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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준 교수 "코로나 이후 진화된 학교는 시공을 초월한다"
유현준 교수 "코로나 이후 진화된 학교는 시공을 초월한다"
  • 정민기
  • 승인 2021.06.02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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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미래 |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364쪽

“공간 구조가 바뀌면 권력의 구조가 바뀐다. 우리는 향후 몇 년간 급속도로 바뀌는 권력 구조의 재편을 보게 될 것이다.”

코로나19로 우리 사회는 전례 없이 큰 변화를 겪고 있다. 밤 10시 이후에는 식당 문을 닫아야 하고 5인 이상 모일 수도 없다. 대규모 집회나 행사는 취소되고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과태료를 물었다. 제약은 사람들의 활동 시간과 반경을 변화시킨다. 즉, 시공간적 제약이 생기는 것이다. 

시공간에 대해 가장 많은 시간을 고민하는 직업은 크게 두 가지, 바로 이론 물리학자과 건축가다. 전자는 자연을 분석하기에는 최적의 학문이나 ‘인간’이 배제되어 있다. 반면 후자는 인간을 위한 인간에 의한 학문이다. 

건축가의 시선, 시공간을 파고들다

코로나19로 우리 사회의 시공간이 비틀렸다. 이를 정확하게 진단하기 위해서는 누구의 시선과 관점이 필요할까. 그렇다. 바로 건축가다. 때마침 ‘인문 건축가’라 불리는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학부)가 신간을 내놨다. 책은 정확히 코로나로 비틀린 우리 사회의 시공간을 파고든다. 시공간과 권력의 관계를 통해 과감하게 미래를 예측한다. 

코로나가 뒤바꿔 놓은 새로운 시공간의 패러다임은 무엇인가. 책에서는 아파트부터 교회, 학교, 회사, 도시, 공원, 그린벨트, 디즈니랜드, 국토 균형 발전까지 광범위한 주제를 다룬다. 지면 관계상 모두 소개할 수 없으니 여기서는 ‘진화된 학교’를 집중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학교다. 유현준 교수는 미래의 학교를 다음과 같은 상상의 하루로 소개한다. 

“이번 주 금요일은 엄마 아빠가 온라인으로 재택근무를 해도 되는 날이다. 스마트폰앱으로 3일 동안 묵을 수 있는 집을 전라도 고창에서 찾아 예약했다. 목요일 퇴근 후 온 가족이 고창에 내려가서 잠을 잤다. 다음날인 금요일에 엄마는 숙소에서 온라인으로 회사 일을 보시고, 아이는 아빠와 함께 새로 오픈한 멋있는 고창도서관에 가서 수학, 과학, 한국사 온라인 수업을 들었다. 그날 한국사 수업은 마침 고창에서 처음 시작된 동학운동에 대한 이야기였다. 토요일에 고창의 동학 유적지를 가보기로 했다. (...) 고창고등학교 학생들과 축구를 하고 체육 수업 확인증을 받았다. 수업을 마치고 그곳 아이들과 휴대폰 연락처를 교환했다. 그중 몇 명은 다음 달에 서울에 올라와서 같이 수업을 듣기로 했다. (...) 같은 시간에 형은 혼자서 등산을 하고 동영상을 찍어서 체육 선생님에게 보내고 체육 수업을 한 것으로 인정받았다.”

코로나는 ‘위기’가 아니라 ‘진화의 촉진제’

코로나19로 인해 교육 시스템은 큰 변화를 겪었다. 모든 수업이 온라인으로 진행됐고 많은 학생이 한 장소에 모이는 행사가 취소됐다. 유현준 교수의 통찰력은 코로나를 위기가 아니라 기회로 보는 데 있다. 학교는 더 소규모로 분할되고 온라인 수업과 오프라인 수업이 병행되면서 자유도가 높아진다. 유현준 교수의 상상 속 주인공은 인간관계가 훨씬 넓고 다채롭다. 본인이 소속되어 있는 학교뿐만 아니라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여러 학교에서 체육 수업을 듣고 친구를 사귄다. 

진화된 학교에서 선생님의 역할은 달라진다. 유현준 교수는 사진술의 발명으로 인해 화가의 역할이 바뀌었다는 점을 예시로 든다. 이제 “선생님들은 온라인 수업 동영상 속 일타강사와 경쟁하면 안 된다. 지식 전달의 기능은 일타강사나 유튜브상의 각종 동영상 자료로 해결 가능하다. 하지만 교육은 지식 전달이 전부가 아니다. 선생님은 지식 전달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유현준 교수는 일방향 교육이 아닌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즉 ‘대화’를 강조한다. 대화를 통해 학생들의 내면의 것들을 밖으로 드러나게 하는 것이 선생님의 새로운 역할이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선생님의 권위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같은 교실에 앉아서 칠판 앞에 서 있는 선생님을 바라보며 수업을 하는 전통 방식이 아니라 소규모로 스스로 학습하는 방식이기 때무이다. 게다가 온라인 녹화 수업은 언제든지 시청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간적 제약도 적다. 유 교수에 따르면 이처럼 시공간의 제약이 적으면 권위가 떨어진다. 이때 선생님은 권위를 갖고 지식을 주입하는 역할이 아니라 학생이라는 ‘깊은 우물’ 속에 들어있는 가능성을 끌어 올려주는 ‘두레박’이 되어야 한다. 

정민기 기자 bonsens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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