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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갈라지고 서로 멀어지는 자유의 길
점점 갈라지고 서로 멀어지는 자유의 길
  • 김신자
  • 승인 2020.12.22 14: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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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자유의 길 / 김신자 전 비엔나大 철학과 교수

인간의 실존은 자유를 위한 선택과 결단
자유라는 권리에는 존중심이 수반돼
자유의 길에는 깊은 숙고가 요구돼

실존으로서 인간은 자유를 원한다. 자유의 근원은 인간의 실존성 가운데 있다. 자유를 위한 선택은 결단을 통해서 자기의 고유한 본질을 찾아내고 성취하도록 한다.(Karl Jaspers) 자유라는 광활한 터전위에서 창의적이고 심오한 인간의 정신세계는 고유성을 발전시킨다. 
자유는 다양한 전개를 통해서 현실적인 구체성으로 나타난다. 바람직한 자유의 구현은 인간에게 밝고 새로운 지평을 열어 놓는다. 그러나 이에 반하는 자유의 현상들은 부정적이며 혼란을 일으킨다. 이 상반된 자유는 우리의 삶에서 기쁨과 어려움으로 반복이 된다. 최근 유럽에서 일어난 테러행위는 부정적인 자유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2015년 1월, 불란서의 풍자잡지인 <샤를리 에브도>는 이슬람교 창시자인 무함마드의 풍자화를 게재했다. 이슬람 교도들은 이 풍자화를 창시자에 대한 모욕과 비방으로 간주하여 거세게 반발했다. 이슬람 테러분자들은 잡지사를 급습하고 총기 난사로 많은 사상자를 내었다. 
2020년 10월, 언론의 자유를 가르치기 위해 학생들에게 문제의 풍자화를 보여준 중학교의 역사선생을 테러분자는 잔인하게 살해했다. 그리고 몇주일 후에는 니스의 성당에서 세 사람의 신자가 테러로 죽음을 당했다. 11월초 비엔나의 중심가에서 테러분자는 행인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했고, 이로 인해 네사람의 사망자와 많은 부상자가 나왔다.
이 일련의 사건들은 바로 풍자화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에서 일어난 테러의 비중은 크고 잔인하다. 그러나 이러한 만행에도 불구하고 풍자화에 대한 이슬람 교도의 분노는 완화되지 않고 있다. 테러분자의 친구들이 아닌 것이 확실한, 많은 이슬람 교도들은 생각한다. 자신은 창시자의 수비자이며 신성 모독자들 앞에서 이슬람을 보호해야 한다고. 그래서 창시자에 대한 모욕과 비방 그리고 잡지및 그 선동적인 것을 관대하게 보아넘기는 태도들에 항의하는 데모를 계획했으나, 그것은 허락되지 않았다.”(Zeit-Online)

풍자화 때문에 일어난 테러                                                         

특정한 인물에 대한 냉소적인 풍자화는 신문이나 잡지에 자주 게재된다. 아주 가끔은 그리스도에 대한 풍자화도 있다. 새롭거나 별난 것들에 대해 서구 사회는 비교적 관대하며 크게 문제시하지 않는다. 이 관대함은 자기와 직접 관계없는 일에 대한 가벼운 태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슬람 세계의 관점은 다르다. 창시자를 풍자화하여 공개한 것을 그들은 묵과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는 큰 사건으로 단정한 것이다.
테러는 사실 종교와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 이슬람교 측은 매번 분명히 밝힌다. 테러분자들은 행위 때마다 항상 “알라는 위대하다”고 외치는데, 이는 비인간적이고 잔악한 행위를 정당화 시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잘 모르기 때문에 일부 서구인들은 이슬람교와 테러를 동일시 하기도 한다. 
풍자화는 테러분자들에게 폭력을 행할 수 있는 좋은 빌미를 준셈이다. “풍자화가 없었으면 희생된 세 사람의 교인은 아직 살아있을 것이라고.” 니스 성당의 신부는 말했다.(Zeit-Online)
서구사회를 풍미하는 언론의 자유가 풍자화로 인한 재앙의 한계에 부딪친 것이다. 이 사건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반문하게 하였다. 자유란 무엇인가? 
자유의 다양성은 여러가지로 나타난다. 때로는 정치적 자유로, 언론의 자유로, 신앙의 자유로 또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특히 언론의 자유는 정치성과 사회성을 포괄적으로 지닌다. 그 때문에 많은 독재자들은 언론을 경계하며 철저하게 억압한다. 
언론의 자유는 인간의 삶을 깊이 파헤치며 표출한다. 활발한 이론의 전개와 제시, 대중을 이끌어 가는 그것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건전한 언론의 자유는 명철한 이론과 비판을 통해 새로운 지평을 열어 놓는다. 

자유의 다양성과 언론

자유는 인간에게 주어진 귀한 보석이다. 그러나 이 권리에는 의무 즉 존중심이라는 한계와 책임이 수반된다. 신앙은 신과 인간의 영적 세계이며 함부로 침해할 수 없는 절대성에 근거한다. 이슬람 창시자에 대한 풍자화는 이 절대적인 영역을 침해한 것이다. 정확한 지식도 없이 다른 종교를 경시하는 비판이나 비방은 주의를 요한다. 더구나 창시자를 희화화한 풍자화의 게재는 많이 생각했어야 하는 것이었다.
극히 인간적 생각에 의한 가벼운 행위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했다. 잡지의 편집자도 풍자화가 자기와 많은 사람의 죽음을 불러오리라고는 상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테러분자들은 그것을 악용했고, 또 테러가 행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만연시켰다.
자유의 권리에 따른 의무의 망각으로 비극을 불러온 풍자화의 게재는 결코 칭찬할 만하지는 않다. 자유의 길에는 빛과 함께 짙은 어둠도 있다. 어두움을 걷어내고 자유를 찬란히 빛내기 위해서는 이성적이고 깊은 숙고가 요구된다.

 

 

 

김신자

전 비엔나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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