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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국가보안법 폐지해야
기고 : 국가보안법 폐지해야
  • 홍성태 상지대
  • 승인 2004.06.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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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대 상지대•사회학 
정말이지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국가보안법은 즉각 폐지돼야 한다. 어떻게 아직까지도 국가보안법이 우리를 괴롭히고 있을 수 있는가. 정녕 우리가 21세기 지구화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  

국가보안법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 통치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일본 제국주의는 식민지 조선을 통치하기 위해 식민지 조선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으며, 나아가 생각하고 표현할 자유조차 억압했다. 일본 제국주의는 법이라는 형식을 빌어서 이렇듯 반인권의 통치를 강행했다. 그 법의 이름은 '치안유지법'이다. 

국가보안법은 1948년 12월에 제헌국회 법률 제10호로 공포됐다. 이듬해 이 법에 의해 무려 11만 8621명의 사람이 입건 또는 체포됐다. 민주화됐다고 하는 김영삼 정권 때에도 1974명을 잡아 가뒀고, 심지어 남북정상회담으로 노벨상을 받은 김대중 대통령 때에도 1036명을 잡아 가뒀다. 국가보안법은 너무나 무섭다. 

이 법은 정상적인 근대 국가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법이다. 일찍이 제임스 밀이 '자유론'에서 갈파했듯이, '사상의 자유'는 자유사회의 기초이다. '사상의 자유'를 용납하지 않는 자유사회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국가보안법은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국가보안법이 있는 한 이 사회는 결코 자유사회라고 할 수 없다. 자유민주주의를 외치며 국가보안법을 고집할 수는 없다. 

'사상의 자유'는 언제나 '표현의 자유'를 수반한다. 케임브리지대에서 사학을 가르쳤던 존 베리는 '사상의 자유의 역사'에서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의 우화가 보여주듯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을 영원히 표현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생각이라도 자유롭게 표현된다면, 사회의 발전에 긍정적으로건 부정적으로건 이바지할 수 있다. 

국가보안법은 표현의 자유는 물론이고 사상의 자유 자체를 원천적으로 억압하려 한다는 점에서 몰상식한 반인권법이다. 그것이 제정되던 때의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국가보안법은 이미 오래 전에 시대착오적인 법이 됐다. 이 법의 시대적 배경이라고 할 수 있는 2차대전 뒤의 냉전체제는 이미 15년 전에 베를린장벽과 함께 무너져버렸다. 나아가 2000년의 남북정상회담은 사실상 국가보안법에 대한 사망선고였다. 

국가보안법의 폐단은 단순히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독재보안법'으로서 독재권력을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로 사용된다는 데에 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는 모두 국가보안법으로 정권을 지탱한 '국가보안법 독재권력'이었다.

독재권력에 맞서는 사람들은 누구나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받을 수 있었다. 독재권력은 독재권력에 맞서는 것을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몰아갔던 것이다. 수많은 민주인사들이, 또한 일반 시민들이 국가보안법 위반사범으로 몰려 옥살이를 해야 했다. 

국가보안법의 궁극적인 폐단은 독재권력에 맞서는 것 자체를 극히 잘못된 것으로 여기도록 만드는 것이다. 독재권력은 국가보안법을 통해 우리를 독재권력에 순종하는 존재로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국가보안법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은 이런 독재권력의 지배를 계속 유지하고자 하는 것과 같다. 국가보안법이 유지되는 한, 독재권력은 여전히 살아 있다. 국가보안법은 만악의 근원이다. 그것은 이 사회의 가장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고 이 사회를 기형으로 만드는 심각한 병종이다. 

2002년 11월 29일, 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가보안법 장례위원회가 꾸려져 기자회견을 열었다. 같은 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는 국가보안법 사망진단서를 발부했다. 인의협은 '선천성 기형이 너무 심해 53년 이상 생존한 것은 전 세계적으로 매우 드문 경우로 학회에 보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개혁을 다짐한 17대 국회는 이 사망진단서를 처리해야 한다. 더 이상 국가보안법이 강시가 돼 날뛰지 못하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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