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2-09-28 18:42 (수)
전쟁부터 도덕경까지, 물방울에 맺힌 삶
전쟁부터 도덕경까지, 물방울에 맺힌 삶
  • 하혜린
  • 승인 2021.01.18 09: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김창열 화백 별세
1980년대 김창열. 사진=갤러리 현대
1980년대 김창열. 사진=갤러리 현대

‘물방울 화가’로 불리던 이가 있었다. 50년 넘게 물방울이라는 주제에 천착해 실험과 모색을 꾀했던 김창열 화백이다. 지난 5일, 김 화백이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김 화백은 1929년 평안남도 맹산에서 출생했으며, 16세에 월남해 이쾌대가 운영하던 성북회화연구소에서 그림을 배웠다. 검정고시를 통해 서울대 미술대학에 입학했으나 6·25 전쟁의 발발로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 1957년 또래 작가들과 한국현대미술가협회를 결성해 당대 전위 미술의 주요 경향이었던 한국 앵포르멜 미술 운동을 이끌었다.  

 

김창열, 「르 피가로」, 1975, 신문에 수채화, 53.5X42cm. 사진=갤러리 현대

김 화백이 반평생을 바친 물방울과의 인연은 우연한 조우에 의해서였다. 경제적, 정신적으로 어렵던 시절, 그는 캔버스를 재활용하기 위해 캔버스 위에 물을 뿌려 물감이 쉽게 떨어지도록 했다. 그 순간 화폭에 맺힌 물방울이 아침햇살과 만나 영롱한 자태를 뽐내며 눈길을 사로잡았다.

물방울 회화는 1972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살롱 드 메」에서 처음 공개됐고, 1973년에 물방울 회화만을 모아 첫 프랑스 개인전을 개최하게 된다. 그는 한 인터뷰를 통해 “초기 물방울 회화에서 물방울은 전쟁으로 인한 상실감과 정신적 고통을 극복하는 정화와 치유의 수단이었다”라고 밝혔다. 이후 작업을 거듭하며 물방울은 작품세계에 깊이 스며들었고 정체성을 드러내는 상징물로써 기능하게 됐다. 

 

김창열, 「회귀」, 1987, 캔버스에 유채, 195X330cm.
김창열, 「회귀」, 1987, 캔버스에 유채, 195X330cm. 사진=갤러리현대

1980년 이후 김 화백은 물방울의 ‘지지체’를 모색했다. 캔버스가 아닌 거친 마대를 활용해 표면의 질감을 강조했고 물방울을 극사실적으로 표현했다. 그 결과, 현실에 존재하는 거친 마대와 극사실적으로 묘사된 가상의 물방울은 서로 대비를 이룬 채 강조됐으며, 물방울의 물질성은 사라지는 효과를 냈다.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 그는 한자의 획이나 색면, 색점 등을 연상시키는 「해체」 연작을 통해 동양의 정서를 끌어들였다. 이후 한자를 물방울 회화에 도입한 「회귀」 연작을 감행하면서 천자문과 도덕경을 통해 동양 철학의 핵심적 사상을 담아내고자 했다.

 

김창열, 회귀, 1991, 캔버스에 유채, 잉크, 197X333.3cm. 사진=갤러리현대
김창열, 「회귀」, 1991, 캔버스에 유채, 잉크, 197X333.3cm. 사진=갤러리현대

김 화백에게 물방울은 반복된 수련과도 같았다. 또 그가 겪었던 전쟁의 고통과 동서양을 오가며 마주했던 수많은 순간들이 집약돼있는 존재이기도 했다. 곧 증발해버리는 물방울의 운명과 글자라는 고정된 장치가 만나 한 화폭에 어우러져있다. 각각의 존재들이 이항(二項)이라고 할지라도 각자의 자리에서 그 가치를 드러낸다. 물방울은 김 화백의 눈물과 땀의 집약체였으며, 삶 그 자체였다. 

 

하혜린 기자 hhr210@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