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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학총장 - 2 출신과 성향
한국의 대학총장 - 2 출신과 성향
  • 안길찬 기자
  • 승인 2001.05.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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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5-16 09:03:56
언제부턴가 대학은 고매한 인격을 소유한 총장보다는 당장 발벗고 나서 재원을 조금이라도 더 끌어 올 수 있는 총장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학식이나 덕망을 중요한 덕목으로 삼던 전통적 총장상은 퇴색하고, 경쟁시대를 맞아 경영가·행정가·조정자적 총장상이 부상하고 있다. 대학총장의 위상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총장의 위상 변화는 대학의 역할과 기능변화를 대변한다. 대학교육이 교양교육 중심에서 실무·기능교육 중심으로 바뀌고 있는 것도 결국 총장들의 경영마인드 변화에서 시작된 것이다.

“새로운 유형의 총장은 창의적인

‘지도자’이기보다는 ‘조정자’이며,

출중한 ‘행정가’이고 능숙한 ‘중재인’이다”

- 앨란 네비슨

중세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서양의 대학 발전사를 통해보면 총장의 위상과 역할, 유형은 일정한 궤적을 그리며 변화하고 있다. 교양교육에 초점을 두고 태동한 중세 유럽 대학의 총장은 주로 성직자로서 자리만 지킨 권위적 모습을 짙게 풍긴 반면 실무교육에 중점을 뒀던 근대 대학에선 교육과 연구에 중심을 둔 학자형으로 탈바꿈한다. 이 시기 대학은 숱한 거물총장들을 배출했다. 대학의 규모가 내·외부적으로 급격히 팽창한 근대이후의 총장의 모습은 대학운영이 중시되면서 지도자에서 행정가·관리자로 변모했다. 그리고 진리탐구란 하나의 이념이 무너진 현대의 ‘멀티버시티’에서 총장은 조정자와 중재자로 바뀌어 가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의 대학총장은 어떤 유형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한국 대학은 수 백년에 걸친 서양의 대학발전사를 단 50년만에 밟았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총장의 유형도 같은 기간 서양의 대학이 수 백년 동안 그려온 모습이 혼재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혹자는 권위주의적인 리더로, 혹자는 교육과 연구를 뒷받침하는 지원자로, 혹자는 직접 살림을 챙기는 행정가와 관리인의 모습으로 다양하게 표출된다.

전직을 기준으로 보면 한국대학의 총장은 크게 네 부류로 나눠진다. 첫째는 처음부터 대학과 인연을 맺은 학자출신이고, 두 번째는 정·관계에서 활동하고서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퇴직 공직자이다. 세 번째는 종교법인이 설립한 대학의 총장으로 성직자들이고, 마지막으로 설립자와 설립자 2세 그외 법인관계자들이 직접 대학운영에 나선 사학관계자들이다. 대체로 역사가 짧은 대학일수록 법인관계자들이 많고, 국립대일수록 학자출신 비율이 높다.

교육대를 제외한 1백83개 4년제 대학 총장들의 전직을 살펴보면 교수출신이 98명으로 가장 많다. 다음으로 성직자들이다. 근래 부쩍 늘고 있는 유형은 장·차관을 비롯한 퇴직 공직자로 20여개 대학 총장들이 고위관료 출신들이다.

사학법인 관계자들이 총장을 맡고 있는 대학도 20여 곳에 이른다. 동해대 홍희표·한서대 함기선·수원대 이종욱·세명대 권영우·대불대 이경수 총장은 설립자로서 총장을 맡고 있으며, 경원대 이길여·건양대 김희수·동서대 박동순 총장 등은 이사장으로 재직하다 총장으로 자리를 옮긴 경우다. 설립자 2세들에게 총장직이 대물림되고 있는 대학도 적지 않다. 경희대 조정원 총장을 비롯해 한양대 김종량·순천향대 서교일·관동대 유병진·계명대 신일희·경기대 손종국·강남대 윤신일·추계예대 임상혁 총장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법인의 후광을 업고 아버지에 이어 총장으로 재직중이다.

우리나라 대학총장의 성향은 출신배경에 따라 크게 구분된다. 법인이 대학운영에 깊이 관여하는 대학의 총장은 대체로 권위주의적인 모습을 띤다. 설립자나 이사장이 실질적인 대학의 소유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대학일수록 총장의 강력한 리더십이 강조되고, 경영논리가 대학을 지배한다. 하지만 이런 권위주의적인 태도는 구성원들과 합의를 위한 민주적 절차를 곧잘 무시하기 때문에 분쟁을 낳기도 한다. 수년째 분쟁에 휩싸여 있는 덕성여대와 계명대의 예는 대표적이다.

최근에 늘고 있는 관료출신 총장들의 경우 행정가적 성향을 높이 평가받고 있지만 이 또한 문제는 적지 않다. 법인이 영입한 노건일 인하대 총장과 교수들이 직선으로 선택한 박재윤 부산대 총장은 예상과 달리 대학구성원들과 잦은 마찰을 빚어, 교수협의회가 총장 중간평가에 나서기까지 했다.

대학의 성격에 맞는 총장의 유형을 만들어 가는 대학도 있다. 상지대는 그 좋은 본보기. 대학 민주화의 성과를 일궈가기 위해 상지대는 내부적인 검증작업을 통해 과거 민주화 경력이 있는 인사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하고 있다. 김찬국 총장에 이어 교육부총리로 발탁된 한완상 부총리, 강만길 전 고려대 교수를 총장으로 영입했다.

총장과 관련한 분쟁이 끊이지 않는 것 데는 그 출신배경만 보고 총장을 선택한 잘못이 크다. 그러나 영입되거나 선택된 총장들이 뒷 배경에 발목잡혀 구성원들의 의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해당 대학의 잠재력을 추동해 내지 못하는 이유도 적지않다. 출신성향에 관계없이 그 대학의 문화와 가능성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발전모형을 제시해 내는 것이 현재 우리나라 대학총장들이 고민해 봐야 문제이다.

현대 대학 총장의 리더십은 권력의 집중이 아니라 권한의 분산으로 해석된다. 혼자서 모든 책임을 떠 맡는 것이 아니라 골고루 책임을 나눠지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변화와 개혁의 시대 강조되는 총장의 리더십은 총장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민주적 절차를 통한 구성원들의 의지를 모아내는데서 시작된다. 안길찬 기자 chan1218@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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