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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가 디즈니 채널과 손잡은 이유
나사가 디즈니 채널과 손잡은 이유
  • 유만선
  • 승인 2021.01.11 09: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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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만선의 ‘공학자가 본 세상’ ②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연구관으로 일하고 있는 유만선 박사가 월1회 칼럼을 연재한다. 유 박사는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첨단 기술 관련 콘텐츠를 개발하고 확산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소비행위를 멈추고 직접 고안하고 만드는 일을 해보자고 제안한 바 있다. 과연 공학자가 보는 세상은 어떠할지 칼럼을 통해 확인해보자. 

아폴로 프로젝트 담당자가 홍보 나서
잘못된 지식이 확산되는 위험
과학자는 지식의 상아탑 넘어서야

누구나 아는 사실. 1969년 7월 20일, 닐 암스트롱은 인간으로는 처음으로 달에 발도장을 찍었다. 미국과 러시아의 우주경쟁에 끝을 알리는 순간이기도 했다. 달착륙을 위한 ‘아폴로 프로젝트’에는 1960년부터 1973년까지 약 258억 달러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세금이 들어갔다. 1970년 우리나라 정부예산이 약 4,327억원, 당시 환율로 약 13.6억 달러 였으니 매년 평균 약 18.4억 달러를 소비한 프로젝트는 아무리 미국 정부로서도 부담이었을 것이다. 

이때 프로젝트의 책임자였던 베르너 폰 브라운 박사는 프로젝트에 대한 지지를 얻기 위해 디즈니 채널과 손잡고, 미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열심히 홍보했다. 당시 미국에는 1,500만 대가 넘는 텔레비전이 보급되어 있었으며, 폰 브라운은 이것을 국민들에게 우주에 대한 동경을 심어 줄 좋은 환경 변화로 이해했다. 1950년대 그는 바쁜 와중에도 디즈니에서 제작한 세 편의 우주 관련 영화와 캘리포니아에 건설된 디즈니랜드의 기술자문(technical advisor) 역할을 수행했다. 

오늘날 한국. 방송에서 역사강의로 유명하던 한 강사가 이집트 역사와 관련하여 정확하지 않은 내용을 이야기하면서 문제가 된 적이 있다. 방송내용에 오류가 많다는 한 고고학자의 지적에서 출발한 사건이었으나 이후 대학원 석사 논문 표절 시비마저 생겨 결국 그는 출연하던 방송에서 하차하게 되었다. 비슷한 사건으로 한 천문학 관련 유명 유튜버가 쓴 책이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지구와 태양의 거리를 1AU(Astronomical Unit)가 아닌 1광년으로 표현하였다. 1광년은 빛이 1년 동안 이동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인데 실제 태양에서 지구까지 빛이 도달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약 8분 19초이기 때문에 그 차이가 무시 못할 정도로 컸음에도 출판과정에서 이러한 오류가 걸러지지 않아 불행하게 잘못된 지식을 담은 책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월트 디즈니(왼쪽)와 베르너 폰 브라운 박사가 '아폴로 프로젝트'에 대한 홍보에 적극 나섰다. 사진 = NASA

우생학과 안티백서라는 유사과학

이러한 방송국이나 유튜버의 ‘실수’를 넘어 시민들이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과학기술’의 탈을 쓰고 사회에 퍼져있는 지식들도 많다. 유럽에서 백인들의 우월의식을 생물학에 반영하여 생겨난 ‘우생학’, 이 학문에서 언급된 ‘혈액형과 성격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일본을 거쳐 한국에 자리 잡은 지 오래이다. 얼마 전에는 ‘뇌호흡’과 관련된 기관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후원을 받아 컨퍼런스를 개최하려다 뒤늦게 부적절함을 깨달은 정부가 후원을 취소한 사례도 있다. ‘안티백서(Anti-Vaxxer)’들은 음모론과 일부 부작용 사례를 이유로 바이러스 전염병을 효과적으로 물리칠 수 있는 근본무기인 백신접종을 거부하고 있으며, 둥근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서는 지구가 평평하다는 주장을 하는 ‘플랫어서(flat earther)’들이 모여 활동하고 있다. 

잘못된 지식의 확산에는 정보통신 기술도 큰 역할을 했다. 옛날 몇 개의 방송국들과 신문사들 만이 시민들에게 정보를 전파하는 수단이었던 시절에서 이제는 텍스트 중심의 인터넷 블로그를 넘어 유튜브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과 같은 영상, 이미지를 통한 사회관계망 서비스가 지식유통의 폭을 크게 확대하였다. 이러한 현상에는 정보가 소수에게 독점되지 않고, 다수의 시민들에게 공유될 수 있다는 좋은 점도 있지만 의도적이든 혹은 의도적이지 않든 잘못된 정보가 사회에 무분별하게 퍼져 시민들이 바른 정보로 판단을 할 수 없도록 방해할 수도 있는 단점 또한 지니고 있다.

정보의 확산이 지닌 장단점

이렇듯 지식의 소통 수단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이 시기에 과학기술 지식의 메신저로서 과학기술자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비록 인간 사회와의 소통보다는 자연을 탐구하고, 또 그것을 적절히 통제함으로써 인류 문명에 진보를 가져오는 것이 과학기술자들의 미션일 수 있다. 하지만, 과학기술자들이 ‘지식의 상아탑’ 속에서 저마다 하고싶은 연구에만 매진하고 있을 때 세상 사람들은 검증되지는 않았지만 믿기 좋은 단순한 유사과학으로 이해하기 어렵고 또 접할 기회도 충분치 않은 진짜 과학을 대체해 나가고 있다. 

앞서 언급한 베르너 폰 브라운 박사의 경우처럼 하고자 하는 연구의 추진을 위해서 국민들을 설득하는 과정은 연구비 지원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아니 인류문명에 진보를 가져올 미래의 과학자들을 키우는 일이기에 과학기술자들에게 부여된 ‘소통의 책임’을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될 것이다.

다행한 것은 최근 과학소통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고, 연구활동과 함께 대중과의 만남을 게을리 하지 않는 과학기술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그들의 연구주제와 그 성과 등을 알기 쉬운 대중의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는 재주를 갈고 닦으며, 그것을 강연이나 저술활동 등을 통해 펼치고 있다. 코로나19가 물러갈 2021년, 사람들이 모여든 치킨집에서 정치인들에 대한 비방보다 대한민국의 달탐사에 대한 이야기가 더 꽃을 피웠으면 좋겠다.

 

 

 

유만선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연세대에서 기계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3년 국내 최초 공공 메이커 스페이스인 ‘무한상상실’을 운영했으며, 팟캐스트와 유튜브에서 공학과 과학기술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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