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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의 시간
학자의 시간
  • 김정규
  • 승인 2021.05.27 0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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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규의 책으로 보는 세상_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다닐 알렉산드로비치 그라닌 지음 | 황소자리 | 248쪽

시간을 기록하고 효율적이었는지 반성
만인 앞에 평등한 건 주어진 시간뿐

알렉산드르 류비셰프는 1890년에 태어나 82년을 치열하게 살다간 소련의 과학자다. 그는 70여 권의 학술서적과 1만 2,500여 장에 달하는 방대한 논문과 연구자료를 남겼다. 곤충분류학, 과학사, 농학, 유전학, 식물학, 철학, 곤충학, 동물학, 진화론, 무신론 등 다양한 분야에 관한 것들이다. 

그가 이런 엄청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시간통계’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한다(『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다닐 그라닌 지음, 이상원 외 옮김, 황소자리, 개정판 2020). 그가 개발해서 사용했다는 시간통계 방법은 어떤 것일까?

일단 일상적인 일들을 난이도에 따라 몇 가지 부류로 나눴다. 제1부류에는 기본적이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집필이나 연구 등 학문 관련의 것으로 한정했다. 그리고 매일 자신이 한 일과 그에 소요된 시간을 기록했다. 

‘기본과학 연구: 도서 색인-15분, 도브잔스키 저서 읽기-1시간 15분/ 곤충분류학: 견학-2시간 30분, 두 개의 그물 설치-20분, 곤충 분석-1시간 55분/ 의학신문-15분/ 호프만의 소설 『황금단지』-1시간/ 안드론에게 편지-15분/ 총계 6시간 15분.’ 

이런 식으로 하루의 시간을 기록하고 월간, 연간 단위로 결산을 했다. 17~20시간이나 걸리는 연간 결산에서는 시간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했는지, 계획했으나 실행하지 못한 것은 무엇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지 등 ‘자신에 대한 연구와 분석’이 이루어졌다. 남들의 칭찬을 바라지 않고 스스로를 평가하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그는 외부 상황이 어지러워도 학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평온한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그 달성 여부를 체크하는 시간통계 방법은 그를 아주 바쁘게 만들어서 일상적인 일들, 심지어 생활의 불편함에 대해서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엉뚱한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도 쉽게 용서하고, 연구소의 규칙이나 무질서에 대해서 따지지 않았다. 그는 최소한의 것만을 필요로 했다. 책을 놓고 앉아 연구할 수 있는 자그마한 공간과 평온함이면 충분했다. 

류수노 방송대 총장은 박근혜 정부 시절 1순위 총장후보에 당선되고도 총장 임용을 받지 못하고 4년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는 최근 펴낸 에세이집에서 그 기간을 ‘폐목강심의 시간’이라고 표현했다(『넘어져도 괜찮아』, 책속에 지혜, 2021). 

 

이 기간 동안 자연과학자인 그가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주전공인 쌀 연구에 집중해서 신품종을 개발하고, 류성룡 정약용 같은 선현들과 인문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류성룡은 파직당하고 『징비록』을 썼고, 정약용은 귀양살이하면서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류 총장 또한 좌절의 시간을 축적의 시간으로 사용한 덕에 안목이 넓어졌고 총장에 임용되고 나서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루 24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그러나 그 사용 결과는 공평하지 않다. 자투리 명성이나 권력에 좌고우면하지 않고 류비셰프가 ‘제1부류’라고 말한 ‘본업’을 묵묵히 충실하게 수행하는 학자, 이런 연구자들이 많아질수록 학문은 발전할 것이라 믿는다. “오, 루칠리아!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오로지 시간뿐. 그 외는 모두 타인의 것이라오.” 로마 철학자 세네카의 말이다.

 

 

 

김정규 
한국대학출판협회 사무국장·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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