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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스가 내각의 ‘디지털 개혁’과 팬데믹의 역설
[글로컬 오디세이] 스가 내각의 ‘디지털 개혁’과 팬데믹의 역설
  • 정지희  서울대 일본연구소 HK조교수
  • 승인 2021.06.03 08: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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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오디세이_서울대 일본연구소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 이 말은 세계화(Globalization)와 지방화(Localization)의 합성어다. 세계 각 지역 이슈와 동향을 우리의 시선으로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국내 유수의 해외지역학 연구소 전문가의 통찰을 매주 싣는다. 세계를 읽는 작은 균형추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지난 11일 일본 중의원 예산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스가 요시히데 총리. 사진=AFP/연합
지난 11일 일본 중의원 예산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스가 요시히데 총리. 사진=AFP/연합

 

작년 가을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갑작스런 사임으로 성립한 스가 내각. 초반의 기대에 못 미치는 스가 요시히데 총리의 존재감과 아들의 접대 비리, 그리고 무엇보다 코로나19 대응 실패로 출범 8개월 만에 내각 지지율이 반토막 났다. 출범 직후인 작년 9월의 아사히신문 여론조사에서 65%에 달했던 지지율이 올해 5월 15·16일에 실시된 동 여론조사에서는 33%로 급락한 것이다. 스가 내각 출범 이후 최저치 타이기록이다. 자민당 지지율 또한 스가 내각 출범 이후 최저치인 30%로 떨어졌다. 전월 대비 고령층의 부정적인 평가가 급증했는데, 백신 접종 지연에 대한 불만이 가장 큰 이유였다. 스가 내각이 강행하려는 도쿄 올림픽에 대해서도 팬데믹 상황에서 안전한 개최를 기대할 수 없다는 의견이 73%를 점했다.

 

‘도장 문화’로부터의 탈피 선언

 

이처럼 정부의 코로나19 대처에 대한 불신 속에, 자민당 총재 임기 만료가 돌아오는 9월 말 전에 중의원 해산·총선거 실시가 점쳐지고 있다. 이에 스가 내각은 임기 안에 내세울 만한 실적을 남기려 서두르는 모습이다. 그 대표적인 예 가운데 하나가 올해 5월 12일에 성립한 디지털개혁관련법(이하 관련법)이다. 디지털 개혁의 이념을 담은 디지털사회형성정비법, 9월로 예정된 디지털청 발족을 위한 디지털청설치법, 개인 정보 보호 관련 법률의 일원화와 도장 폐지·행정 절차의 디지털화를 위한 디지털사회형성정비법, 지원금 지급 등을 위해 한국의 주민등록번호에 해당하는 ‘마이 넘버’와 예금 계좌를 연동시키도록 한 공금수령계좌등록법과 예금계좌관리법, 지방 행정 시스템 표준화를 규정한 지자체시스템표준화법이 그것이다.

일본의 ‘도장 문화’로 상징되는 대면 위주의 아날로그적인 행정 관행과 분권화된 행정 자치 시스템이 팬데믹 상황에서 많은 약점을 드러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 전후사의 맥락을 감안하면 ‘후진적’이거나 시대착오적인 관행으로만 치부하긴 어렵다. 개인의 인권을 존중하고 국가에 의한 개인 권리 침해 가능성을 예민하게 차단해 온 전후의 시대정신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관련법안의 논의 과정에서 가장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 바로 개인 정보의 보호와 이들 정보에 대한 개인의 통제권 여부였다. 이러한 시대정신의 배경에는 패전에 이른 책임이 전시 지도자들이 ‘강요’한 전체주의 체제에 있었다는 역사 이해와 회한이 자리하고 있다. 이 특정한 전후 의식이 반드시 식민 지배와 침략 전쟁에 대한 반성과 연동되지 않는 점, 그리고 전체주의에 대한 반감이 최근에는 주로 혐중 정서로 표현되는 점 또한 기억해야 하지만 말이다.

 

팬데믹과 복지의 탈을 쓴 신자유주의?

 

코로나 19의 대유행 이전에도 ‘선진’과 ‘편이’를 이유로 전자 정부를 실현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왔지만, 이른바 ‘감시 국가’에 대한 우려로 대다수의 일본인들이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2015년부터 마이 넘버가 통지되기 시작하고, 2016년부터 사회보장·세금·재해 대책 관련 행정에 도입되었음에도 코로나19 유행이 심각해지기 전인 2020년 3월 1일 시점에서의 마이 넘버 카드 교부율은 15.5%에 머물렀다. 행정기관이 보유한 개인정보를 익명 처리하여 산업 활성화를 명목으로 민간 기업에도 제공한다는 정부의 방침 탓에 개인의 정보 주권 침해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전환하는 계기가 된 것이 코로나19 팬데믹이었다. 개인 정보의 유출이나 사찰 가능성을 제기하는 비판의 목소리는 지원금 지급과 백신 접종 절차의 편이와 가속화라는 시급한 과제를 당해낼 수 없었다. 마이 넘버 카드가 있어야 지원금을 인터넷으로 신청할 수 있게 되자 교부율은 올해 5월 초에 30%를 돌파했다. 그러나 디지털 ‘개혁’이 당장은 복지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일본 사회의 신자유주의화를 가속화할 가능성은 없을까? 디지털 ‘개혁’은 공공 부문 구조 조정과 개인의 생존을 위한 합리적 선택으로서의 ‘자발적’ 정보 제공을 촉진할 것이다. 스가 총리는 1차 아베 내각에서 우정민영화 담당 총무 대신이었고, 총리 취임 후 수신료 인하 명목으로 공영방송 NHK에 구조 조정을 압박해 왔다. 일본 사회는 지금 큰 정부를 필요로 하는 팬데믹 상황이 오히려 작은 정부와 신자유주의적인 구조 조정을 앞당길 법제의 도입을 정당화하는 역설을 마주하고 있는 게 아닐까.

 

 

정지희 
서울대 일본연구소 HK조교수

서울대 동양사학과에서 학사를,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샌디에고(UCSD)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공 분야는 일본 근현대사와 미디어 사회문화사이며, 주요 저작으로 『점령기 일본의 진상 폭로 미디어』 (2020), 『탈 전후 일본의 사상과 감성』(공저, 201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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