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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의 씨네로그] 중국계 미국인의 뿌리 내리기
[정재형의 씨네로그] 중국계 미국인의 뿌리 내리기
  • 정재형
  • 승인 2021.03.22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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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계 미국감독 룰루 왕의 「페어웰 The Farewell」(2019)은 미국에서 태어나 본인의 뿌리가 미국이라고 알고 있는 이민 2세대의 문제를 중심에 둔다. 여주인공 빌리가 당사자다. <페어웰>은 정확히 말하면 아주 어려서 미국에 건너간 이민 1.5세대인 빌리를 주인공으로 하였다. 하지만 그녀의 의식은 미국에서 태어난 2세대와 거의 같다고 봐야 한다. 영어보다도 부모세대의 언어인 중국어를 더 불편해하고 중국에 대한 추억이 아주 어렸을 때 일부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중국을 모국으로 느끼기엔 근거가 없다.

이민 1세대는 정체성의 갈등을 겪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인종차별의 고통을 겪었다. 이민 2세대는 더 이상 자신을 이주민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에겐 정체성의 혼돈이 있다. 1세대 부모들이 여전히 미국에 동화되지 못하고 그들의 뿌리가 미국 밖에 있다는 것에서 2세대의 혼란은 가중된다. 「페어웰」은 다민족성, 다문화성과 함께 뿌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미국이라는 나라를 백인만의 국가가 아니라고 판단하는 인식이 깔려 있다. 원주민 인디언을 몰아내고 영국이주민에 의해 형성된 나라가 미국이지만 그 정체성 안에 영국인이 주인이라는 생각은 없다. 미국은 영국인이 인디언 원주민을 몰아내고 건국했듯이 누구나 와서 깃발 꽂고 지내면 되는 나라인 것이다. 그런 평등정신이 미국의 헌법적 가치에도 있다. 마찬가지로 다른 국가 이주민들에게도 동등한 권리를 줘야 한다는 취지이다. 

영화는 다문화성과 디아스포라에 대한 질문을 한다. 과거 민족국가 개념이 허물어지는 계기는 이산에 따른 이주민들의 두 개의 정체성 혼돈에서 온다. 자국내에서 이주민들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다문화성은 국가의 개념을 재규정한다. 온전한 다문화국가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기에는 그 과정과 주체의 타자에 대한 억압이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영화는 그러한 문제를 배경으로 하면서 이주민 정체성의 혼돈을 그린다. 

「페어웰」은 이민 2세대, 즉 미국인이 느끼는 자신의 뿌리에 대한 정체성 혼란 이야기이다. 몸은 미국인인데 정신은 중국인이어야 한다는 강압적 사고가 빌리를 괴롭힌다. 영화는 그녀가 할머니의 영향으로 중국인의 뿌리를 찿는 모습을 그린다. 하지만 현실이 영화처럼 그렇게 순순히 풀리는 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영화는 항상 계몽적이고 감독의 일방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측면에서 사실적이지 않다. 

「페어웰」은 영화 서사의 방향을 음악을 통해 확고한 생각으로 고착시키는 데 빼어난 기교를 보이는 영화다. 음악은 관객의 감정을 확고하게 만든다. 과도한 음악사용은 룰루 왕이 관객을 어떻게 동화시켜야 할지 미리 알고 능수능란하게 구사한 미적 장치의 연출기법인 것이다. 마지막에 빌리는 할머니 특유의 ‘호’ 소리를 내며 자신의 뿌리가 중국인이어야 한다는 확신을 하기에 이른다. 이 모든 동화과정에 관객은 자기도 모르게 동일시된다. 결론이 아무리 좋은 메시지라 할지라도 이런 식의 미적 장치에는 관객을 수동화시킨다는 단점이 있다. 또 빌리는 별난 중국인을 구경거리로서 바라보는 서구인의 시선으로 시종일관 중국인 풍경을 그린다.

물론 감독의 자전적 경험은 소중하다. 영화가 삶과 유리되지 않는다는 관점이다. 더 나아가 예술과 삶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진지한 의식이다. 영화를 단지 오락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삶의 진실을 자유롭게 사유하는 매체로 규정한다는 것이다. 자서전적 영화는 할리우드 대중영화의 판에 박힌 장르관습에서 벗어나 신선한 재미를 준다. 

정재형(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이번 호로 ‘정재형의 씨네로그’ 연재를 마칩니다. 필자와 애독해주신 독자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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