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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의 문화 등반⑫] 선진국 콤플렉스(complex)
[한민의 문화 등반⑫] 선진국 콤플렉스(complex)
  • 한민
  • 승인 2021.05.11 0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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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콤플렉스란 정신역동이론의 용어로서, 어떤 대상에 대한 여러 감정과 동기가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힘을 말한다. 콤플렉스의 원인은 욕망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는 어머니를 사랑하고 싶다는 욕망이, 강한남자 콤플렉스에는 강한 남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착한아이 콤플렉스에는 착한 아이이고 싶다는 욕망이 자리한다. 욕망이 여러 가지 이유로 이루어질 수 없거나 이루어지기 어려울 때 일어나는 마음 속의 다양한 변화들이 콤플렉스인 것이다.

무의식에는 개인의 무의식이 있고 집단의 무의식이 있듯이 콤플렉스에도 집단적 수준의 콤플렉스가 있다. 필자가 생각하는, 현대 한국인들의 정신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집단적 콤플렉스 두 가지는 레드 콤플렉스(Red complex)와 선진국 콤플렉스다.

먼저 레드 콤플렉스란 한국전쟁과 냉전, 군사독재와 민주화 운동을 거쳐 현재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북한과 공산주의에 대한 태도로 '빨갱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이 주제는 다음 기회에 더 자세히 말씀드리도록 하고 오늘은 선진국 콤플렉스에 집중해 보겠다.

선진국 콤플렉스는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산업화시대를 거치며 한국인들의 마음속에 새겨진 서구 열강에 대한 열등감에서 비롯된다. 근대 이후로 한국인들이 기억하는 한국은 잘 나가는 '선진국'들에 비해 초라하기만 한 슬픈 '후진국'이었다.

외국에 나갈 수 있는 이들이 거의 없었던 80년대 이전, 선진국에 다녀온 유학생과 주재원 등으로부터 듣는 화려하고 발전한 선진국의 문물은 초라한 현실을 더욱 초라하게 만들 뿐이었다. "왜 우린 저런 게 없나", "왜 우린 저런 거 못 만드나", "왜 우린 이렇게밖에 못할까" 등

한국의 현대사는 오로지 '선진국'이 되기 위한 길로 요약할 수 있다. 한국인들은 스스로를 후진국, 변방이라 규정하고 모든 부분에서 선진국이 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세계 속의 한국의 위상은 조금씩 달라져 왔지만 사람들 마음 속에서 우리가 후진국이라는 사실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한국은 1980년대 후반에 이미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지만 영화, 음악 등 문화 수준이 그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후진국이었고, 90년대 들어 한류 붐이 여기저기서 불기 시작하는 등 한국 문화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했을 때도 유럽이나 미국에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후진국이었다.

2000년대 K-pop이며 한국 영화가 유럽과 미국에서도 인기를 끌기 시작했지만 이번에는 시민의식이 선진국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후진국이라고 생각했다. 2021년 현재 한국 가수가 빌보드 1위를 찍고 한국영화가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는 시대가 열렸다. 팬데믹 한가운데서 성공적으로 코로나를 막아내며 경제성장률을 방어하고 있지만 한국인들의 눈에 한국은 아직도 부족하기만 한 나라인 것 같다.

세계 최장 수준의 노동시간, 세계 최저의 출산율과 세계에서 가장 빠른 추세의 고령화 속도, 초등학교 아니 유치원부터 내몰리는 무한 경쟁, 분단의 역사, 미흡한 제도, 갈등의 문화.. 우리를 힘들게 하는 현실은 분명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는 끊임없이 달라지려 했고 또 나아져 왔다는 사실이 아닐까. 우리가 완벽하지 않다고 해서 그간의 역사와 현실까지 부정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정치, 경제, 군사, 사법, 복지, 문화, 스포츠 모든 면에서 우수하고, 죄 지은 자는 반드시 벌을 받고 착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좋은 일이 돌아가는 나라, 국민 모두가 원하는 동네에 집을 가질 수 있고 돈은 많이 벌고 세금은 조금 내는 나라, 심지어 땅도 넓고 지하자원도 풍부하며 기후도 적당한 데다가 국민 통합도 잘 되는 나라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인들에게 선진국이란 마음속의 이상,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말 그대로 유토피아를 뜻한다. 유토피아가 기준이라면 세상 어디든 초라한 후진국일 것이다. 이것이 선진국 콤플렉스의 실체다. 누리고 있는 것은 당연시하고 이미 이뤄낸 것들은 무시한 채 ‘존재하지 않는' 목표를 좇으며 현실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것이 바로 콤플렉스다. 구한말 이래로 100년이 넘게 지속되어 온 선진국 콤플렉스, 이제는 벗어날 때가 아닐까. 

한민 문화심리학자
한민 문화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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