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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체험에의 인도
니체 체험에의 인도
  • 정영도 동아대
  • 승인 2004.10.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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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강의시간

 

정영도 교수(동아대·철학과)

나는 지금 대학에서 내 인생의 마지막 강의를 진행시켜 나가고 있다. 돌이켜보면 1964년 3월에 대학 강단에 선지 4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40년 동안의 강의를 회고해 보면 한 번도 만족했던 강의를 한 적이 없다. 강의를 하고나면 항상 아쉬움을 느끼곤 한다. 이 아쉬움을 떨쳐 버리기 위해서 나는 언제나 강의 자료를 카드로 작성하곤 한다. 이 많은 강의자료 카드를 가지고 강의를 진행시켜 나간다. 강의 자료 카드 작성은 내가 전공하고 있는 칼 야스퍼스의 강의 준비에서 주로 많은 시사를 받고서 시도한 데서 비롯됐다.

한스 사너라는 야스퍼스의 비서 겸 조교가 야스퍼스의 死後에 스승을 그리면서 쓴 글에 의하면, 야스퍼스는 다음과 같은 지침에서 강의를 준비했다는 것이다.

“야스퍼스는 자기의 강의를 위해서는 대단히 많은 강의자료 카드를 작성하곤 했다. 그는 이러한 카드를 강의에서는 단지 引用의 典據로서만 이용했다. 야스퍼스는 강의 직전에 강의의 자료와 진행을 재음미하는 데 2시간 가량을 소요하곤 했다. 이러한 완벽한 준비를 배경으로 해서 야스퍼스는 자기의 강의의 성공을 행운에 맡겼다”

나는 야스퍼스의 이러한 강의 준비의 태도를 귀감으로 삼았다. 특히 야스퍼스가 평소에 지론으로 삼고 있는 강의방식상의 자유자재의 열변은 나에게는 인상적인 것으로 생각됐다. 야스퍼스는 대부분의 독일의 대학교수들이 채택하고 있는 강의 방식을 떨쳐버리고 자기가 개발한 스타일로 강의를 했다. 야스퍼스는 원고를 보면서 읽어 내려가는 것을 사상의 단순한 낭독으로서 마치 직접적인 철학적 반성에서 내려오는 것과도 같은 것으로 느꼈다.

야스퍼스의 이러한 강의 지침을 바탕으로 해 나는 주로 니체의 철학사상, 야스퍼스의 철학사상, 그리고 그리스의 Vorsokratiker인 헤라클레이토스의 철학사상을 강의해 오고 있다. 나는 이러한 철학사상을 강연하는 방식으로서가 아니라, 나 자신이 이러한 철학자들의 사유의 흐름 속으로 들어가서 학생들로 하여금 거기에 참여시키는 그런 강의 방식을 즐겨 선택해 오고 있다.

나는 니체의 철학사상을 강의할 경우에는 나 자신이 니체가 돼 니체의 고독과 고뇌로 충만한 슬픈 삶을 영혼의 흐느끼는 울음으로 토로한다. 나는 이러한 감정을 나의 영혼에 깊숙이 내장시키기 위해서 지난 30년의 대학교수 생활 가운데 10여 차례에 걸쳐서, 신선한 공기로 충만한 알프스의 은둔지를 찾아가곤 했다. 그곳은 니체의 사상 편력이 묻어 있고 또한 그가 고독 가운데서 깊은 철학 성찰을 하며 냉철한 저술활동을 진행시켜 나갔던 곳이다.

니체가 태어나서 다섯 살 때까지 살았던 자그마한 마을 뢰켄, 초등학교 시절 가족과 함께 살았던 나움부르크의 어머니의 집, 바이마르의 훔볼트街에 자리하고 있는 니체 문서보관소, 여름이면 가끔 찾아와서 한두 달 머물곤 했던 타우데브루크에 있는 니체의 가르텐하우스, 스위스의 실스마리아에 있는 니체 하우스, 실스 호수와 실바플라나 호수, 지중해 연안에 자리한 소렌트, 라팔로, 상트마르게리타, 포르토피노, 게노아, 토리노 등을 찾아서 그 곳에서 니체를 생각하면서 한두 달씩 머물며 니체의 저서를 읽거나 깊은 思念에 빠져보곤 했다. 나는 매 학기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가급적이면 니체가 머물렀던 이런 곳을 방문해 일종의 강의 준비에 몰두했다.

강의가 시작하면 나는 방학동안 체험했던 니체의 고독, 병고, 고뇌, 절규를 혼신의 힘을 바쳐 학생들에게 강의했고 또 강의하고 있다. 나는 니체를 강의하고 나면 강물에 빠진 사람처럼 땀에 흠뻑 젖는다.

니체가 생전에 살며, 고뇌하며, 사유했던 알프스 산자락에서 가졌던 나의 니체 체험에도 학생들을 인도하는 그런 강의는 언제나 정신의 환희를 가져다 주었고, 가져다 주고 있고, 그리고 계속 가져다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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