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03:00 (목)
"정치적으로 이용…인권침해 불러일으켰다"
"정치적으로 이용…인권침해 불러일으켰다"
  • 허영수 기자
  • 승인 2004.06.1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가인권위-'국가보안법 적용상에 나타난 인권 실태' 보고서

국가보안법이 뭇매를 맞았다. 국가정보원·검찰 등 정부기관이 실적 올리기식 수사 관행에 따라 학문·양심의 자유를 억압하거나 국가보안법을 자의적으로 적용하는 등 인권을 침해한 사례가 낱낱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김창국, 이하 인권위)는 지난 1일, 국가보안법이 제정될 시기부터 김대중 정부에 이르기까지의 적용실태와 인권침례 사례를 조사·분석한 '국가보안법 적용상에서 나타난 인권 실태' 보고서를 국가기관으로서는 처음으로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가보안법은 취중농담, 그림, 논문, 저서, 신문기사, 변호사의 변론, 영화, 소설 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적용됐으며, 장관, 국회의원, 대학총장, 교수, 학생, 노동자, 일반서민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이 법에 의해 처벌받았다. 인권위는 "우리 사회의 의식을 지배하는 거대한 체제"라면서 "국가안보를 위해서라면 개인의 표현의 자유는 부차적인 것이고, 국가가 인정하는 사고의 틀을 벗어난 생각, 사상은 처벌해야 한다는 의식을 주입하는 데 유효한 매개가 됐다"라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열거한 사례 가운데, 학문의 자유와 관련된 것만 해도 16건에 달했다. 리영희 교수의 저서 '8억인과의 대화' 사건, 경상대 교양교재 '한국사회의 이해' 사건, 서울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 논문 사건 등이 그것이다. '막거리법'인 국가보안법에 의해 고충을 겪은 이는 학계에서도 이젠 헤아릴 수 없을 정도. 리영희 한양대 교수, 장상환 경상대 교수, 신인령 이화여대 총장, 김세균 서울대 교수, 황한식 부산대 교수, 이진경 서울산업대 교수, 서관모 충북대 교수, 송주명 한신대 교수, 정진상 경상대 교수, 이장희 한국외국어대 교수, 박지동 광주대 교수, 강정구 동국대 교수 등 수다하다.

이와 관련 인권위는 "이적표현물로 간주돼 처벌받은 연구물은 대체로 명백한 위험이 있는 표현에 대한 입증도 없이 '북한의 주장에 동조한다',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한다'라는 애매모호한 이유로 처벌되는 등 학문활동에 대해 국가보안법이 과도하게 남용됐다"라면서 "국가보안법의 적용 등은 정치적으로 이용됐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이장희 교수의 '나는야 통일1세대' 사건, 박지동 교수의 '진실인식과 논술방법' 사건 등은 15대 대선 직전인 1997년 11월에 나란히 일어났다.

정치적으로 악용된 경우는 국가보안법 제정·개정을 보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인권위에 따르면, 국가보안법은 좌우대립이 심했던 시기에 '인권침해적 요소가 있으나 국가 비상사태를 해결한다'라는 한시적인 명분을 가지고 제정된 이후, 오히려 강화된 형태로 개악돼왔다. 개정시기도 1949년, 1950년, 1958년, 1960년, 1962년, 1980년, 1991년 등 대체로 쿠데타를 일으킨 직후이거나 집권세력이 그 정권을 연장시키기 위해 초헌법적인 조치를 취할 때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의 국가보안법도 노태우 정권 당시 날치기 통과된 법안이다.

한편, 국가보안법 수사절차상의 문제도 심각하게 제기됐다. 수사관들의 '실적올리기식' 수사관행이 불법체포, 감금, 고문 등 인권침해를 초래해왔던 것이다.

인권위는 "전국민적인 자기검열 통제 시스템으로 정착해 상당한 인권침해를 불러일으킨 만큼, 조만간 국가보안법 문제에 대한 공식 의견을 표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갓 출범한 17대 국회에서 국가보안법 개·폐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허영수 기자 ysheo@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