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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과 화학공학
화학과 화학공학
  • 나병기 충북대
  • 승인 2004.11.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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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강의시간

▲나병기 교수 ©

나병기 교수(충북대·화학공학부)

“학생이 화학공학과를 선택한 이유를 간단히 설명하세요.”

“저는 고등학교에서 화학을 매우 좋아해서 화학공학과를 선택했습니다.”

수험생 면접에서 학생들에게 내가 던지는 질문과 학생들의 대답이다. 27년 전 내가 화학공학과를 선택한 이유와 똑같은 답변을 나는 아직도 듣고 있다. 이것을 비판적인 시각에서 보면 지금의 고등학교 교육이 30년 전과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시사할 수도 있다. 아직도 고등학생들이 사이언스(science)와 엔지니어링(engineering)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생각된다. 마치 내가 어려서 노벨상을 꿈꾸면서 공과대학을 지원했던 것처럼.

연구소에서 10년간 연구만 하다가 작년에 학교로 부임한 후에 처음 맡은 과목이 ‘공학수학’이었다. 화학을 좋아하는 많은 학생들은 수학을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이것은 내가 수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갖는 나만의 편견일 수도 있다.

학생들에게 수학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 ‘학문의 즐거움’을 읽고 독후감을 제출하는 것을 숙제로 냈다. 대학 3학년이 돼서야 수학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 시작한 평범한 두뇌의 소유자인 히로나카 헤이스케가 수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드상’을 수상하기까지의 과정은 학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던 것 같다. 화학공학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수학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므로 학생들에게 수학에 대한 흥미를 유발시키고자 많은 노력을 했다.

또, 화학을 좋아해서 화학공학과를 선택한 학생들에게 사이언스와 엔지니어링의 차이를 이해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내가 대학 강의시간에 은사님께 배운 것을 학생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엔지니어로서 갖춰야 할 세 가지를 중요한 순서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human relationship’이다. 과학자는 혼자서도 실험을 수행할 수 있지만, 엔지니어의 첫 번째 목표는 공장을 건설하는 것이기 때문에 혼자서는 일을 할 수 없다. 이를 위해서 학교생활에서 동아리 활동 등을 하면서 대인관계의 폭을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로, ‘economic sense’이다. 사이언스는 새로운 현상의 발견이 중요하므로 발견의 결과가 부를 창출하는가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다. 하지만 엔지니어링은 아무리 좋은 발명품도 제품화돼 이윤을 남기지 못하면 실패한 발명이 되는 것이다.

셋째로, ‘engineering sense’이다. 대학 졸업 후 취직해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해결하고 새로운 공정들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열심히 공부해 엔지니어로서의 실력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부가 세 번째 위치에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은 사이언스에도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부분이다. 아마도 사이언스에서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첫 번째로 중요한 사항일 것이다. 당시에 은사님의 이 설명이 나에게 엔지니어링에 대한 이해를 명확히 해줬다.

화학을 좋아하면서 공부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 화학공학과 학생들에게는 대학원에 진학할 것을 권하고 있다. 실제로 많은 화학공학과 교수님들의 전공분야는 화학에 대한 이해가 많이 필요하다. 이것은 이공계의 근원이 물리와 화학에 있기 때문이다. 공학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이론적으로 해석을 하다보면 물리와 화학을 공부해야만 한다.

최근에는 학문들 간에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여러 분야의 학문을 알아야만 새로운 것을 개발해낼 수 있다. 나의 박사학위 논문 제목이 ‘Measurement of Electrical Properties of Small Particles using a Microwave Hall Effect Technique’이다. 화학공학과에서 논문을 쓰기 위해 물리과, 화학과, 전자과, 재료과 과목을 청강해야만 했다.

화학을 좋아해서 화학공학을 선택한 학생들이 공부에 흥미를 잃지 않게 하기 위해서 어떻게 강의할 것인가는 앞으로 나의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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