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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착 버리고 끊임없이 의심하라
애착 버리고 끊임없이 의심하라
  • 김정규
  • 승인 2021.04.16 05: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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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 어게인』 애덤 그랜트 지음 | 이경식 옮김 | 한국경제신문 | 480쪽
정신적 구두쇠, 확신에서 편안함 느껴

지금 막 객관식 시험을 치렀다. 그런데 한 문제가 미심쩍다. 시간은 조금 남아 있다. 최초의 직감을 믿고 답을 그냥 둘까, 아니면 다시 검토하고 답을 바꿀까? 한 연구에 의하면 답을 바꾼 경우 4분의 1 정도만 오답으로 바뀌었고, 절반 가량이 오답에서 정답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고치면 틀린다는 속설은 이렇게 현실에서는 들어맞지 않지만, 여전히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다. 우리는 한번 결정한 답을 쉽게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정신적인 구두쇠(mental miser)이기 때문이다. 동일한 사안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행위를 망설인다. 의심할 때의 불편함보다는 확신할 때의 편안함을 더 좋아한다. 

전문가들이 부동산 거품이 꺼질 때가 임박했다고 경고해도 계속 오를 것이라는 믿음을 바꾸지 않는다. 배우자가 정서적으로 자기와 멀어지고 있음을 뻔히 알면서도 결혼생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망한다고 해도 자기는 괜찮을 거라고 믿는다.

 

 전문지식이 많을수록 자신의 믿음과 의견을 고수하는 데에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한다. 자기 생각에 확신을 가질 때 보상을 받는 안정된 세상이라면 이런 행동은 유효하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세상이다. 개인의 정보 소비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지식의 유효 기간은 그만큼 짧아졌다. 미디어의 발달로 촉발된 필터 버블(filter bubble), 확증편향이 우리의 판단력을 악화시키고 있다.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한 격변의 시대다. 

애덤 그랜트 와튼스쿨 조직심리학 교수는, 이런 격변 의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자기가 가진 믿음, 즉 지식이나 정보에 대해 신속하고 끊임없이 의심하라고 조언한다(『싱크 어게인』, 이경식 옮김, 한국경제신문, 2021). 일관성보다는 정신적인 유연성과 기민성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윈도95’를 쓰는 사람을 보고 비웃으면서 1995년에 형성된 자신의 가치관은 여전히 붙잡아 두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을 위 해 애덤 그랜트가 제안하는 방법은, 자신이 매일 하는 일을 제대로 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는 ‘다시 생각하기(think again)’다. 의심이 가져 다주는 이득을 챙기자는 것이다. 자신을 의심하는 그때가 바로 내가 성장할 기회다. 

필터버블과 확증편향 시대 

그러나 자신을 의심하는 게 잘 되질 않는다. 다름 아닌 애착(attachment) 때문이라고 한다. 애착은 자기 의견이 핵심을 비껴갔을 때, 다시 말해 자기 판단이 틀렸을 때 이런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도록 막고, 더 나아가 그 의견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것을 못하도록 막는다고 한다. 이것을 버릴 수 있어야 자기가 틀렸을 때의 기쁨, 그러니까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하나의 목적지에 다다르는 경로는 여러 개가 있을 수 있다. 또한 출발점은 같아도 종착점은 여러 개가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특정한 경로나 특정한 목적지를 고집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성공에는 단 한 가지의 정의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에 이르는 경로 또한 한 가지만 있는 게 아니다. 

봄꽃 소식과 더불어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와 대학도 서관 처마에 새 집을 짓고 있다. 지지배배 지지지배배배 노랫소리에 설렘이 가득하다. 이 소리가 내 귀에는 공자님 말씀으로 들린다.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참으로 아는 것이다. 출근길에 나를 의심하며 ‘다시 생각하기’를 해본다. 오늘 판단을 내려야 할 일이 스무 가지는 될 거 같은데, 나는 그것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고 모르는 것은 무엇일까? 

 

 

 

김정규 
한국대학출판협회 사무국장·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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