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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쟁점: 이미지정치 어떻게 볼 것인가
사회쟁점: 이미지정치 어떻게 볼 것인가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4.04.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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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펄럭이는 修辭들...정책은 이미지와 대립되는가

[편집자주] 이미테이션이 보석을 앞지르는 시대다. 가상이 실제보다 더 현실감을 구가하는 시대다. 정치에서 이런 현상은 두드러진다. 멀티미디어시대의 선거는 표심을 공략하는 전략적 이미지들을 수없이 생산해낸다. 선진국과는 달리 이미지정치의 실제와 연구의 양 측면에서 모두 초보적인 수준을 보이고 있지만, 엄청난 이미지의 와류 속에 존재하기도 한 한국의 경우 다소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미지정치를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에 속지않기 위해서는 어떤 인식태도와 장치들이 필요한지 전문가들과 함께 살펴봤다.

현대는 이미지정치 시대다. ‘이미지’가 정치의 본질로 논의되기까지 한다. 이는 최근의 정치현상에서 여실히 증명됐는데, 이번 17대 총선은 이미지들이 흘러넘친 선거였다. 이미지정치에 대한 학자들의 반응은 양쪽으로 갈린다. 긍정적인 효과를 강조하는 쪽과 부정적인 점들을 우려하는 쪽이다. 하지만 이미지정치가 우리 현실에 깊숙이 들어와 있음을 부정하는 이들은 없다.

조성대 한신대 교수(정치학)는 “17대 총선은 이벤트와 켐페인 중심의 선거였다”라고 규정한다. 여기엔 ‘탄핵’이라는 사건 외에, 박근혜의 ‘보수온건 이미지’, 열린우리당의 ‘탄핵세력 심판’에서 ‘도덕적 단호함’의 이미지, 추미애 민주당 선대위원장의 ‘3보1배’의 상징성 등이 투표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음을 근거로 들었다.

인터넷과 TV가 주도하는 미디어 시대

최근 이미지가 정치를 움직이게 된 이유는 무엇보다 TV와 인터넷이 주도하는 ‘미디어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가 텔레비전 정치광고다. 지난 2002년 대선 때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법관 출신인 것을 활용해 ‘차분한 엘리트 이미지’에 호소했던 것과 달리, 노무현 민주당 후보는 ‘청소차를 끄는 서민을 내세워 이에 맞섰다. 김재영 충남대 교수(신문방송)는 “이제 ‘보여지는 것’이 피부에 와닿는 시대다. 정책보다 이미지가 더 중요한 요인일 수 있다”며 이미지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장원호 서울시립대 교수(사회학) 또한 “엘리트주의 시각에선 감성적인 이미지정치를 부정적으로 보지만, 이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라고 본다. 이처럼 다수의 학자들은 맥루한이 “미디어는 마사지(massage)다”라고 규정했듯, 문자시대보다 오감을 자극하고, 대중을 위로하고, 어루만지는 ‘환상의 정치’ 시대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이미지가 환상적인 것만은 아니다. 정치학자인 안병진 연구원(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은 이미지의 존재감을 강조하는데, 이를테면 “정당구호는 정당의 프로그램을 핵심적으로 요약하기 때문에 이미지로 간단히 여길 수 없다”라는 것이다.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이 후보시절 ‘21세기로 가는 다리’라는 구호로 큰 성과를 거뒀던 것이 대표적이다.

이미지정치에 대한 불신도 만만치 않다. 김한종 한국교원대 교수(역사교육)를 비롯한 몇몇은 17대 총선의 이미지 효과를 두고 ‘바람정치’, ‘지역주의의 망령’이라며 비판했다. 정태석 전북대 교수(사회학)는 “이미지정치는 합리적 판단을 가로막는다. 각 정치세력의 정책적 차별성을 희석시킨다”라며 부정적인 폐해가 더 많을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낸다.

정책은 없고 감성만 강조된 이미지의 허상

이미지정치라 해서 모두 같다고 할 순 없다. 질적 수준은 천차만별이다. 지난 17대 총선의 이미지정치는 정책활동과는 무관하게 정당 브랜드만이 강조되거나, 합리적인 정치와 별개인 감성적 이미지만 난무했다는 지적들이 많다. 안병진 연구원은 “박근혜를 내세운 한나라당의 승리는 가짜 이벤트의 승리다”라며, ‘복고’와 ‘여성’에 기댄 이미지의 허상을 비판한다. 이상길 연세대 교수(사회학)는 “한나라당이 이미지정치로 승리했지만, 박근혜의 이미지로 승리했다는 건 아이러니다”라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지난 총선 때 박근혜의 이미지는 ‘말을 하지 않고, 계속 웃기만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교수에 따르면 “정치라는 건 이성적인 대화와 토론, 설득의 과정이다. 박근혜의 말없고 두루뭉실한 이미지가 성공했다는 건 합리적인 정치과정을 부정하는 후진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는 것. 장원호 교수는 “열린우리당은 민주당과 정책적 차별성이 거의 없지만, 탄핵이라는 이슈만으로 승리했다”며 단기적인 이벤트 요인이 정치를 좌우한다고 비판한다.

감성자극, 정책보도보다 인물중심, 상대편후보를 비난하는 네거티브전략을 취하는 우리 이미지정치의 후진성은 선진국의 사례와 비교할 때 더욱 두드러진다. 강내원 단국대 교수(신문방송학)는 “TV 정치광고가 유권자 감성을 자극하는 게 전부가 돼선 곤란하다”라며 “미국의 경우 네거티브 광고가 허용돼있으나 정책에 대한 네거티브 전략이므로 자신의 정책이 비교우위에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라며 우리 정치광고에 정책이 빠져있음을 비판한다.

이상길 교수는 “프랑스는 이미지정치의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한마디로 수준 낮은 편법들을 규제하는 법제들을 갖췄다. 방송토론의 경우나 광고에서 각 후보들에 대한 연출의 범위 등을 매우 까다롭게 규제하고 있다”라며 이미지의 과잉을 경계한다.

이미지정치를 둘러싸고 가장 논쟁이 되는 건 ‘이미지는 정책과 대립되는가’, 혹은 ‘이미지는 실재인가 허상인가’다. 이를 둘러싼 학자들의 입장은 다양하다. 정태석 교수는 “이미지는 본색을 감춘다. 합리성을 은폐한다”라며 이미지를 실재와 동떨어진 것으로 본다. 

반면 이미지엔 실체적 근거가 있다는 입장들이 있다. 이상길 교수는 “한나라당의 부정부패이미지는 ‘차떼기 정치’가 있었기 때문이며, 우리당 의원들의 탄핵반대라는 눈물로 호소하는 이미지는 ‘탄핵반대 결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라며 이미지는 실체와 별개일 수 없음을 강조한다. 나아가 이 교수는 “이미지를 소비하는 유권자들은 단순히 TV의 이미지를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인터넷과 신문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이미지를 받아들인다”라며 이미지정치의 독점적 영향력을 강조하는 것에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이미지의 과잉 위험…합리적인 이미지정치로 

어쨌든 이미지정치는 대세다. 이미지의 옳고 그름보다는 그것을 적극 활용하는 자가 이기게 돼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한국의 이미지정치에 대한 전망은 어떤가.

이에 대해선 부정적인 견해가 많다. 장원호 교수는 “지금처럼 정책이 부재한 이미지정치는 궁극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라며, 특히 경제정책의 부실이 드러날 때 여당은 신뢰를 상실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안병진 연구원은 한국정치사의 맥락에서 본다. 그에 따르면, “한국정치는 지역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의 시대, 비합리적인 시대에서 곧바로 이미지정치의 시대로 옮겨왔다. 따라서 이성이 부재하고 또 다시 감성만 강조하는 굉장히 천박한 이미지정치가 될 가능성이 크다”라는 견해를 나타낸다. 

하지만 이미지정치를 부정할 수 없는 이상, 폐해방지를 위한 제도들을 갖추는 방향으로 가야할 것이다. 전문가들은 “공익신문과 TV매체를 늘려, 끊임없이 일반 유권자들이 모니터링에 참여하며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라고 충고한다. 김재영 충남대 교수는 “앞으로는 포지티브한 방식으로 갈 것이다. 상대방의 의제를 따라가는 네거티브한 방식으론 지게 돼 있다”라고 전망해 한국정치에서 비방성 이미지들이 점차 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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