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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서 친일파의 출현경위와 그들의 득세경위
한국사회에서 친일파의 출현경위와 그들의 득세경위
  • 김채수
  • 승인 2021.02.08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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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는 강점기에 한국의 사회를 자신들의 일본사회와 동일하게 자본주의사회로 전환시켜 나갔다. 그 과정에서 일제의 한국인 탄압의 앞잡이 역을 행해갔었던 자들이 출현했다. 일제가 그들을 양산해낼 수 있었던 것은 한마디로 말해 당시 일제가 한국인들에게 대해 그야말로 아주 야비하기 그지없는 자본주의 정책을 취했었기 때문이었다. 

일제가 한국에 대해 취했던 가장 대표적 식민지정책은 한국민족을 양분시켜 갔던 민족분열의 정책 바로 그것이었다. 일제는 자신들의 식민지정책에 적극 동조하는 자들에게 대해서는 어떤 경제적 이익을 파격적으로 또 지속적으로 부여해 주는 바로 그러한 정책을 취해갔다. 또 일제는 그러한 피상적 자본주의정책을 취해 한국의 농민들을 절대빈곤상태로 몰아갔다. 그 결과 한국인들의 일부는 어떠한 매국적 행위도 서슴지 않고 시키는 대로 행해갔었던, 소위 ‘친일파’라 명명되는 자들로 전락해갔던 것이다. 일제는 자신들의 식민지정책에 동조하지 않는 자들로부터 농지를 빼앗아 그것을 자신들의 식민지정책에 적극 동조해 가는 자들에게 나누어줌으로써 한국인들을 ‘친일’과 ‘반일’이라고 하는 두 부류로 양분시켜갔었던 것이다. 이렇게 일제는 자신들의 식민지국의 한국인들에게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자본주의사상을 주입시킨 연후에, 토지·식량·금전 등에 대한 그들의 물질적 소유욕을 끊임없이 자극시켜감으로써 민족분열과 친일파정책을 취해나갔었던 것이다.

일제가 패망하자, 그들은 자신들의 실권을 친일파들에게 넘기고 한반도를 떠났다. 그러자 이제는 미·소가 한반도에서 일제의 역할을 행해가게 됐는데, 그 때 남한에서의 미국은 일제로부터 막대한 유산들을 넘겨받은 친일파들의 등에 업혀 한국을 컨트롤해 가게 됐다. 그 결과 지금까지도 한국사회에서는 일제로부터 넘겨받은 정치적 실권과 유산을 활용해가면서 일제의 대리 역을 행사해가는 친일파들과 그들의 후예들이 미·일의 자본주의세력과 연계해 정치·경제·군사·교육·법조·의료·학술계 등의 각 방면을 장악해 가고 있는 것이다. ‘촛불혁명’이 세운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적폐청산’이란 사실은 그들을 위시해 그들이 저질러온 사회 각 분야의 병폐들을 일소해내는 작업을 의미했던 것이다.

사실상 강점기 한국사회를 지배해갔던 일제의 군국주의세력이란 일본과 한국의 문호를 개방시킨 미국의 산업자본주의세력권 내에서 작동해가던 세력에 불과한 것이었었다. 다시 말해 강점기 일제가 설혹 한국을 지배해갔던 제국주의국가였기는 했었지만, 그러나 일제는 기독교문화를 바탕으로 해서 공동 전략을 취해가는 서구 열강, 즉 근대산업자본주의세력에 컨트롤당해 가던 존재에 불과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제는 자신들의 식민지로 한국을 통치해가기는 했었지만,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자본주의세력의 눈치를 봐가지 않을 수 없었던 형국이었다.  이러한 정세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던 친일세력의 일부는 기독교인이라 하는 탈을 쓰고, 강점기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자본주의세력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어가고 있었다. 

해방 후 일제를 패망시킨 미국이 한국을 관리해가게 되자, 친일세력들은 사대주의사상에 의거해 미국 편에 가담했고, 또 미국은 그들을 활용해 한국을 통치해가게 되었다. 그러한 정세 속에서 강점기의 친일세력들은 한 번 더 자신들의 득세 기회를 얻게 되어, 자신들의 생존전략의 일환으로 통일저지의 선봉에 서게 됐던 것이다. 

김채수 전 고려대 교수·일어일문학
일본 쓰쿠바대에서 문예이론을 전공해 박사를 했다. 2014년 8월 정년퇴임에 맞춰 전18권에 이르는 『김채수 저작집』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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