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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적 조망 ‘해방적 리터러시’…대안 담론을 찾아서
메타적 조망 ‘해방적 리터러시’…대안 담론을 찾아서
  • 강민규
  • 승인 2021.01.08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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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책들_『사회 언어학과 서로 다른 리터러시』 제임스 폴 지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380쪽

강민규 교수가 '세상의 책들' 코너를 새롭게 선보인다. 강 교수는 <교수신문> 기자,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부연구위원 등을 지냈으며,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대시교육론과 매체언어교육론을 강의하고 있으며 주요 논문으로 「교육과정의 사회적 전망과 해석으로서의 문식 환경 이해」, 「임화 시에 나타나는 회상의 두 형식에 관한 고찰」 등이 있다.

공적 삶 원만하게 영위하는 실천 능력
사회 불평등 해소에 기여하는 리터러시
가능성의 영역은 한계

글을 읽고 쓰는 능력만을 뜻했던 ‘리터러시(literacy)’는 이제 사회 전 분야에서 쓰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000 리터러시’라고 쓰면 어느 분야든 그 방면의 기초적 소양이나 수행 능력을 일컫는 말이 된다(예컨대 스포츠 리터러시). 사회언어학이라는 전문 영역을 내걸고 있기는 하지만 이 책 역시 그러한 의미의 리터러시에 대한 논의로 확장될 수 있는데, 핵심은 그것이 얼마나 정치적인가를 보이는 데 있다.

저자 지(J. P. Gee)는 이론언어학에서 출발하였지만 이후 사회언어학, 그리고 리터러시와 교육 쪽으로 관심을 옮겨갔다. 20세기 후반 언어(교육)에 있어서 사회・문화적인 접근을 강조해온 대표적인 미국 학자다. 그에 따르면 리터러시는 개인적인 인지 능력이 아니라 철저히 사회적인 실천 능력이며, 그것을 이 책은 풍부한 실증 사례들을 바탕으로 입증하고 있다. 

우선 저자는 한 인간이 그의 삶에서 매우 다양한 담론들 속에 들어가 있게 된다고 본다. 가정과 같은 곳에서 자연적으로 습득되는 1차 담론이 있는가 하면, 이후의 사회화 과정에서 접촉하게 되는 학교, 직장, 종교 집단 등의 2차 담론이 있다. 이때의 담론이란 푸코(1926∼1984) 식으로 말해 역사의 산물이고, 개인이 말한다기보다는 개인을 통해 말해지는 층위에 있다. 그리고 저자는 리터러시를 ‘2차 담론의 숙달’이라고 과감하게 정의한다. 이 정의는 리터러시가 단순히 말하고, 읽고, 쓰는 능력이 아니며 현대 사회의 공적인 삶을 원만하게 영위하는 실천 능력임을 의미한다. 

불평등에 복무하는 리터러시

문제는 바로 그 ‘원만하게’가 세계의 불평등에 복무하는 수식어라는 데 있다. 저자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리터러시는 사회의 위계질서를 공고히 하고 엘리트에게 권한을 부여하며, 낮은 계층 사람들에게는 엘리트의 가치와 규범을 수용하도록 해 왔다. 예컨대 분석적・창의적 사고는 엘리트 계층의 전유물처럼 학습되고 온순함, 절제, 시간 관리, 정직 등이 서비스 직종에 강조되는 식이다. 

물론 이는 저자만의 독창적인 견해는 아니다. 리터러시와 불평등의 문제에 착목했던 교육사상가 프레이리(1921∼1997)가 있었고, 학교의 사회적 불평등 재생산을 논한 문화재생산 이론가들이 있었으며, 멀리는 프랑크푸르트학파도 상기된다. 그래서 이론사의 관점에서는 철 지난 20세기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딱히 철 지난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1990년 초판 이후 개정을 거듭한 끝에 저자는 2015년 제5판을 내면서 여전히 기본적인 문제의식이 동일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미국의 경우 지금이 역사상 가장 불평등하며, 그것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고도 진단했다.  

한국은 어떨까? 4차 산업혁명, AI 시대에 필요한 핵심역량이 국가 수준의 교육철학에서 주로 논의되는 가운데 계층 간 격차 심화라든가 불평등이라는 면모는 그리 빈번하게 조명받지 못한다. ‘미래 지향적인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경제적・심리적 여유가 없는 이들에게는 여전히 규율을 잘 지키고, 친절하며, 효율적인 의사소통 능력만이 요구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서로 다른 리터러시를 존중

다시 책의 논점으로 돌아가 보자. 이런 현실에서는 리터러시 교육이 사회의 변혁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다시 설계될 필요가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저자는 ‘해방적 리터러시’라는 개념을 공들여 설명한다. 그것은 주체가 경험하는 담론에 대한 일종의 메타적 조망 능력이다. 즉 다른 담론들을 내면화한 개인이 어떤 지배적인 2차 담론에 접촉했을 때 그것이 자신에게 주는 영향, 그것의 사회적 위상, 나아가 그것에 연계된 이데올로기를 조망하고 성찰하는 능력을 말한다. 이때 그 개인은 당면한 주류 2차 담론과는 이질적인 담론들을 이미 경험하였으므로 그것들을 바탕으로 대안 담론을 모색할 수 있다. 담론의 숫자만큼이나 리터러시가 다양하기에 ‘서로 다른 리터러시’가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고, 또 그것이 지금의 현실과는 다른 세계를 상상할 수 있게 해줄 때 ‘해방적 리터러시’라는 이름이 붙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리터러시를 사회상에 대한 성찰과 대안 모색으로까지 연계시킨 이 책은 관련 사례들을 끊임없이 환기하고 있다는 점이 또 다른 미덕이다. 인상적인 예를 꼽자면 로스쿨에 입학한 비주류 학생이 로스쿨의 주류 법적・사회적 담론에 대해 가지는 이질감에 관한 사례가 있다(미니스(M. Minnis)의 연구 인용). 여기에서 저자는 비주류 학생이 온전히 주류 담론에 적응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오히려 이중적인 담론에 속한 이 학생이야말로 담론들의 차이를 예민하게 감수하고 담론 지형의 근본적인 변화를 추동할 수 있는 주체라고 본다. 단, 이는 아직 저자가 발견한 ‘가능성’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 이 책의 한계라고도 볼 수 있겠으나, 뒤집어 보면 그만큼 변혁의 사례가 손쉽게 발견되기 어려운 사회 구조의 공고함에 대한 방증이라고 하겠다.

 

 

강민규
강원대 교수·국어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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