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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그 정다운 이름과 추억을 논하다
라면, 그 정다운 이름과 추억을 논하다
  • 방성용
  • 승인 2021.03.12 16: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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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성용의 읽고 느끼고 그리고 쓰다_『라면의 재발견』김정현, 한종수 지음 | 따비 | 244쪽
방성용 북칼럼니스트

라면에 대한 당신만의 추억이 있다. 또 좋아하는 라면도 있을 것이고 자신만의 레시피도 분명 하나 갖고 있을 것이다. 모두가 좋아하고 추억이 있고 항상 먹고 싶은 음식, 우리는 그것을 ‘라면’이라 부른다. 이번 책의 제목은 “라면의 재발견”이고 이 책은 후루룩 맛봤던 추억의 연대기가 적혀 있다. 

이 서적은 라면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하는 책은 당연히 아니다. 라면의 기원에서부터 한국인의 생활‧문화에 끼친 영향까지, 라면의 역할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이라 할 수 있다. 현실은 이렇다. 현재 한국의 1인당 라면 소비량은 몇 년 동안 독보적 세계 1위이다. 라면이 가난한 개발도상국의 대체 식량에 머물렀다면 OECD에 가입한 지 20여 년이 지나고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된 한국인의 라면 사랑이 이어질 리 없다. 그렇다고 라면이 사치스런 음식으로 거듭난 것도 아니다. 이런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라면은 시대에 따라 늘 변신해 왔다. 

라면 제조회사가 새로운 컨셉의 제품을 제안하기도 했고 소비자들이 능동적으로 라면을 활용하기도 했다. 또 요즘은 소비자들이 자기만의 레시피를 만들거나 여러 제조사의 라면을 비교, 평가하는 취미 활동도 SNS 상에서 이뤄지기도 한다. 그 모든 변신에는 분명 사회의 변화가 전제됐고 우리가 먹는 라면 속에는 한국 사회의 이야기들이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이런 한국 사회의 변화 속에 라면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했다.

 

사회의 변화와 라면의 변신

이 책은 크게 첫 번째 ‘라면의 탄생’, 두 번째 ‘대한민국 라면의 시작’, 세 번째는 ‘라면의 새로운 시대’로 구성되어 있다. 자 그럼 우리가 사랑하는 라면의 스토리를 한번 적어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 ‘라면의 탄생’이다. 알고보면 라면의 시작은 국수이고 라면도 국수의 종류이다. 국수를 세계로 전파한 곳은 중국이고 국수의 재료인 밀 재배가 적합지 않은 동남아에선 쌀국수가 탄생했고 일본에서는 메밀국수가 자리잡고 한국에서는 냉면과 막국수가 대표적인 면 요리로 생겨나게 됐다. 

무엇보다 국수의 매력은 다양성인데 면을 삶는다는 전제로 한다면 어떤 국물에도 말아낼 수 있고 다양한 소스에 비벼낼 수도 있으며 채소와 고기와 함께 볶아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면 요리 중 우리가 좋아하는 라면은 1958년 일본에서 ‘치킨라면’이란 제품으로 대중들에게 선보여지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일본에서 발명된 인스턴트 라면은 미국에서 대량 생산된 밀가루에 당시의 많은 아이디어가 결합되어 나온 제품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처음 시판된 라면에는 스프가 들어있지 않았다. 당시 라면은 면을 반죽할 때 이미 간을 해서 별도의 양념 스프 없이 물만 부으면 되는 것이었다. 이후 일본에서 탄생한 라면은 곧 바다를 건너 한국에 진출하고 다양한 진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제 대한민국의 라면 역사 속을 들여다보기로 하자. 두 번째 ‘대한민국 라면의 시작’이다. 1945년 일제의 패망으로 한국은 해방을 맞이하지만 한국전쟁 여파로 우리의 식량 상황은 여전히 힘든 시대이었다. 꿀꿀이죽을 먹으며 모두가 힘들었던 시절, 한 보험회사 사장은 일본에서 먹었던 인스턴트 라면을 떠올리며 한국에서도 라면 제작을 준비하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1963년 9월 15일 한국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인 ‘삼양라면’이 세상에 나오게 된다. 일본에서 라면이 개발되어 나온 지 5년 만이고 스프 별첨 라면이 등장한 지는 1년 만에 일어난 일이다. 

처음에는 라면은 꼬불고불한 면발 때문에 한국인들에겐 실을 연상하게 하고 주식이 밥이다 보니 팔리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당시로선 낯설던 공원과 서울역 앞, 시장, 극장 앞에서 솥을 걸고 라면을 끓여 무료로 나눠주는 ‘무료시식’을 실시했다. 여기에 정부는 만성적인 식량 부족과 모자라는 쌀 소비를 줄이기 위해 라면 판매를 촉진하기 위한 수단으로 군부대에 사병 급식으로 내놓기도 했다. 

그 후 도시화와 산업화로 인해 간편한 식사를 찾는 사회적 분위기도 라면 소비를 급증시켜 이제는 생필품, 더 나아가 생활문화의 상징으로 떠오르게 됐다. 그러면 어떻게 라면은 한국인의 소울 푸드가 되었는지 궁금해질 수 있다. 그저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 특징만으로는 한국인의 식생활에서 이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기는 힘들 것이다. 라면은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면발과 국물, 밥을 말아먹어야 하는 한국인의 특징을 위해 변신해 왔다. 집 밖에서 식사를 하는 사람이 많아지자 용기면이 나왔고 짜장면, 우동, 비빔국수 등 한국인이 먹고 싶어하는 모든 면이 라면으로 재탄생했다. 

모든 면이 라면으로 재탄생

마지막으로 ‘라면의 새로운 시대’에 대해 알아보자. 대한민국에서 현재 맛의 비교 평가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놀이는 레시피 개발이다. 특히 현재 라면에 있어서는 한 가지 라면을 응용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서로 다른 종류의 라면들을 조합해 새로운 라면을 창조하는 경지가 됐다. ‘짜빠구리’, ‘불공춘’, ‘불짜로니’ 등이 대표적이다. 또 세계인과 즐기고 함께 문화를 맛보는 콘텐츠로 한국의 라면이 성장하고 있는 것도 눈 여겨 볼만하다. 2020년 6월 기준으로 ‘Fire Noodle’로 유튜브를 검색하면 천만 뷰 이상의 조회를 기록하며 그중 한국산 맵닭볶음면을 먹는 도전은 하나의 세계적 문화현상으로 되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한때 가난을 상징하던 라면은 어느새 취향의 상징이 됐고 사회 현상의 기호가 됐으며 나만의 소중한 추억의 한 부분이 됐다. 

이 책은 우리가 양은냄비에 언제든 편하게 먹었던 라면에 대한 탄생 스토리와 그 속의 사회 현상, 더 나아가 다양한 라면 레시피 등도 담겨있다. 여전히 봄은 왔지만 외식도 힘들고 친구와의 만남도 쉽지 않은 코로나블루 시절이다. 이 책은 당신의 라면에 대한 추억을 되살리고 또 이 책을 읽던 중 바로 라면을 끓이려고 부엌에 갈 수 있게 할 수 있는 식욕증진 서적이다. 친구와 연인과 또 가족과의 라면에 대한 추억이 있고 라면 먹방을 즐기고 다양한 라면을 두루 먹는 독자라면 당신의 명랑 즐독,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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