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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전체주의 직전 상태"
"일본은 전체주의 직전 상태"
  • 최철규 기자
  • 승인 2004.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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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소년의 눈물』(돌베개 刊) 펴낸 서경식 동경경제대 교수

‘나의 서양미술 순례’(창비 刊)로 국내에 잘 알려진 재일지식인 서경식 東京經濟대 교수의 에세이집 ‘소년의 눈물’이 한국어로 번역됐다. 이 책은 “일본어로 씌어진 가장 아름다운 글”에 수여되는 ‘에세이스트클럽상’을 받은 책으로 1971년 재일간첩단 사건으로 구속된 서승, 서준식 씨의 동생으로도 잘 알려진 서 교수가 성장 과정에서 읽었던 책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재일조선인으로서의 자의식이 형성되는 과정을 자기 고백의 형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두 국적사이에 끼어 있는 ‘재일조선인’은 사실상 어느 편에도 정착하지 못한 채 살아가게 된다.

처음 한국을 방문해서 자신의 姓을 ‘소’라고 발음하다가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자 조상들의 땅으로부터도 실격되는 자신을 느꼈다고 한다. “나의 언어는 폐멸돼 있었고, 나와 그들은 그렇게도 서로 멀리 떨어져 있었다”라고 당시를 회상한다(208쪽).

서 교수는 ‘일본어를 아름답게 구사했다’는 이 책의 ‘명함’이 재일조선인에 대한 일본 사회의 무관심이라며 심경을 토로한다. “위원회는 외국인이 일본말을 잘 한다는 것만 봤지, 재일조선인이 한국어를 잘 못한다는 점은 보지 못 합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분열된 정체성을 존중해주지 못하는 일본 앞에서 느낄 수밖에 없는 깊은 자의식이다.

“일본은 ‘전체주의’ 바로 직전 상태입니다. 대학생을 포함한 대다수가 자신의 가치관을 확립하지 못하고 ‘다수’라는 변명에 숨어서 몸을 사리고 있죠. 과거 일제의 만행뿐 아니라 현대 일본 사회의 무반성을 질책하는 강상중 교수 같은 재일지식인들은 단순히 ‘지식인 탤런트’로 취급됩니다.”

일본인들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그들의 비판이 허용되며, 이를 통해 다수 일본인들의 죄의식을 해소하는 미디어 장치로 재일지식인들이 전락했다는 것이다. 반성 없는 정부와 무관심한 다수. 이것이 재일조선인의 불안정한 실존을 야기하며, 나아가 동아시아의 낙관적 협력관계를 저해하는 요소라고 서 교수는 지적한다.

코리안 디아스포라에 대한 한국 사회의 무관심도 그를 괴롭힌다. 한국의 대표적 지성인 교수들조차도 “하나의 민족, 언어, 문화, 역사 등을 통해 하나의 국가를 형성한다는 단일민족국가관”을 통해 재일조선인들을 바라보는데, 이는 일본 정부의 기본 원칙과 동일한 것이다.

현재 서 교수는 ‘前夜’라는 잡지의 창간을 준비하고 있다. ‘전야’는 정의와 이상에 대한 열망과 실천의 패배를 경제적 부로 합리화하는 일본의 동 세대에 대한 저항의 차원에서 기획된 것이며, 주로 문학을 중심으로 소수자의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한다.

최근 미국 이민 1백주년을 지나면서 코리안 디아스포라에 국내 학계 일각의 관심이 생겨나고 있다. 또한 소수자들에 대한 연구도 어느 정도 진척돼 그 성과물들을 내놓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생생한 경험을 토대로 한 서 교수의 지적처럼 ‘국가주의’가 존재하는 한 이런 연구들은 결코 ‘주류’가 될 수 없다. 소수자들에 대한 연구가 나름의 정치적 실천으로 외화되기 위해서는 학술적 작업 이외에 국제적인 지식인 연대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점이 인식되는 자리였다.

최철규 기자 hisfuf@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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