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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의의 문학프리즘] 대학 강사라는 유령에 대하여
[심영의의 문학프리즘] 대학 강사라는 유령에 대하여
  • 심영의
  • 승인 2020.12.29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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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부에서나 대학 강사들은 죽음으로써 존재를 알려
정부의 고등교육에 대한 인식 부재와 무책임이 원인

2천 년대 한국소설에서 공동체 혹은 사회의 관심 밖에 위치한 무력한 개인의 고립을 서사화하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다. 많은 경우 97년의 외환위기 이후 고용-경제적 불안과 일상적 삶의 위기를 그 배경으로 꼽고 있다. 대학 강사의 고용불안의 문제도 예외가 아니다.

조해진 단편소설 『산책자의 행복』의 경우, 대학의 철학과에서 20여 년 동안 강사로 일했던 소설의 여성인물은 대학의 구조조정의 여파로 하루아침에 밑바닥 삶으로 내처진다. 철학과가 다른 비인기 학과와 합쳐져 인문학부로 통합되고, 철학과 교양과목이 폐강되면서 대학에서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것이다. 그녀는 그것을, “하나의 세계는 끝났다”고 생각한다. 입과 거주지를 국가에 의탁해야 하는 세계, 수치심은 사치가 되고 무엇이든 표현할 수 있는 인간으로서의 자유는 최후의 보루조차 될 수 없는 세계, 그녀 앞에 새로 펼쳐진 세계가 그런 곳이다.

심영의 장편소설 『오늘의 기분』에는 오랫동안 지도교수의 종이었다고, 그러나 이제 죽음으로써 그 사슬에서 벗어나고자 한다고, 곧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대학의 시간강사 이야기가 있다. 그 몇 년 후에는 지도교수의 성적 괴롭힘을 견디다 마침내 “나는 무용해서 죽는다”는 유서를 남기고 또 다른 대학 (여자)강사가 자살한다.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가 있을까. 그러나 고등교육을 받고 학위를 받은 후 강단에 섰던 여러 강사들이 전임으로 임용될 가능성이 차단되거나 강사생활로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여러 사정으로 자살한다.

민립대학으로 출발했던, 오랜 민주화운동의 전통을 자랑하는 광주의 한 사립대학에서는 일 년 넘게 비정규교수노조가 대학본부 건물 앞에서 단체협약 이행을 요구하는 컨테이너 농성을 벌이고 있다. 전임 총장직무대리가 서명했던 단체협약을 새롭게 선출된 총장이 자신과 무관하다는 이유로 선별적으로만 협약이행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본부는 신입생의 충원이 예전 같지 않은 어려운 상황에서 나름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사용자와 노동조합 간에 체결한 단체협약을 준수하고 있지 않은 것은 그 자체로 위법일 것인데도 본부와 노조 측은 일 년 가까이 해결점을 찾지 못한 채 소모적인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지역사회의 중재도 없고, 교육부도 수수방관이다.

결국 재정 곧 돈의 배분에 관한 문제가 진리를 추구하면서 사회에 건강한 비판적 지식인을 길러내야 하는 대학 내 갈등의 관건인 셈이다. 정부는 대학에 재정지원을 늘림으로써 강사들의 고용안정을 도모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학문후속세대의 연구역량을 지원하고 학생들이 다양한 학문 과정에 접근할 수 있는 학습권을 보장하는 등의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면서 고등교육법을 일부 개정하여 시간강사를 교원 강사로 포함하는 불완전한 조치를 취했다. 그렇게 한 지 2년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교수신문의 보도(2020.11.12. 사립대 강사 정부 지원 대폭 줄어든다)를 보면, 정부 재정 당국의 고등교육에 대한 인식의 부재와 무책임에 우려가 크다. 국공립대학보다 사립대학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사립대학의 강사 처우개선과 관련한 예산을 증액하기는커녕 절반 정도로 감액한 예산안을 제출했다는 것은 강사들의 연이은 자살과 그로 인한 사회적 파장 이후 오랜 시간 논의와 갈등을 겪은 후 가까스로 불완전하게 시작한 강사법 개정의 취지와도 배치되는 일이다. 

진보든 보수든 어느 정부에서나 대학 강사들은 누군가가 죽음으로써 그 존재를 알리는 얼마간의 시간 말고는 종내 외면 받고 버려지는 무용한-쓸모없는 존재로 남겨진다.

심영의(문학박사. 소설가 겸 평론가)
심영의(문학박사. 소설가 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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