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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 텍스트에 '당혹감'을 새기다
프로이트 텍스트에 '당혹감'을 새기다
  • 하혜린
  • 승인 2021.03.05 0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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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_『프로이트의 몸』
리오 버사니 지음 | 윤조원 옮김 | 필로소픽 | 326쪽

퀴어 이론가 리오 버사니의 국내 첫 번역서 
프로이트를 이루는 기존 담론 전복해

 

리오 버사니(Leo Bersani, 1931~)는 퀴어 비평의 기원이 되는 존재 중 한 명이다. 국내에서도 퀴어 이론에 대한 관심이 커져감에 따라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 등을 포함한 다수의 학자들이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리오 버사니는 여전히 국내 독자들에게 낯설다. 그 이유는 그의 글이 우리말로 번역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문학을 전공한 버사니는 캘리포니아주립대 명예교수다. 그는 퀴어 담론 중에서도 특히 남성 동성애에 일관되게 집중하고 있다. 국내 퀴어 담론의 상당 부분이 페미니즘에 뿌리를 두는 젠더 이론에 국한돼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번역이 어려웠던 이유에 대해 짐작해볼 수 있다. 

『프로이트의 몸』, 제목에서부터 약간의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성에 대한 프로이트의 급진적 사고, 남근 중심적 규범과는 거리가 멀다. 버사니의 프로이트 읽기는 “이론화하는 동시에 그 이론화에 실패하는 프로이트 정신분석의 욕망을 읽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가장 단호하게, 가장 피상적으로 읽는 일

버사니는 베케트(Samuel Beckett), 파솔리니(Pier Paolo Pasolini), 말라르메(Stéphane Mallarmé) 등 문학계의 거목들을 경유하며, 프로이트 텍스트와 비교하거나 관통하는 분석을 수행한다. 그는 우리에게 익숙한 ‘정신분석 비평’이 텍스트 이면에 숨은 불안과 같은 심리적 기제를 밝혀내는 것을 넘어, “텍스트를 가장 단호하게” 또 “피상적으로 읽는 일”임을 주장한다. 

가장 단호하고도 피상적으로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는 작품의 이면에 담긴 욕망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계속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관계들과 형식들을 따라가는 것”이다. 

 

비평은 ‘형식의 소거’를 찾아내야

정신분석 비평은 통상적으로 작품 이면에 감춰져 있다고 여겨진, 그 욕망의 기제를 밝히는 것으로 간주돼 왔다. 하지만 버사니는 이와 같은 통념을 뒤엎는다. 버사니는 프로이트의 텍스트 자체에 매몰돼 욕망의 정체를 밝히는 데 일조하지 않는다. 그는 프로이트의 텍스트를 과학적 이론서가 아닌, 특별한 미적 텍스트로 간주한다. 

또한 인간발달에서 나타나는 억압적 움직임이 프로이트의 텍스트에 이론적으로 충실하게 반영돼 있다고 본다. 이는 체계적 이론화가 불가능한 지점에서 발생하는 당혹감을 텍스트 내에 새겨져 있는 욕망의 흔적으로 보이고자 하는 시도인 것이다.

그에 따르면 예술은 대상을 지각 가능한 ‘형식’으로 반복함으로써 대상을 해석하는 것이다. 또한 예술은 욕망을 숨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 욕망을 가시화하기 위해 존재한다. 

 

동성애 퀴어이론에 기여한 리오 버사니. 사진=코넬대
동성애 퀴어이론에 기여한 리오 버사니. 사진=코넬대

따라서 비평은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버사니에 따르면 비평은 예술이 이미 보여주는 일을 밝혀내는데 그치는 것이 아닌, 정체를 밝히는 과정 속에서 욕망이 초래하는 ‘형식의 소거’를 찾아내야 한다고 본다. 즉 욕망의 정체를 밝히는 과정 속에서 욕망이 초래하는 ‘탈-형식’과 ‘탈-정리’ 효과를 밝혀내야 한다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여전히 젠더 이론의 필수적인 고전이다. 비록 그를 반대하는 경우라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무언가를 알아야 또 다른 방향성들을 모색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갈 수 있다. 

이 책은 ‘논지의 붕괴’를 ‘논지가 전개되는 한 과정’으로 봄으로써 정신분석의 정의 복원을 시도한다. 프로이트를 안다고 생각했던 독자들에게도 신선한 지적 충격을 안겨줄 것이다. 

하혜린 기자 hhr210@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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