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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희의 박물관 여행] 남한에서 고려를 만나다
[박찬희의 박물관 여행] 남한에서 고려를 만나다
  • 박찬희
  • 승인 2021.02.01 1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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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부터 강진 고려청자박물관까지
국립중앙박물관 ⓒ박찬희

박물관은 장소성이 중요하다. 특히 역사박물관일 경우 그 중요성은 훨씬 커진다. 장소는 역사박물관의 정체성을 부여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해당 시대나 사건과 관련이 있는 여러 장소 가운데 가장 상징적인 곳을 신중하게 선별해 박물관을 짓는다. 일단 박물관이 들어서면 해당 장소는 역사적 무게감이 더해져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다.  

장소성을 지닌 대표적인 공간이 수도다. 한 나라의 수도만큼 강력한 장소는 드물다. 백제를 예로 들면 수도를 따라 서울에는 한성백제박물관, 공주에는 국립공주박물관, 부여에는 국립부여박물관이 들어섰다. 그런데 누구나 아는 것처럼 역사상 수도가 남한에만 있었던 건 아니다. 대표적으로 고려가 그렇다. 고려의 수도는 오랜 기간 개성(고려 당시의 이름은 개경)이었고 잠시 동안 강화가 수도였다. 아쉽게도 개성은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곳이다. 이러한 현실 때문인지 책으로는 자세히 알고 있는 고려의 역사가 종종 추상적으로 다가온다. 박물관 역시 고려의 역사를 전반적으로 다룬 독립된 박물관을 찾기 어렵다. 

고려를 상징하는 유물이 있는 곳

박물관 가운데 먼저 눈여겨 볼 곳은 국립중앙박물관이다. 선사시대부터 대한제국까지 시대 순으로 전시한 역사 전시실에 고려실이 마련되었다. 고려1실과 고려2실은 주제별로 다양한 유물을 전시해 고려의 사회와 문화를 전반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전시물 중에는 고려를 상징하는 유물인 금속활자와 고려의 왕이었던 인종의 무덤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해지는 유물이 포함되었다.

고려실뿐만 아니라 불교조각실과 금속공예실에도 고려의 유물이 전시되었다. 불교의 국가답게 불교 관련 유물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고려의 큰 불상은 생김새가 이상하다는 편견을 깨뜨리는 하남 하사창동 철조석가여래좌상(보물 332호), 청동 병에 홈을 내 그림을 그린 후 그 홈에 은실을 끼워 넣은 청동 은입사 포류수금문 정병(국보 92호), 성거산 천흥사명 동종(국보 280호)은 눈길을 휘어잡는 작품들이다. 이 전시실은 고려의 역사에서 불교가 차지한 위치를 충분히 짐작케 해준다. 

고려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문화유산이 고려청자다. 국립중앙박물관 청자실에는 수준 높은  고려청자들이 대거 전시되었다. 해방 이후 국립박물관(국립중앙박물관)이 조선총독부박물관을 접수하면서 고려청자들이 박물관 소장품이 되었다. 1909년 개관한 우리나라 최초의 박물관인 제실박물관(해방 이후 덕수궁 미술관)에서는 초기부터 뛰어난 고려청자를 수집하였다. 이곳은 1969년 국립박물관으로 통합되었다. 또한 1949년 개성에 있던 국립박물관 개성 분관의 뛰어난 고려청자들이 불안한 정세로 말미암아 국립박물관으로 이관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국립중앙박물관의 고려청자는 최고 수준을 자랑하게 되었다. 전시실에서는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고려청자의 대명사인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국보 68호)과 쌍벽을 이루는 청자 참외모양 병(국보 94호)을 비롯한 뛰어난 고려청자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국립청주박물관. ⓒ박찬희

전국에서 만날 수 있는 고려

지방의 국립박물관 가운데 눈여겨볼 곳은 국립청주박물관이다. 청주는 예전부터 충청도의 중심 지역 가운데 한 곳이었다. 바로 이곳에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 서적인 직지심체요절이 간행된 흥덕사(사적 315호)가 있었다. 또한 사뇌사라는 절터에서는 무려 수백 점에 달하는 고려 시대 금속공예품이 발견되었다. 뿐만 아니다. 현존하는 유일한 고려 시대의 먹이 발견된 곳 또한 이곳이다. 때문에 국립청주박물관의 고려실은 다른 지역에 비해 의미가 깊다. 이곳은 청주를 중심으로 한 충청북도의 고려 시대 유물을 다채롭게 전시해 당시 지방 문화의 한 단면을 입체적으로 제시했다. 전시된 유물 가운데 고려 시대 먹인 청주 명암동 출토 ‘단산오옥’명 고려 먹(보물 1880호)이 눈낄을 끈다. 청주 시내에 있는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국보 41호)과 흥덕사지 곁에 건립된 청주고인쇄박물관은 고려 시대 청주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 

강화역사박물관
강화역사박물관. ⓒ박찬희

전국 여러 곳에는 고려청자를 만들던 가마터가 남아 있다. 가마터에는 가마와 더불어 막대한 양의 고려청자 파편이 함께 전해진다. 여러 고려청자 제작지 가운데 가장 중요한 곳이 전라남도 강진과 전라북도 부안이었다. 이곳에서 발견된 청자 파편들의 수준과 양으로 살펴보면 고려청자를 대표하는 작품들이 이곳에서 제작되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한 여러 박물관에서 만나는 뛰어난 고려청자의 고향은 대부분 이곳이다. 이 점을 중시하여 두 곳에 박물관이 건립되었다. 강진의 고려청자박물관과 부안의 부안청자박물관이 그곳이다.

고려청자박물관. ⓒ박찬희
부안청자박물관. ⓒ박찬희

이중 먼저 생긴 곳이 고려청자박물관이다. 1997년 개관 당시 이름은 강진청자자료박물관이었으며 2006년에는 강진청자박물관으로, 다시 2015년에는 고려청자박물관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박물관 근처 곳곳에는 고려청자를 굽던 가마터가 남아있으며 박물관 바로 곁에도 가마터가 전시되었다. 2011년에는 부안청자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이 근처에는 고려청자를 굽던 유천리 가마터가 남아 있다. 한편 최상급의 청자가 아니라 질이 낮은 고려청자를 제작하던 곳에도 박물관이 세워졌다. 인천의 녹청자박물관이 그곳으로 고려청자의 다양성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강진과 부안에서 만든 고려청자는 서해안을 따라 개성으로 운반되었다. 바닷길은 막대한 양의 고려청자를 빠른 시간 안에 운반할 수 있었지만 곳곳에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개성으로 가는 바닷길 가운데 가장 악명 높은 곳이 태안의 안흥 앞바다였다. 2007년 이곳에서 고려청자 2만3000여 점을 싣고 가다 침몰한 배가 발견되었다. 이 발견을 시작으로 여러 척의 고려 시대 배와 많은 고려청자들이 오랜 침묵을 깨고 모습을 드러냈다. 강진과 부안에서 만든 고려청자는 서해안을 따라 개성으로 운반되었다. 바닷길은 막대한 양의 고려청자를 빠른 시간 안에 운반할 수 있었지만 곳곳에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개성으로 가는 바닷길 가운데 가장 악명 높은 곳이 태안의 안흥 앞바다였다.

현재 고려 역사의 주 무대인 개성에는 갈 수 없다. 그러나 남한 곳곳에는 고려를 다룬 여러 박물관이 자리 잡았다. 이 박물관들은 다양한 고려의 모습을 전해줄 뿐만 아니라 씨줄과 날줄처럼 밀접하게 연결되어 새롭고 생생한 고려를 만들어가고 있다.

박찬희 박물관 연구소 소장
박찬희 박물관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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