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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대문을 고치고 나니
[딸깍발이]대문을 고치고 나니
  • 교수신문
  • 승인 2001.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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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5-15 18:11:53
이웃의 눈치에도 불구하고 소리나는 현관문으로 버티다가, 마침내 일꾼을 불렀다. 그는 문을 몇 번 여닫더니, 사태가 파악되었는지 바깥으로 가서 제법 무거워 보이는 도구상자를 들고 되돌아왔다. 상자를 여니 온갖 잡동사니들이 쏟아질듯이 드러나면서, 화려하지는 않지만 오래되었음에 틀림없을 주인의 경력을 보여주었다. 그래도, 문을 고치는 데에 꼭 필요한 것들이 과연 들어있을까 적이 의심스러웠다.

문을 활짝 열더니, 손을 좀 빌려달라고 한다. 드릴로 문틀의 윗머리에 박힌 나사못을 하나 뽑고, 다른 하나를 뽑으려는데, 쉽지가 않다. 문만큼이나 오래되었을 나사못의 머리가 닳았나 보다. 그는 망치를 들더니, 문틀에 걸린 돌쩌귀를 세게 몇 번 쳤다. 이번에는 십자드라이버로 힘을 주어 못을 돌렸다. 다행스럽게 쇳소리와 함께 못이 돌아갔다. 문틀과 분리된 돌쩌귀가 빠지자, 문짝은 힘없이 옆으로 기대기 시작했고, 그는 나로부터 문짝을 넘겨받아 단번에 들어서 눕혔다. 문틀을 빠져 나와 편안하게 드러누운 문짝이 한없이 피로해 보이는데, 나는 돌아서서 우리를 바깥으로부터 격리시켜 주는 문이 겨우 나사못 두 개로 지탱되는 꼴이었다고 놀랐다.

문짝과 문틀의 아랫머리에 달린 돌쩌귀를 확인하더니, 누군가의 손이 거쳐갔다고 중얼거린다. 느슨해진 나사못을 죄려는데, 문짝의 홈은 이미 너무 닳아버렸다. 도구상자를 뒤져 찾은 조금 굵은 나사못을 박으려니, 돌쩌귀의 구멍에 들어가지 않는다. 일꾼은, 손을 다칠까 조마조마한 나를 무시하고, 조그만 돌쩌귀에 드릴을 수십 번 문질러 나사못의 자리를 겨우 만들었다. 그리고는, 힘들게 나사못을 죄여 문짝에 돌쩌귀를 꽉 붙인다. 이제는 문틀의 돌쩌귀에 끼워 마찰을 줄일 납작한 베어링을 하나 찾는데, 아무리 뒤져도 맞는 것이 없다. 상자를 뒤집어엎고서야, 겨우 작은 것을 세 개 찾아 펜치로 끊어 임기응변을 한다. 문짝을 일으켜 어색하게 비어있던 문틀에 얹으니 다시 문이 되었다. 나사못을 박고 문을 닫으려는데, 문틀보다 문짝이 높다. 그는 돌쩌귀를 사정없이 두드려, 다시 문짝을 내려 앉혔다.

마무리되었나 싶었는데, 문을 닫고 집안에서 자물쇠와 안전고리를 살핀다. 세 개나 되는 것들 중 두 개가 안 맞다. 하나는 문짝의 자물통을 때려서 낮추고, 하나는 문틀의 고리를 높여 달았다. 일이 끝나고, 나는 그의 일솜씨를 치하했다. 좀 가벼워진 도구상자를 들고 나가는 뒷모습이 자신감에 차 보인다.

저녁 무렵에 집에 돌아온 딸애가 하는 말, 문이 닫힐 때 소리가 안 나니 집에 들어온 것 같지 않네. 정말? 때늦은 개혁공방이 터무니없는 요즈음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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