일갈도 있었다. 당나라 선승인 혜능은 무명(無明)을 바루고자 했다. 혜능이 절간에서 말다툼하는 스님을 만났다. 바람에 흔들리는 깃발을 두고 한 스님은 “흔들리는 것은 깃발”이라고 했고, 한 스님은 “흔들리는 것은 바람”이라고 우겼다. 혜능의 답이 이렇다. “깃발이 흔들리는 것도, 바람이 흔들리는 것도 아니다. 흔들리는 것은 마음이다.”

바람의 덜미를 붙잡으려는 혜능은 너무 높이 솟구쳤다. 오히려 영국 시인 크리스티나 G 로제티는 나지막하다. ‘누가 바람을 보았나?’하고 수줍게 묻는다. 바람은 나도 보지 못하지만 너도 보지 못한다. 그 누가 보았으리오. 로제티는 생전 처음 알았다는 듯이 설렘과 떨림을 안고 귀엣말한다.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무가 머리를 숙일 때, 바람은 거기를 지난다.’ 아무렴 그렇고말고. 풀이든 깃발이든 나무든, 바람은 그의 존재를 경물에 기대어 비로소 드러낸다. 바람이 함께하는 경치라서 ‘풍경(風景)’이 아니던가.

유연한 붓질의 인상파 화가가 그린 ‘돌풍’

화가는 보이지 않는 바람을 보이는 경물로 묘사하는 데 이골이 난 사람이다. 프랑스의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도 여느 화가나 마찬가지다. 그의 작품 ‘돌풍’을 보자. 바람이 벌판을 온통 헤집어 놓은 광경이다. 더 없이 맑고 평온한 대낮이었다. 느닷없이 불어온 바람이 순식간에 대지를 수선스럽게 만든다. 구름은 황급히 흩어지고, 나무는 부르르 떨고, 풀은 납작하게 눕는다. 먼지가 눈앞을 가렸는가, 화필을 잡은 화가의 손이 행여 갈피를 잡지 못할까 불안해한다. 초점을 못 맞춘 사진을 보듯 피사체는 원래의 모습을 잃고 요동친다. 바람이 연출하는 변화를 감각적으로 재빠르게 포착한 그림이 ‘돌풍’이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돌풍’, 1872년 무렵, 캔버스에 유화, 22×82㎝, 케임브리지 피츠윌리엄박물관 소장. 몸부림치는 바람의 소행이 보인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돌풍’, 1872년 무렵, 캔버스에 유화, 22×82㎝, 케임브리지 피츠윌리엄박물관 소장. 몸부림치는 바람의 소행이 보인다.

르누아르는 유연한 붓질을 자랑한 인상파 화가다. 동료 화가들은 그의 부드러움을 보고 ‘양털로 캔버스를 문지르는 사람’이라고 불렀다. ‘돌풍’은 다르다. 르누아르는 붓을 거칠게 놀렸다. 처음에는 언덕과 구름과 푸나무를 있는 그대로 그렸다가 물감이 마르기 전에 브러시를 휙휙 내둘러 형체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었다. 바람의 존재나 바람의 흔적을 재현하기 위한 그의 아이디어라고 할까. 대상을 엄밀하게 관찰하려는 르누아르의 의욕이 뺑소니치는 바람을 끝까지 쫓아갔다.

동양의 옛 문인은 난초나 대나무를 즐겨 그렸다. 난초는 봄에 향기를 피우는 고상함이 있고, 대나무는 겨울을 버티는 지조가 굳세다. 선비는 난죽(蘭竹)의 품성을 본받아 불미한 세상에 맞선다. 그리해 난죽화는 화가의 인품과 사상이 투여된 완상품이 된다. 만권의 책을 읽고 깨우친 뒤에 천리의 길에서 체득한 경험이 모여 문인화가 된다고 했으니, 문인의 꽃나무 그림에 어찌 가르침과 깨우침이 없겠는가.

 ‘봄바람에 뒤집힌’ 괴팍한 난

난 그림 하나에 눈 돌려 보자. 희귀하기 짝이 없는 난화다. 세상에, 난초 잎이 칼국수 면발보다 굵다니. 왼쪽의 난은 바로 서있고 오른쪽 난은 거꾸로 서있다. 제목이 그림 속에 씌어있다. ‘전도춘풍(顚倒春風)’. 그 뜻은 ‘봄바람에 뒤집히다’가 된다. 화가의 심사가 무엇이기에 이토록 괴팍한 난을 들이민단 말인가. 화가를 모르고야 흉중을 캐볼 도리가 없다. 그린 이는 청나라의 문인화가 이방응이다.

이방응, ‘전도춘풍’, 18세기, 종이에 수묵, 28.3×41.3㎝, 일본 개인 소장. 난초 그리는 곱상한 법식을 깡그리 버린 야심작이다.
이방응, ‘전도춘풍’, 18세기, 종이에 수묵, 28.3×41.3㎝, 일본 개인 소장. 난초 그리는 곱상한 법식을 깡그리 버린 야심작이다.

그는 ‘양주팔괴(揚州八怪)’ 중 한 사람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양자강 하류 지방에 개성 강하고 고집 센 화가들이 모여들던 시기가 17~18세기였다. 그 중 여덟 명은 당대 으뜸가는 ‘삐딱이’들이었다. 남들 눈치 살피지 않고 흥 나는 대로 그림을 그리면서 짙은 먹과 화려한 색채를 뽐냈고, 때론 격렬한 붓질로 전통의 벽을 허물었다. 이방응은 성질머리가 고약해 벼슬살이하면서 윗사람의 비위를 건드려 파직 당했고 감옥살이도 겪었다. 그는 시대의 도리머리였다.

이방응은 난초 그림의 본보기를 보란 듯 뒤엎는다. 몰라서 헤맨 것이 아니라 알고도 엇길로 나아가는 몸짓이다. 아닌 게 아니라 바람에 뒤집힌 난 그림은 수묵화의 몸부림이라서 서양으로 치면 ‘액션 페인팅’이다. 운필은 어떤가. 신속한 붓놀림이 아니라 질질 끄는 둔필이다. 꽃대와 꽃잎은 담묵으로 처리해 그림자 진 것처럼 보이고, 공(工)한 맛보다 졸(拙)한 맛을 풍긴다.

자, 왜 뒤집힌 난인가. 화가의 심회를 헤아릴 단서는 그림 어느 구석에도 안 보인다. 그래서 ‘상외기득(象外奇得)’이다. 형상의 바깥에서 기이함을 얻었다는 말이다. 그 기이함으로 화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바람이 난초에게 한 짓을 보라. 그것도 북풍한설이 아니라 만물을 기르는 봄바람이 난을 뒤집는다니. 춘풍은 꿈결마냥 포근하고 어질다. 오죽하면 ‘춘풍대아(春風大雅)’라는 비유로 봄바람 같은 아량을 부러워했을까.

하여도 봄바람은 야누스다. 그 보드라움으로 인간을 꼬드기기도 한다. 봄바람에 놀아난 멀쩡한 남녀가 어디 한둘인가. 채신머리없고 심약한 자에게 춘풍은 난봉의 유혹이다. 선비도 자칫하면 꼬드김을 당해 바람피운다. 초심을 잃은 선비는 추락하거나 엎어진다. 난처럼 고매한 기품도 바람 잘못 쐬면 망신살 뻗힌다. 이것이 반골 화가 이방응이 전해주는 기막힌 날씨 예보가 아니고 뭐겠는가. 

바람 타는 난초를 그린 이방응은 선비의 망신을 막는 처방을 내놓았다. 바로 ‘대나무 그리기’가 양약이랬다. 그의 시에 나온다. ‘먹물이 마르기 전에 붓을 놓아도/ 벌써 청풍이 폐부의 티끌을 씻어주네’ 풍류라면 남보란 듯한 명필 왕휘지도 속됨을 치료하는 대나무의 효능을 대놓고 설파한다. 그는 대나무에게 아예 높임말까지 쓴다. “이분 없이 어찌 하루인들 지낼 수 있으리.” 이 말이 곧 대나무 호칭이 ‘차군(此君, 이분)’이 된 유래다. 뒷날의 문인 소동파도 거든다. “고기반찬 없이 밥 먹을 수 있어도 대나무 없이 살 수는 없다.” 동파가 대통 밥과 죽순을 더 좋아해서 그랬을까. 천만에, 식미와 아무런 상관없다. 그는 덧붙인다. “고기를 못 먹으면 야위지만 대나무를 안 심으면 속된다.” 배는 곯아도 되지만 속기(俗氣)는 죽기보다 싫다는 얘기다.

 

대나무는 데데하지 않다. 뿌리가 단단하고 줄기가 오달지다. 흔히 속이 빈 것은 겸허와 통하고 마디가 맺힌 것은 절개에 견준다. 이 풍진 세상에 이리 휘고 저리 밀리면서도 대나무는 본디 꼴을 되찾는다. 대나무 보고 ‘휘느니 부러지라’고 나무라는 이는 아무래도 생각이 짧다. 휘어도 안 부러지는 궁량이 더 깊은 법이다. 회초리를 대나무로 만든 까닭을 곰곰 따져볼 일이다.

 

이정, ‘풍죽’, 17세기, 비단에 수묵담채, 127.5×71.5㎝,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바람 탄 대나무는 부러지느니 휘는 게 더 깊은 심사라고 말한다. 
이정, ‘풍죽’, 17세기, 비단에 수묵담채,
127.5×71.5㎝,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바람 탄 대나무는 부러지느니
휘는 게 더 깊은 심사라고 말한다. 

난초뿐 아니라 대나무인들 바람이 비켜가랴. 바람에 맞서는 대나무, 이른바 ‘풍죽(風竹)’을 본다. 잎사귀에서 사각대는 소리가 들린다. 빳빳이 서려는 대나무의 앙버팀이 헌걸차다. 바람 앞에 잎들은 어떤 모양새인가. 놀란 까마귀 푸드득거리듯 한순간 헝클어진다. 뒤편 그림자 같은 대나무가 보일락 말락 한다. 세어보니 세 그루다. 이분들 때문에 앞쪽 호리호리한 한분의 기세가 더 당차게 보인다. 짙고 연한 먹 부림이 재주도 좋아 아스라한 공간감을 멋들어지게 살려낸다.

 

그린 이는 ‘금수저 화가’로 불리는 탄은 이정이다. 그는 왕실 자손으로 고조부가 세종대왕이다. 임란 때 왜구의 칼에 팔이 떨어져 나갈 만한 상처를 입고도 꿋꿋이 붓을 잡아 최고의 대나무 화가로 우뚝 섰다. 그가 그린 풍죽처럼 거쿨진 화가가 이정이다. 하기야 칼날을 맞았는데 까짓 바람이 대수이겠는가. 눈비나 바람과 한바탕 겨루는 대나무 그림은 조선 화단에 쌔고 쌨다. 그중에서도 지금 5만 원 권 지폐에 떡 하니 모신 ‘풍죽’이 이 작품이다.

 

바람은 소리로 바뀐다. 가을 밤 송나라 문인 구양수가 밖에서 들리는 이상한 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알아보라고 하자 동자가 대답한다. “별과 달은 희고 맑고/ 은하수는 하늘에 있는데/ 사방에 사람 말은 들리지 않고/ 소리는 나뭇가지 사이에 있더이다.” 바람을 그린 그림에 소리가 난다. 늦은 갈바람 소리 들리는 그림 어디서 만날꼬.

 

손철주 미술평론가
국민일보 기자, 학고재 주간 등을 지냈다. 교양미술서 베스트셀러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의 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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