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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없는 교수 퇴출” 파문
“실력없는 교수 퇴출” 파문
  • 안길찬 기자
  • 승인 2001.05.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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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5-16 08:58:19
“‘실력없는’ 교수를 퇴출시키기 전에, ‘실력있는’ 교수가 대접을 받고, 부당한 이유로 대학에서 쫓겨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를 고치고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지난 7일 김대중 대통령의 ‘실력없는 교수 퇴출’ 발언 보도를 접한 이 아무개 아주대 교수는 “시급한 것은 교수들이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40대 초반의 이 교수는 입직한지 수년만에 부교수로 정년보장을 받은 ‘실력파’지만 해를 넘겨 지속되고 있는 학내 분쟁사태로 연구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SCI에 이미 수 십 편의 연구논문이 등재돼 관련 학계로부터 촉망받고 있는 그이지만 요즈음 책을 덮어두고 대학과 법인의 불법적인 예산전용 사실을 밝혀내느라 여념이 없다.

김 대통령의 “실력없는 교수 퇴출” 발언이 교수사회에 파문을 던지고 있다. 김 대통령은 지난 7일 교육인적자원분야 장관들과의 간담회에서 “국제적으로 권위있는 잡지에 논문 한편 제대로 올리지 못하는 교수들이 10년, 20년 전 강의노트를 갖고 교육하는 일이 계속되는데 교육이 발전할 수 있겠느냐”며 대학과 교수사회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이에 대해 교수단체들은 “실력없이 제 밥그릇 지키기에 연연하는 교수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교수들이 그러한 것은 아니다”며 “어려운 환경에서도 연구에 열중하고 있는 교수들까지 싸잡아 비판하고 사기를 꺾어서는 안된다”며 일제히 우려를 나타냈다.

교수노조 준비위는 지난 10일 성명서를 내고 “비민주적 교육환경에서 고통받으면서도 나름대로 대학교육을 지키고자 노력한 교수와 대학사회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다.고홍석 국교협 회장(전북대 생물자원시스템공학부)은 “실력없는 교수들을 퇴출시키는 일은 충분한 연구·교육환경을 갖춰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진 뒤의 일”이라고 지적했다. 심익섭 사교련 회장(동국대 행정학과)도 “교수들의 억울한 재임용 탈락이 잇따르고 있는 상황에 실력 없는 교수 퇴출을 논하는 것은 본말 전도”라고 지적했다.

교수사회는 이번 발언이 왜 지금시기에 나왔는지 진위파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과거 교사개혁 발언이 교원정년단축 조치로 이어진 것처럼 이후 교수사회에 대한 일방적인 개혁조치로 압박하지 않을지 우려하고 있다. 실제 김 대통령의 발언이후 교육부는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다. 이 달 중으로 확정할 예정이었던 ‘교수 인사제도 개선 방안’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결정한 것은 그 좋은 예다. 이 안은 내년부터 도입할 교수 계약제임용과 연봉제의 구체적인 시행방안을 담고 있어 교수들의 신분과 직결되는 중대사안.

국정최고운영자인 대통령의 ‘실력 없는 교수 퇴출’ 발언이 어떤 칼날이 될 것인지는 지금으로서는 예측하기 어렵다. 가뜩이나 ‘시장경제논리’에 휘둘려 홀대받고 있는 교수들이 이 발언으로 입게 될 상처가 우려된다. 학문과 학인은 구조조정 대상이 아니라, 배려하고 권장하고 북돋아야하는 국가적 자원임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안길찬 기자 chan1218@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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