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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아젠다 7 : 고령화시대를 어떻게 맞을 것인가
학술아젠다 7 : 고령화시대를 어떻게 맞을 것인가
  • 박경숙 동아대
  • 승인 2004.06.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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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분리 배제하는 관점의 전환부터

편집자주 : 고령화 사회가 시작됐다는 것에는 모두 동의하고 있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고, 고령화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제반 논의는 많이 부족한 현실이다. 사회복지학 계열의 논문들이 복지를 바라는 사람들의 실질적 요구를 채워주지 못하는 지적 유희로 흐르고 있다는 비판에서 학계의 상황도 짐작할 수 있다. 인구변동에 대한 사회구조적 논의, 정치경제학적 접근, 가족중심 사회구성의 문제 등에 대해서 학계의 공론이 시급한 실정이다.

>>연령계층화 문제를 생각한다

연령의 의미는 사회적으로 구성된다. 역사인구학자 피터 라스렛은 영국에서 개인이 은퇴이후에도 오랜 생애를 영위할 수 있었던 것은 공업화 시기보다 훨씬 늦은 20세기 중반이 지나서였다고 지적한다. 공업화가 시작된 시기와 무려 2~3세기나 차이가 나는 것이다. 시간과 지역을 훌쩍 뛰어 넘어 현 우리 사회에서는 선례가 없는 빠른 속도로 인구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그 변화 속도를 따라 잡기 위해 고령화 추계는 빈번하게 재조정되고 있다. 전체 인구구조에서 노인의 비중이 증가한 것과 더불어 개인 생애에서도 고령화 경험이 점차적으로 보편화되고 있다. 가족과 직장생활에서는 다른 연배 사이 관계가 빈번해지고 장기화되고 있다.

풍성한 연구들, 그러나 결여된 이론


이런 배경에서 고령화 관련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한 편의 연구 진영은 나이든 사람들의 삶에 대한 연구들로 채워지고 있다. 노년학, 사회복지학, 가족학, 사회학 등 여러 학문 분과에서 노인과 노년의 구체적인 삶에 대한 연구들이 쏟아지고 있다. 양적으로 증가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다루고 있는 주제도 가족, 건강, 노년의 심리적 복지, 세대관계, 연령차별의식 등 그 폭이 다양하다.


다른 한 진영에서는 고령화의 사회구조적인 영향에 대한 연구들이 인구, 경제, 복지정책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연령구조의 변화에 따른 노동수급구조의 변화, 연금제도의 개혁, 의료시설의 수급구조의 계측 등 고령화의 사회구조적 효과를 예측하는 연구들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다양한 연구결과들의 ‘풍성함’이 이론이 결여된 현상들의 나열에 그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노년연구들은 노년의 삶이 소외됐다는 것을 재차 확인시켜주는 결과들로 채워진다. 노인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지원요인들을 찾는 데 연구지향이 맞춰지면서 노년 소외에 대한 사회적 대응을 촉구할 뿐 이러한 문제가 창출된 ‘맥락’에 대한 설명은 쉽게 빠져버린다.


대부분의 연구가 복지를 증진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삶에 실질적으로 어떠한 기여도 못하는 지식인들의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고 신랄하게 비판받기도 한다. 고령화의 사회구조적 효과를 강조하는 거시구조 연구들도 흔히 인구의 연령구조 자체가 사회적으로, 정치경제적으로 직조된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함정에 빠진다. 인구변천은 외생적으로 주어진 변화로 파악될 뿐 인구변동을 결과한 사회구조적 요인에 대한 이해는 상당히 취약한 편이다. 주체가 빠져 버린 노인소외론과 인구변천과 사회구조의 기능적 조응만을 강조하는 관점이 주류가 되면서 노인문제는 더 심화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도 제기된다.

정치경제적 맥락에서 연령불평등 짚어야

▲ © 교수신문
이러한 지점에서 제도적, 문화적으로 재생산되는 연령차별구조에 대한 폭넓은 담론이 활성화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령통합을 막고 있는 다양한 제도적 연령 장벽과 사회적 관계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질 필요가 있다.


우리의 삶에는 연령차별의 내부 식민주의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노년은 의존과 비합리적 보수지향으로 명명되고 타자화된다. 노년의 육체, 인지능력, 태도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경로효친’의 의미는 취약자에 대한 ‘보호’의 의미로 이해되고 있다. 이 뿐이랴. 연령에 따른 각종 선발기준이 연령차별을 재생산하는 구조로 작동하고 있다.


연령관계는 우리사회의 지배적 불평등구조-노동, 젠더관계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노동에서의 연령통합을 강조하는 최근의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노년노동에 대한 자본의 이해는 부정적인 입장으로 일관돼 있다. 고용유연화가 심화되면서 제도적 협약에서의 조기정년이 ‘문화’로서 고착돼 가는 징후도 감지할 수 있다. 과연 지배적인 노동배제문화와 노동기여를 강조하는 사회보험의 재정긴축 논리 사이에서 어떠한 해답을 구할 수 있을까.


연령불평등은 젠더, 노동 불평등과 함께 우리사회의 가족중심 사회구성에서 고유한 불평등 메카니즘으로 재생산되고 있다. 가족연대의 원리에서 노동, 젠더, 연령불평등이 재생산되고, 서로의 불평등을 자신의 이해에 이용하는 순환관계가 존재한다. 이런 의미에서 가족중심주의 사회구성에 대한 비판적 접근이 요구된다. 과연 한국적 복지는 가족지향을 유지해야 하는가, 폐기해야 하는가. 노동불평등과 젠더불평등은 어떠한 메카니즘으로 연령불평등을 심화하는가.


연령불평등은 단순히 생리적 과정이나 연령구조의 동학의 결과가 아니라 정치, 권력관계에서 직조된다. 세대가 사회정치변동의 주요 힘이 되고 생애가 연령에 따라 제도화되고 생애를 통해 불리와 혜택이 누적되는 연령계층화 현상 이면에는 다른 사회불평등 요인이 개입돼 있다. 현재 관심이 주목되고 있는 세대간 정치적 태도의 차이에 대해서도 좀더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지 않은가. 현재의 세대갈등론은 세대대체론적 관점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압축변동은 세대들 사이의 가치관의 차이도 크게 하였지만, 상이한 역사적 주체들의 접촉의 밀도도 크게 하고, 상호 적응의 자원도 창출해 낸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세대 갈등을 결과한 정치경제적 맥락이 존재하는 것이다. 서구의 복지국가 개혁을 둘러싸고 빚어진 여야 갈등에서나 우리 사회에서 표심을 잡기위한 여야의 경쟁에서 모두 세대내부의 이질성과는 관계없이 동질적 세대특성으로 귀속시키고 정치적 희생양으로 동원하는 선동주의의 행태를 찾아볼 수 있다. 


내부 식민주의와 정치, 권력적으로 구조화되는 연령계층화 현상은 그 지배력만큼이나 우리의 문제의식에 쉽게 포착되지 않고 있다. 연령계층화의 힘에 대한 문제의식은 근본적인 인식, 발상의 전환을 필요로 한다. 지하철이나 공공장소에서 노약자 보호석이 상징하는 분리와 배제, ‘노인’, ‘노령화’와 같이 일상화된 언어구사에서 표현되는 연령분리적 표현들을 문제로 제기하는 관점의 전환과 담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미국 브라운대에서 ‘미국과 일본에서 노인부모와 자녀사이의 지리적 근접성’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재미아시아 노인의 적응전략: 거주지와 세대권’, ‘노인가구 변화의 인구 사회요인’, ‘세대관계의 다양성과 구조’ 등의 논문이, ‘고령화사회 이미 진행된 미래’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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