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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 케플러와 마녀 어머니
과학자 케플러와 마녀 어머니
  • 김정규
  • 승인 2020.12.11 08: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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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발견』 | 마리아 포포바 지음 | 지여울 옮김 | 다른 | 840쪽

믿는 것을 계속 믿으려는 속성과
권력이 만드는 가짜뉴스 경계해야

고정된 자아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습관, 신념, 사상은 살아가는 동안 다른 모습으로 진화한다. 환경도 변화한다. 우리 몸 세포 또한 대부분 교체된다. 과학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현실을 이해하는 방식은 새로운 발견을 통해 조금씩 변화한다.

튀빙겐의 루터파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요하네스 케플러는 지동설과 지구 자전설을 입증하기 위해 달에 관한 논문을 쓴다. 이런 ‘불온한’ 것에 관심을 가진 탓에 성직자가 되지 못하고 그라츠로 추방된다. 이후 천체 연구를 계속하던 케플러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실 수학자였던 티코 브라헤의 눈에 들어 그의 제자가 된다. 그리고 브라헤가 갖고 있던 방대한 관측자료를 바탕으로 세 가지의 행성운동법칙을 도출해 낸다.  

그러나 우주의 중심이 태양이라는 이 무시무시한 진실을 전파할 방법을 고민해야 했다. 우주 중심에 지구가 있다는 고대로부터 이어져온 믿음은 견고했다. 인간은 믿었던 것을 계속 믿으려는 속성이 있고 이미 존재하는 것에는 권력이라는 게 붙어 있기 때문이다. 

과학이 현실을 변화시키는 지난한 과정

지동설을 입증할 수학적 근거는 충분했다. 그렇지만 과학적 근거는 너무 복잡하고 거추장스럽고 추상적이라 심지어 동료 과학자들조차 이해하기 어려웠다. 고민 끝에 케플러는 대중들을 설득하기 위해 우화 형식을 빌려 1609년 『꿈』(Somnium)이라는 제목의 책을 쓴다. 지구가 달의 주위를 공전한다고 생각하는 달 주민들의 입을 통해 지동설을 설명하는 젊은 과학자의 달나라 여행기다. 그런데 불똥이 엉뚱한 곳으로 튄다.

당시 독일에서는 퇴마의식이 성행했다. 대중을 조정하는 왕과 성직자들은 그 통제권을 지키기 위해 능숙한 솜씨로 연기했다. 교회는 오늘날의 대중매체와 같은 존재였고, 대중매체는 예나 지금이나 팩트의 마사지에 능하다. 독일에서만 2만5천 명이 마녀로 처형됐다.

케플러의 고향에서도 문제가 발생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실 수학자에 오른 케플러를 시기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내용이 각색되어 더욱 불온해진 달나라 여행기가 케플러의 책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과부였던 케플러의 어머니는 마침내 동네사람들이 만들어낸 가짜뉴스로 인해 마녀로 몰려 처형당할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아들이 쓴 책 때문에 마녀로 몰린 어머니

문예비평가 마리아 포포바가 쓴 『진리의 발견: 앞서 나간 자들』(원제 Figuring, 지여울 옮김, 도서출판 다른, 2020)에 나오는 이야기다. 새로운 발견이 한 사회를 바꾸는 데 얼마나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선각자들의 지혜와 열정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말해주고 있다. 이 책은 17세기에서 20세기까지 살았던 11명의 역사적 인물들이 시대 앞에 좌절하고 시대와 불화하고 시대를 넘어서는 이야기를 통해 세계사를 독특하게 직조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뿌린 씨앗이 인류사를 어떻게 변화시켜 왔는지 그 인과관계를 유려하게 보여준다.

가짜뉴스가 판을 치고 있다. 진보와 보수로 갈라진 언론과 유튜버들은 자기들의 권력과 이익을 위해 진실에 접근하려는 노력보다 클릭수를 올리기 위해 경쟁한다. 종이와 전파가 아까울 지경이다. 그러나 이 또한 우리 사회가 건강해지는 과정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노를 바꾸고, 돛을 새로 달아 세상이라는 배가 '테세우스의 배'처럼 계속 항해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거짓된 진실은 추방해야 한다. 그리고 가끔은 지구를 벗어나 ‘달 주민’의 시각으로 지구를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김정규 한국대학출판협회 사무국장·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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