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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 하나로 할 말 다 하다
도장 하나로 할 말 다 하다
  • 손철주
  • 승인 2021.01.06 09: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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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철주의 미술놀이 ‘외화내빈(外華內彬)’ 9

16세기 화가 이암은 세종대왕 손자의 손자다. 어엿한 신분에 붓 다루는 솜씨가 매기단했다. 몇 점 남은 그의 개 그림은 척 봐도 야무진 손바람이 눈에 띈다. 익히 알려진 ‘어미 개와 강아지’는 곰살맞고 다정하다. 설렁설렁 그린 나무 아래서 노는 어미와 새끼 품새가 뭐 하나 모자람 없이 여물다. 강아지 세 마리는 아웅다웅한다. 흰둥이는 젖을 물어 독차지하고 검둥이는 틈새를 파고 들이민다. 눈도 채 못 뜬 누렁이는 어미 등이 미끄러운지 안간힘 쓴다. 요 녀석은 이마에서 콧등으로 흐르는 하얀 줄무늬가 어미를 빼닮았다. 모름지기 가작은 화가의 슬기로운 관찰에서 나온다.

이암, ‘어미 개와 강아지’, 16세기, 종이에 수묵담채, 163×55.5㎝,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수묵화에 포인트를 넣은 화가의 심사가 기특하다.
이암, ‘어미 개와 강아지’, 16세기, 종이에 수묵담채, 163×55.5㎝,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수묵화에 포인트를 넣은 화가의 심사가 기특하다.

짚어 볼 게 더 있다. 이암의 색감이 아주 영악하다. 어미가 찬 목걸이가 도드라지게 붉다. 거기에 매달린 방울은 부티 나는 황금빛이다. 혹 왕실의 퍼스트 독(first dog)일까. 짙고 옅은 먹빛 위주라 시선이 유독 붉은색에 사로잡히는 그림이다. 나뭇잎 아래 도장도 더불어 살펴야 한다. 위쪽 솥처럼 생긴 향로 꼴 도장에 새긴 글씨는 화가의 당호(堂號)인 ‘금헌(琴軒)’이다. 아래 사각 도장은 ‘정중(靜仲)’이란 자(字)를 새겼다. 자호를 붙여 풀어보면 ‘고요한 가운데 거문고 소리가 흐르는 집’이 된다. 뜻이 그윽한데, 이암의 디자인은 생기발랄하다. 목걸이와 도장에 묻은 붉은색의 짬짜미가 새뜻한 짝을 이룬 셈이다.

‘잘 찍은 도장 하나가 열 그림 안 부럽다’

‘잘 찍은 도장 하나가 열 그림 안 부럽다’는 말은 괜한 요설이 아니다. 우리 옛 그림 속 도장은 연지 곤지마냥 미색도 꾸미지만 알 듯 모를 듯한 화가의 속내평을 에둘러 속삭여준다. 꽃과 풀벌레 그림에 재미 붙인 문인화가 심사정의 작은 그림은 유난히 사랑스럽다. 그의 새 그림 하나를 얼른 보자. 잎사귀에 살며시 물이 든 가을날, 부리 뾰족한 찌르레기가 산사나무에 날아들었다. 새는 마구 자란 대나무와 뒤엉킨 졸가리가 싫은지 가벼이 벋은 가지에 앉는다. 화가는 화면 가운데 새를 그려놓았다. 빨간 산사자가 두어 개씩 열려 새 주변을 감싸는 구도다. 한데, 새는 어느 열매를 따먹을까. 심사정의 호 ‘현재(玄齋)’가 적힌 붓글씨 아래 도장이 길쭉한 타원형이다. 새의 눈살을 더듬어 가보라. 놈이 노리는 열매가 무엇인고 하니, ‘현재거사(玄齋居士)’라고 새긴 붉은 도장이렷다. 굵은 열매를 탐내는 새가 그림에 감칠맛을 더한다.

심사정, ‘열매 노리는 새’, 18세기, 종이에 수묵담채, 24.1×26.9㎝,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또록또록한 눈초리로 한쪽을 노려보는 새가 마치 생동하는 듯하다.
심사정, ‘열매 노리는 새’, 18세기, 종이에 수묵담채, 24.1×26.9㎝,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또록또록한 눈초리로 한쪽을 노려보는 새가 마치 생동하는 듯하다.

옛 그림은 도장으로 얘깃거리를 너끈하게 엮는다. 자주 보이는 도장은 화가의 성명과 호를 새긴 것이다. 호 대신 자를 찍거나 호와 자 둘 다 사용하는 경우도 흔하다. 별의별 도장이 뒤섞인 작품도 여럿 있다. 그림을 그린 작가의 도장은 물론이요, 그림을 모은 수장가의 소장인(所藏印), 그림의 가치를 저울질한 비평가의 감정인(鑑定人), 곁에서 공손히 구경한 감상자의 배관인(拜觀印)까지 구석구석에 웅크린다.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이 기증 받은 국보가 추사 김정희의 ‘불이선란’인데, 그 작품에서 헤아릴 수 있는 도장이 15개다. 지워서 흐릿해진 자국도 2개 있다. 이 정도는 약과다. 원나라 조맹부가 그린 13세기 산수화 대작 ‘작화추색도(鵲華秋色圖)’를 검색해보라. 찍힌 도장이 자그마치 50개가 좋이 넘는다. 

예부터 시서화(詩書畵)에 뛰어난 이를 ‘삼절(三絶)’이라 불렀다. ‘인(印)’까지 넣으면 ‘사절’이 된다. 도장 파는 일을 하찮게 보면 윤똑똑이 소리 듣는다. 돌이나 나무에 글 그림을 새기는 전각은 맵시로운 예술이다. 글씨끼리 어울려 고물고물하는 도장 하나를 찾아냈다. 무슨 이름과 자호가 이토록 길까. 해석 해보니 좀 뜨악하다. ‘청송 심씨, 덕수 이씨, 광산 김씨, 은진 송씨, 해평 윤씨, 연안 이씨, 남양 홍씨, 안동 권씨가 오로지 조선의 큰 성씨이다. 나의 내외가(內外家) 팔고조(八高祖)가 여기서 나왔다.’ 알고 보니 이름이 아니라 집안 성씨의 내력을 밝힌 인장이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까지 올라가는 성씨 내력이 전각된 문인 심사검의 인장.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까지 올라가는 성씨 내력이 전각된 문인 심사검의 인장.

자기 가계를 생뚱스레 인장에 보듬은 이는 누군가. 18세기 문인 심사검으로 아까 만난 화가 심사정의 사촌이다. 버젓한 성씨도 뻐길 만하겠지만 ‘팔고조’를 추념하는 속셈이 갸륵하다. 양반 축에 들려면 여덟 분의 고조까지 올라가는 계통을 욀 줄 알아야 했다. 조부의 조부 외조부, 조모의 조부 외조부, 외조부의 조부 외조부, 외조모의 조부 외조부가 팔고조인데, 부모까지 합쳐 서른 분이다. 티끌 한 점이 시방세계를 품는다고 했던가. 한 치 안 되는 사방(四方)에 누대에 걸친 어르신을 모시는 전각의 공력, 고개가 절로 수그러진다.

이들보다 재미가 쏠쏠한 도장은 따로 있다. 화가가 좋아하는 문구를 새겨 넣은 도장은 사색의 여지를 안긴다. 내용을 해석하고 곰곰 되새김질하는 호기심이 그림 보는 기쁨을 한결 키워준다. 여기 돌 그림이 보인다. 생긴 모양이 오래가서 ‘수석(壽石)’이고, 타고난 꼴이 괴상해서 ‘괴석(怪石)’이다. 굳이 못생긴 돌을 고른 화가의 작정은 글에서 비친다. ‘정신이 뛰어나서 귀한데 하필 모양 그럴싸한 것을 찾겠는가. 함께 좋아할 듯해서 보내니 벼루 놓는 상 머리에 두게나.’ 말인즉슨, 겉보다 속을 따지는 그대가 감상하기에 딱 좋겠다는 거다. 글 쓰고 그림 그린 사람은 황산 김유근이다. 받을 사람도 아래쪽 글에 씌어있다. ‘겨울 밤 추사 형을 위해 그렸다.’ 황산은 순조 대에 병조판서를 지내고 당시 정계를 흔들던 안동 김씨 세도가였다. 추사 김정희는 그와 막역한 사이였다.

김유근, ‘괴석’, 19세기, 비단에 수묵, 24.5×16.5㎝,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한때 소장했던 사람의 도장도 보인다.
김유근, ‘괴석’, 19세기, 비단에 수묵, 24.5×16.5㎝,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한때 소장했던 사람의 도장도 보인다.

작은 도장에 화가의 자의식을 담다

이 그림의 알짬은 도장에 있을성싶다. 왼편 세 개를 찬찬히 보자. 네모난 도장 두 개는 붉은 글씨로 ‘김유근인(金逌根印)’, 흰 글씨로 ‘세향서옥(世香書屋)’이라 새겼다. 이름과 서재명이다. 눈 돌릴 곳은 위에 찍은 두 글자짜리 호리한 도장이다. 무어라 쓰였냐 하면, 얼음 빙 마음 심, 곧 ‘빙심(氷心)’이다. 화가는 자기 속뜻을 ‘얼음 같은 마음’에 실었다. 얼음은 속이 깨끗하고, 훤히 다 비치고, 단단하다. 결백하고 허물없는 마음먹이에 견줄 만하다. 괴석도 얼음의 단단함에 밑지지 않는다. 작은 도장으로 돌을 그린 화가의 자의식에 방점을 콕 찍는 재간, 여기서 여간내기가 아닌 내공을 엿본다.

‘빙심’은 헐한 말이 아니다. 당나라 시인 왕창령의 시에서 따왔다. 제목이 ‘부용루에서 신점을 보내며’다. 자주 암송되는 뒤 구절 ‘낙양친우여상문(洛陽親友如相問) 일편빙심재옥호(一片氷心在玉壺)’를 풀이하면 이렇다. ‘낙양의 친구들이 내 소식을 묻거든 전하게/ 한 조각 얼음 같은 마음이 옥병에 들어있네.’ 얼음이나 옥으로 만든 병이나 투명하기는 똑 같다. 한 점 숨김없는 마음가짐이 이 구절의 핵심이다. 전직 대통령 한 분이 중국의 유명 대학에 갔을 때 받은 서예 족자에 이 시가 씌어있었다. 선물은 받는 이의 마음과 합치하기가 쉽지 않다.

김홍도, ‘포의풍류’, 18세기, 종이에 수묵담채, 27.9×37㎝,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마음에 드는 시 구절이 강한 메시지를 던진다.
김홍도, ‘포의풍류’, 18세기, 종이에 수묵담채, 27.9×37㎝,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마음에 드는 시 구절이 강한 메시지를 던진다.

김유근 혼자 ‘빙심’을 독점한 것은 아닐 테다. 단원 김홍도가 그린 ‘포의풍류(布衣風流)’는 작으나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왼쪽에 적힌 글귀를 알면 그림의 주제가 눈에 들어온다. ‘종이로 창을 내고 흙으로 벽을 바른 곳에서 한평생 베옷 입고 살아도 그 속에서 노래하고 읊조리리라.’ 베옷을 입는다는 게 벼슬하지 않고 산다는 얘기다. 주인공은 일찌감치 벼슬길을 마다한 채 유유자적하는 선비다. 겹처마에 고래 등 같은 기와집에 살진 못해도 시 짓고 음악 즐기는데 아무 탈 없는 안빈낙도가 몸에 익었다. 버선을 벗어던진 저 맨발을 보라. 홀가분한 그의 영육을 대변한다.

단김에 선비 집안의 인테리어를 구경해보자. 파초 잎은 색상과 생김새가 시원해서 장식용이다. 붓과 벼루, 책 꾸러미와 종이 뭉치는 문자 속 깊은 이의 벗이다. 청동기에 꽂힌 산호와 여의(如意)는 취향을 넌지시 알려주고, 발치에 놓인 생황은 봉황을 본 딴 악기로 그 음색이 처연하다. 칼은 지혜와 벽사의 상징이며, 호리병은 육체에 기대지 않는 정신을 나타내는 신선의 휴대품이다. 또 구슬픈 비파 소리는 청렴을 일깨워준다고 옛 문헌은 전한다. 그림에 도장 두 개가 찍혀있다. 아래쪽은 ‘김홍도(金弘道)’다. 위쪽 호리병 같은 도장에 적힌 글씨, 벌써 눈에 익지 않은가. 앞서 괴석에서 보았던 바로 그 ‘빙심’이다. 욕심 부리지 않아 맘씨가 가난한 이는 하늘을 봐도 부끄러움이 없겠다. 말이 말을 잡아먹는 악다구니 세상은 비루하다. 열 마디 말을 도장 하나로 함축하는 글속이 새삼 미덥다.

손철주 미술평론가
국민일보 기자, 학고재 주간 등을 지냈다. 교양미술서 베스트셀러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의 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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