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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 신화가 세상에 끼친 해악
능력주의 신화가 세상에 끼친 해악
  • 김선진
  • 승인 2021.03.25 08: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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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의 재미 _『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지음 | 함규진 옮김 | 와이즈베리 | 420쪽

출신〮운에 따라 달라지는 출발선
빈자와 부자의 생명 가치는 다른 것인가

마이클 샌델이 돌아왔다. 『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그가 10여년만에 ‘공정’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제목만 보면 세상은 공정하지 않다는 뻔한 얘기를 할 거라 오해하기 쉽다. 반대로 그는 ‘노력한 만큼 거두게 하는 게 공정하다’는 우리의 ‘뻔한’ 믿음이 착각이었다고 도발하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능력주의라는 신념이 오히려 세상을 얼마나 불공평하게 하고 우리 생태계를 얼마나 척박하게 만들었는지 고발하고 있다.

그의 고발이 있기 전부터 우리 사회 역시 그의 표현대로 ‘능력주의의 폭정(The Tyranny of Merit)’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인국공(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 전환’ 이슈였다. 대표적 불공정으로 인식돼왔던 비정규직 차별을 해결하기 위해 그들을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준 선한 정책이 정작 정규직, 대졸신입 사원들은 매우 불공정하다고 느꼈던 것이다. 자신들은 어려운 경쟁을 뚫고 정규직이 됐는데 사회적 약자라는 이유로 쉽게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에 분노한 것이다.

사회는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

그는 이 지점에서 묻고 있다. 과연 능력주의는 공정한 것인가 라고.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믿고 개인의 능력을 우선시하고 보상해주는 능력주의는 얼핏 보면 제한된 자원을 분배하는 가장 공정한 룰처럼 보인다. 문제는 개인들에게 주어지는 기회가 동등하지 않고 사회는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사실이다. 개인의 노력과 상관없이 개인들은 철저히 운에 따라 출발선이 달라진다는 얘기다. 그 결과 기득권 세습이 기정사실화되고 계층 이동은 사실상 불가능한 암울한 사회로 전락하게 된다.

미국의 사례이긴 하지만 실제로 대학 입시에서 활용되는 SAT 시험 성적의 사회경제적 배경과의 상관성을 분석해보면 SAT 점수는 응시자 가정의 부와 매우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고 있다. 부잣집(연소득 20만 달러 이상) 출신으로 1,600점 만점에 1,400점 이상 기록할 가능성이 20%인 데 반해 가난한 집(연소득 2만 달러 이하) 출신의 경우 그 가능성은 2%로 떨어진다. 고득점자들은 또한 압도적으로 높은 확률로 그 부모가 대학 학위 소지자라고 한다.

인간성 손상시키는 능력주의

무엇보다 능력주의가 끼친 해악은 인국공 사태에서 드러났듯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모두를 패자로 만든다는 사실에 있다. 능력주의 경쟁의 승자는 자신의 성공을 자신의 노력과 능력에 따른 것이라 자만하고 자신보다 덜 성공적인 사람들을 업신여기게 된다. 그리고 패자는 모든 게 자신의 노력과 능력 부족 탓이라 체념하게 만든다. 누구에게든 능력주의는 결과적으로 사회를 황폐화시킨다.

심지어 능력주의는 인간성을 손상시킨다. 저자가 경험한 실제 사례에 따르면 ‘아이폰을 사려고 자기 신장을 판 중국 10대 학생’ 뉴스에 대해 많은 대학생들은 신장 이식으로 생명을 연장하는 혜택을 입을 부자는 자신의 능력을 입증한 것이므로 전혀 문제가 없다고 인식했다는 것이다. 빈자와 부자의 생명의 가치를 다르다고 인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다.

이 책의 미덕은 우리 눈에 가린 공정이라는 비늘을 벗겨줌으로써 다시금 사회적 약자들이 처한 불공정한 현실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데 있다. 특히 자신이 기득권자임에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 경쟁의 승자들 - 명문대 대학생, 의사, 법률가, 교수, 정치인들 - 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라 믿는다. 매끄럽지 못한 번역체 문장은 옥에 티다. 

 

 

김선진
경성대 교수·디지털미디어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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