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05:10 (금)
[대학정론] 哭, 학문후속세대
[대학정론] 哭, 학문후속세대
  • 논설위원
  • 승인 2001.04.3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1-04-30 18:15:37

해방당시 우리나라에는 3백명의 의학박사가 있었지만 순수과학 분야의 박사는 열사람도 되지 않았다. 인문·사회과학도 극소수였다. 이제 박사인구가 10만에 육박하고 있다니 참으로 놀라운 성장이다. 지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박사의 적체가 드디어 한계점에 다다른 것이다.

고급인력의 취직난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70년대 앞길이 막힌 미국의 과학박사들은 전업을 위한 재훈련을 받았고 택시운전수로 위장취업하기도 했다. 실업수당으로 연명하던 독일의 박사들은 통일이 되자 구 동독지역의 대학에 일자리를 얻었다. 영국에서는 학위를 받으면 미국에서 직장을 구하는 것이 보통이다. 일본에도 컴퓨터 교사나 청소부로 일하면서 때를 기다리는 강사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런 나라들과는 비교가 안된다. 박사의 17.2퍼센트가 고정된 직장이 없다. 공학계열 박사의 취업률은 80퍼센트인데 인문계열은 20퍼센트밖에 안된다. 서양철학의 경우, 박사실업자는 2백에 가깝다. 전임교수와 맞먹는 숫자다.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알 수 있다.

박사 적체현상은 20년 전에 비롯해 90년대 들어 급격히 악화되었다. 진작 대책을 세웠어야 했다. 과학기술부는 인력수급계획을 세운다. 물론 그것은 그대로 되는 적이 없다. 컴퓨터공학은 수요를 못따라가 외국기술자들을 데려오는가 하면 다른 공학 분야들은 사람이 남아돈다. 나라 전체로 인력수급계획을 세워 대학 정원 조정에 반영해야 한다.

사회계 박사들은 연구소가 많아 나은 편이다. 그러나 인문계 박사들이 갈 수 있는 곳은 극히 한정되어 있다. 그들의 절대다수가 대학을 희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대학은 그들을 받아들일 태세가 아니다. 인문계교수 자리는 늘기는커녕 오히려 줄어드는 추세다. 대학은 교수정원을 채우라는 압력을 받고 있지만 그것이 실현되기에는 상단한 시간이 걸릴듯하다.

한국의 대학들이 강의의 거의 반을 강사들에게 의존하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강사는 대학에서 없어서는 안될 고마운 존재이다. 그런데도 그들이 받는 강사료는 전임교수의 4분의 1밖에 안되는 백만원 이하다. 그들은 비정규직으로서 긴 방학중에는 무노동 무임금이다. 강사들의 신분은 조교보다 낮아 연금, 보험이 없을 뿐 아니라 대학 도서관에서 책도 빌릴 수 없다. 강사 대우를 학기단위 정액제로 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으나 귀기울이는 대학은 아무데도 없다.

이런 최악의 조건에서 아까운 인재들이 폐인이 되고 있다. 이 막대한 손실을 어쩔 것인가. 최근 개선의 조짐은 있다. 박사후연구원 제도, 학진을 비롯한 재단들이 비전임에게도 연구비 신청을 허용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일부 대학에서 대우교수, 강의전담교수 같은 이름을 붙여 대접을 하는 것이 보인다. 그러나 이런 미온책을 가지고는 안된다.

이번에 나온 정부의 대책은 만시지탄이 있으나마 획기적이다. 그런 방향으로 지속적인 정책을 밀고 나가기 바란다. 이런 어려운 문제는 다각적, 종합적으로 추진하지 않으면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대학은 이 기회에 지난날의 고급인력 착취를 반성하고 정부보다 한 걸음 나아간 개선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