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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희의 박물관 여행] 개혁군주 정조의 꿈을 엿보다
[박찬희의 박물관 여행] 개혁군주 정조의 꿈을 엿보다
  • 박찬희
  • 승인 2021.02.22 16: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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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박물관 ⓒ박찬희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은 여럿이다. 특히 수원 화성, 창덕궁의 규장각, 김홍도의 풍속도첩,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는 애써 떠올리지 않아도 될 정도다. 어느 것 하나 뒤지지 않지만 그래도 가장 앞머리에 놓일만한 것을 꼽자면 아마 화성이 아닐까 싶다. 정조 시대를 상징할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든든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도시를 감싸 안았다. 매년 적지 않은 사람들이 화성을 찾아 성길을 걷고 화성행궁을 방문한다. 화성의 위상은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사회책을 보면 단박에 확인된다. 조선 후기를 시작하는 단원의 대표 문화유산이 화성이다. 

화성은 정조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수원부의 중심지 근처에 있는 화산으로 옮겼다. 때문에 기존의 중심지를 대신할 새로운 곳이 필요했는데, 그곳이 신도시 화성이었다. 정조는 화성을 자신의 꿈이 반영된 혁신적인 도시로 만들고자 했다. 그는 축성에 필요한 비용을 장기적으로 모으는 한편 효율적으로 성을 짓기 위한 방법을 다각도로 마련하였다. 그 결과 10년이 걸릴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채 3년이 자나기 전에 화성을 완성하였다. 아울러 농업과 상업이 발달할 수 있도록 기반을 조성하였다. 

수원화성박물관은 화성 전문박물관이다. 국내에는 성을 전문으로 한 박물관이 드물어 한양도성박물관이나 계양산성박물관 등 손에 꼽을 정도다. 그만큼 성을 독립적으로 다루기 위해서는 그만한 역사성과 건축적 가치가 높고 현재 남아있는 상태가 좋아야한다. 화성은 이런 점에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수원시에서도 이 점에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 같은 해(2009년)에 개관한 수원박물관과 역할을 분리시켜 따로 이 박물관을 만들었다. 전문박물관은 특정 주제를 다루기 때문에 밀도 깊은 전시가 가능하고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기에 유리하다. 화성과 수원화성박물관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서로의 가치를 높여준다.  

박물관이 들어선 곳은 화성의 중심부다. 이곳은 외부에서 방문하기 편하고 또 화성의 중요한 장소로 찾아가기 좋다. 박물관에서 차지하는 접근성의 중요성을 고려한다면 이곳의 입지는 상당히 좋은 편이다. 박물관에서 몇 분만 걸어가면 왕이 화성에 행차할 때 머물던 화성행궁이 나온다. 화성행궁은 화성 성길을 걷지 않는 사람도 편하게 방문하는 인기 높은 장소다. 입지가 좋지 않아 자체로는 뛰어난 곳임에도 불구하고 관람객이 적은 박물관이 드물지 않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이곳은 상당한 강점을 지녔다. 
박물관의 강점은 입지뿐만 아니다. 화성과 정조는 조선 후기 뿐만 아니라 한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정조는 조선 후기를 이끌어간 개혁 군주로, 아버지의 비극적인 죽음을 딛고 왕이 된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효심이 넘치는 아들로 기억되곤 한다. 한편 화성은 정조의 꿈을 펼치고 실험한 곳으로, 합리적으로 설계되고 과학적 원리가 구현된 곳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런 이유로 정조와 화성은 긍정적인 인지도가 상당히 높다. 접근성과 인지도가 어울려 박물관은 화성을 찾아오는 방문자가 들려할 필수 코스가 되었다.   

박물관 건축은 이곳이 화성 전문박물관이란 점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박물관 건물 자체는 성벽을 연상하게 하고 중앙 부분은 망루의 하나인, 검은 벽돌로 만든 동북공심돈을 옮겨 놓은 듯하다. 건물 외벽의 일부는 검은 벽돌로 쌓은 느낌이 들도록 만들었다. 화성의 건축적 특징 가운데 하나가 검은 벽돌이라는 점을 주목한 것이다. 외관뿐만 아니다. 실내 전시실도 벽돌의 이미지가 떠오르도록 만들었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동북공심돈 계단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듯 벽면을 따라 둥글게 올라가도록 설계했다. 다만 아쉬운 건 화성의 아름다움과 성돌이 전해주는 거칠거칠한 질감이 건축에 강하게 반영되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화성축성실 ⓒ박찬희

박물관 전시실은 모두 세 곳이다. 1층에는 기획전시실이, 2층에는 두 곳의 상설전시실이 있다. 상설전시실은 화성축성실과 화성문화실로 구성되었다. 화성축성실은 화성 축성의 역사를 보여주는 곳이다. 전시실 입구부터 축성 사업의 주인공인 정조, 화성을 완공한 후 펴낸 화성성역의궤, 축성 과정, 완성된 종로 거리와 낙성연을 보여준다. 이 전시실을 살펴보면 어떤 과정을 거쳐 성이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다.

 

화성문화실 ⓒ박찬희

맞은편에 자리 잡은 화성문화실은 크게 3가지 주제로 구성되었다. 1795년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에서 개최한 회갑 잔치, 축성의 중심 인물인 채제공, 정조의 핵심적인 물리력었던 장용영이다. 회갑 잔치가 끝난 후 간행된 원행을묘정리의궤는 당시 잔치의 내용을 파악하고 복원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채제공은 정조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이런 관계에 주목한 그의 후손은 박물관에 초상화를 비롯한 채제공 관련 유물을 대거 기증했다. 덕분에 박물관의 전시실이 더욱 풍성해졌다. 한편 장용영 전시 공간은 비교적 넓게 만들어 정조 시대 장용영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대형 화성 모형 ⓒ박찬희

전시에서는 디오라마와 모형이 적지 않은 역할을 한다. 1층 넓은 공간에는 대형 화성 모형이 전시되었다. 이 모형은 화성의 구조와 배치를 한눈에 살펴보기에 좋다. 상설전시실 여러 곳에서도 디오라마와 모형을 만난다. 특히 화성행궁, 화성을 만드는 일련의 과정이나 종로 거리, 회갑 잔치, 서북공심돈 내부 모형은 현장을 실감나고 전해주고 이해하게 쉽도록 도와준다. 디오라마와 모형의 장점이 잘 발휘될 수 있었던 바탕에는 공사 보고서인 화성성역의궤와 잔치 보고서인 원행을묘정리의궤의 힘이 크다. 이 책에는 상세한 기록뿐만 아니라 관련 그림들이 함께 실렸다. 

상설전시실은 화성의 축성 및 화성과 관련된 중요 주제를 일목요연하게 다루었다. 박물관을 방문하는 관람객들은 전시를 보면서 화성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박물관이 밝힌 박물관의 목표 가운데 하나가 화성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소개하는 것이다. 화성이 다른 성과 다른 점 가운데 하나가 성이 전해주는 아름다움이다. 화성을 본 사람이라면 대부분 동감한다. 전시에서는 이 점이 간단하게 다루어졌지만 앞으로 아름다움의 내용이 무엇이고 그 점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구체적이고 풍부하게 제시된다면 전시가 더 풍성해질 것이다.

 

기획전시실 ⓒ박찬희

수원화성박물관은 기획전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상설전과 달리 기획전은 전시 기간이 짧기 때문에 상설전에서 다루지 못한 다양한 주제들을 전시하기에 알맞다. 화성은 전시의 범주가 비교적 분명해 화성 및 정조와 관련된 주제가 기본을 이룬다. 두 주제는 관련된 이야기가 풍부하기 때문에 기획전에서는 다양한 갈래로 풀어나가기 좋다. 실제로 지금까지 박물관에서는 두 주제를 바탕으로 삼아 다양한 기획전을 개최하여 주제의 깊이와 폭을 더하였다. 또한 기획전을 통해 박물관은 화성 전시의 중심지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아나갔다. 한편 박물관을 방문한 관람객이 자연스럽게 기획전을 먼저 관람할 수 있도록 만든 공간 구조도 기획전이 힘을 얻는데 한몫한다.

화성이 오늘날의 위상을 확보할 수 있었던 요인 가운데 하나가 박물관이다. 수원화성박물관은 문화유산의 활용과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해 박물관이 어디에 자리잡아야하는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고 또 무엇을 담아야하는지,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

 

박찬희 박물관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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