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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경 한양대 교수 “연극은 중국인의 사고방식·정서 이해하는 지름길이죠”
오수경 한양대 교수 “연극은 중국인의 사고방식·정서 이해하는 지름길이죠”
  • 최익현
  • 승인 2021.06.02 0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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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_ 한·중연극 교류의 산파 오수경 한양대 교수(중문학)

"민간 차원의 연극 교류를 통해, 
그들 삶에서 우러난 진솔한 언어와 감성이 
무대 위에서 살아있는 에너지로 펼쳐질 때 공감도가 높아질 것이고, 
공감대가 형성되면 다음 행보가 쉬워지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오수경 교수는
중국희곡으로 국립대만대학 장징(張敬) 교수와 서울대 김학주 교수 문하에서 수학하여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하버드옌칭연구소와 중국 칭화대학에서 방문학자로 연구를 수행했다. 한국중국희곡학회, 한국중국어문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한국연극학회 회장, 한중연극교류협회 회장으로 강단과 공연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다. <오륜전비기> 등 남희 관련 학술 연구와 함께 성과 확산과 공유를 위해 희곡 번역에도 관심을 기울여서, <찻집>, <뇌우>, <버스정류장>, <피안>, <장협장원>, <생사장> 등을 출판했다. 특히 한중연극교류협회를 설립하여 중국희곡을 국내에 소개하는 한편, 좋은 작품을 ‘중국현대희곡총서’, ‘중국전통희곡총서’로 간행하는 일에도 집중하고 있다.  

지난 5월 12일부터 16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진행된 ‘제4회 중국희곡낭독공연’은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매진을 거듭하는 이례적 기록을 세웠다. 국립극단과 한중연극교류협회(이하 협회)가 함께 주최한 공연이었다. 

‘중국희곡낭독공연’이란 이름이 조금 생소한 이들도 있겠지만, 이 공연은 2018년부터 시작해 올해 4회째를 맞았다. 협회는 주로 중국의 전통희곡과 현대희곡을 발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간 27편의 중국희곡을 번역해 출판했으며, 번역된 작품을 낭독공연 페스티벌 형태로 국내 연극계에 소개해왔다. 그동안 「물고기인간」, 「낙타상자」, 「최후만찬」, 「만약 내가 진짜라면」 등의 작품들이 실제로 국내 유수 극단들에 의해 제작돼 많은 호평을 받으며 국내 연극계 레퍼토리의 다양성을 넓혀왔다. 또한 상호적으로 국내 희곡 작품을 중국에 소개함으로써 중국공연단체와의 교류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이름으로 본다면 중국의 희곡 작품을 낭독하는 공연 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데, 경극이나 사회주의계열의 선전극 중심으로 중국 희곡을 이해하던 데서 탈피해 좀 더 다양하면서도 시대의 고뇌를 껴안은 현대 중국 희곡의 역동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특히 눈길을 끈다. 이런 이해 변화에 기여한 이가 바로 한중연극교류협회장을 맡고 있는 오수경 한양대 교수(64세, 중문학·사진)다. 

한국연극학회 회장도 맡고 있는 오수경 교수는 베세토연극제를 비롯해 아시아연출가전, 가오싱젠페스티벌 등 한중 연극교류 현장에서 활동해 온 학자다. 중국과 수교를 맺기 전에도 직접 중국에 들어가 교류의 물꼬를 텄고, 가오싱젠이 노벨문학상을 받기 전에 이미 그를 주목해, 작품을 소개하기도 했다. 특히 그가 번역과 드라마투르기로 참여한 고선웅 각색, 연출의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2015년 초연 당시 동아연극상과 대한민국연극대상 연출상 등을 받으며 관객과 평단 모두를 사로잡았다. 그 후 국립극단의 고정 레퍼토리로 매년 재공연되고 있는 이 작품은 2019년 국립극단이 실시한 ‘국립극단에서 가장 보고 싶은 연극’ 설문에서도 압도적 표 차로 1위를 차지하며 2020년 ‘국립극단 70주년’ 기념 공연에 편성되기도 했다. 

2022년은 한중 수교 30주년의 해다. 한국과 중국 두 나라에서 모두 인정받고 있는 ‘발로 뛰는 학자’인 오수경 교수를 만나, 중국희곡을 국내에 소개하는 의미, 연구자로서의 삶, 한중 관계 등에 대한 솔직한 생각 등을 들어봤다. 

△전통시대부터 중국과 한국은 문화적 접점이 많은 나라였습니다. 중국희곡을 국내에 소개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더불어 중국희곡을 소개할 때, 어떤 점에 의미를 두셨는지요?

“학부 시절에 연극을 좋아해 연극반 활동을 했어요. 그게 아마도 인연이 된 거 같아요. 전공은 중국문학 가운데 ‘중국희곡’을 택했어요. 국내와 달리 중국의 희곡 전통은 매우 강력하거든요. 원·명 시대 주요 문학작품은 대부분이 희곡이었어요. 그런데 중국희곡은 사실 접근하기가 쉬워보여도 결코 녹록치 않습니다. 고전문학뿐만 아니라 음악과 무대 등 기본 지식을 많이 필요로 하는 종합 장르이기 때문인데, 국내에 중국희곡 전공자가 적은 이유이기도 하죠. 중국에서는 여전히 매우 중요한 장르로 평가되고 있어요. 송나라 이후 문학과 예술에서 희곡이 크게 발달해 원·명대에는 가장 중요한 문학 장르가 됐죠. 희곡 문학과 무대 예술이 함께 고도의 성취를 이뤘고요. 우리와 비교해서 전통극 작품의 양이 엄청나게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죠. 그런데도 국내에서는 중국희곡을 전통 공연 예술인 경극이 전부인양 이해하고 있습니다. 물론 중국도 현대극의 역사는 우리와 비슷해요. 한중 수교 전까지는 소개할 기회가 없었고, 수교 후에도 1994년에 시작된 베세토연극제를 제외하면 만날 기회가 극히 제한적이었죠.  

중국은 가깝고도 먼 나라입니다. 그러나 오랜 기간 많은 문화를 공유해 온 나라이기도 하죠. 그들이 축적해 온 문화유산도 인류 공동의 것으로 활용 가치가 충분합니다. 우리 희곡문학과 연극 무대를 풍부하게 하고, 근대화 시기 서구에 대한 동경으로 잊혔던 동아시아적 정서를 다시 공유하며 동아시아 지역의 문화적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서도 본격적인 소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어요. 또한 좋은 중국희곡 작품을 우리가 만들면 정말 더 잘 만들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2015년 고선웅 연출은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국립극단)으로 오래 숙성시켜 온 저의 이런 믿음을 실현시켜 주었어요. (정말 뛰어난 연출입니다!) 이 작품의 대성공으로 연극계에 중국희곡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그간 축적해 온 역량을 모아 한중연극교류협회를 조직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이죠.”  

한중연극교류협회의 제4회 중국희곡낭독공연에 오른 「진중자」의 중국 공연 사진. ⓒ元未

△중국하면 아무래도 사회주의체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그러다 보니 중국희곡 역시 한 축은 전통적인 경극이 차지하고, 다른 한 축은 사회주의 선전극이 강세를 띄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 있습니다. 중국희곡의 전체상을 이 자리에서 다 짚을 수는 없지만, 현대 중국희곡의 경향성이랄까, 전체적인 흐름을 독자들에게 소개해주시기 바랍니다.

“전통극도 경극만이 아니고 시간적으로 송·원대부터 시작해서 명·청까지 많은 희곡이 나왔고, 지역마다 다양한 지방희(地方戱)를 공연했어요. 상층부가 즐겼던 고도의 예술성을 지향하는 무대와 일반 민중의 삶의 일부가 된 필수불가결한 제의적 연극이 전 중국 땅에 폭넓게 향유되고 있었어요. 그래서 전통을 봉건적 잔재로 여겨 파괴하려 했던 문혁(文革)을 거치면서도 사라지지 않고 전승된 거죠. 민중의 삶에 뿌리내렸기 때문에 사회주의 중국에서도 전통극을 그들 전통문화의 가장 중요한 콘텐츠로 인식, 계승하고 있다는 건 흥미로운 대목이죠. 특히 21세기에 들어서는 곤극, 경극을 비롯한 다양한 전통 예술들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재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는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현대극은 우리와 비슷하게 20세기 초에 서구에서 유입돼 형성됐지만, 전통 시기 희곡 문학과 공연 예술의 풍부한 기초를 지녔기 때문에, 실제로 신중국 성립 이전에도 좋은 희곡이 많이 나왔어요.  신중국 이후에는 물론 사회주의 선전극인 주선율 연극이 주류를 이루지만, 그 중에도 탄탄한 극적 구조와 훌륭한 인물 성격을 구축하며 민중의 삶을 잘 담아낸 건강한 리얼리즘 작품도 있습니다. 개혁개방 이후에는 정치극이 아닌 순수 예술성이 높은 정극이나 사회 비판 경향이 강한 실험극도 나왔고, 아예 상업적 지향을 내세운 연극도 있었으나, 최근에는 다시 경직돼 좋은 작품 찾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한중연극교류협회를 중심으로 올해 4회째 중국희곡낭독공연을 마쳤는데요. 한중연극교류협회와 중국희곡낭독공연이라는 페스티벌을 간단하게 소개해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이렇게 새로운 여정을 개척하는 일이란 게 말처럼 쉽지 않아서 어려움도 많으셨을 텐데요. 어려웠던 점과 보람은 무엇인지요?

“협회를 조직하고 활동을 시작하기까지 오랜 준비 기간이 있었어요. 개인적으로 1979년 대학원 진학 이래 중국희곡 연구를 통해 중국희곡 텍스트에 대한 이해를 심화하는 학문 과정을 거쳐야 했죠. 또한 실제 중국을 무수하게 왕래하며 각지의 연극제와 민간 연희 및 축제 필드웍을 통해 중국사회에서 연극이 생산 유통 계승되는 기제를 이해하고 그 무대미학을 감각하는 훈련 과정을 거듭했는데, 이런 경험이 중국연극사 연구자로서 전문가의 식견을 갖추는 데 중요한 기초가 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의 학계·연극계의 많은 지인들과 좋은 관계를 형성하게 된 것이 지금 활동하는 데 큰 힘이 됐답니다. 

국내에서는 1994년 베세토연극제 초기부터 실무를 담당하며 연극계 원로 선생님들을 도왔고, 한창 활발한 작업을 하던 연극인들의 중국 진출, 또는 중국 작품의 국내 공연을 도우며 연극인들과도 신뢰를 구축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또한 중국희곡과 무대를 잘 이해하고 학계 또는 연극계의 각 영역에서 활동하는 인재들을 키워서, 언제든 훌륭한 번역을 제공할 수 있는 전문가 그룹을 확보하는 일도 놓치지 않았어요. 그러면서도 중국연극 전문가로서 20여년 한중 교류 현장에서 일했지만, 좀더 전공을 살려 더 적극적인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하면 어떨까 고민을 시작했죠. 그게 4년 전 막 60세가 되던 해였어요. 그래서 만든 것이 ‘중국희곡낭독공연’ 프로젝트였어요.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전통 지식인은 ‘사지어도(士志於道)’ 즉, 지식인은 도에 뜻을 둬야 한다는 것인데, 중국문학 전공자로서 이 중국희곡낭독공연을 통해 우리 사회에 기여하고자 한 셈이죠.

어떤 일이든 모두 그렇듯,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건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어요. 매년 좋은 작품을 선정하는 일도 어렵고, 해당 작품의 문학적·연극적 가치, 동시대성 등 우리 관객의 수용 문제를 고려하는 것도 지난한 일이었습니다. 작품을 발굴했다 해도 이를 또 공연하는 건 또 다른 차원의 어려운 문제입니다. 제1회 낭독공연을 할 때는 정말 어디서도 후원을 구하지 못해, 중국문화원과 공자학원의 지원을 받았는데, 낭독공연이 성황리에 끝나고 입소문이 나면서 2회부터는 국내에서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보람이라고 한다면, 중국희곡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일정한 공헌을 했다는 것(관객 개발), 중국인의 정서와 문화에 대한 공감 및 콘텐츠 수요의 가능성을 타진한 것(문화교류), 4회째 낭독공연을 통해 13편의 작품을 소개했는데, 이 가운데 4편의 작품이 정식 제작으로 무대에 올려졌고 또 작년과 올해 낭독공연으로 올라간 3~4편이 제작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레퍼토리 개발) 등을 꼽을 수 있겠네요.(웃음)” 

한중연극교류협회의 제4회 중국희곡낭독공연에 오른 「만 마디 말을 대신하는 말 한 마디」 무대 장면. 사진=한중연극교류협회

△특히 올해 제4회 중국희곡낭독공연은 코로나19 속에서도 많은 관객이 몰려 호평을 받았는데요. 회를 거듭할수록 한국 연극계와 관객들의 인식 변화도 있을 것 같다고 봅니다. 2018년과 비교한다면, 어떤 변화를 감지하셨는지 궁금합니다. 

“4년 만에 중국희곡과 우리 활동에 대한 기대가 많이 높아졌음을 느낄 수 있었어요. 역시 좋은 작품이 관건이란 걸 확인했습니다. 좋은 작품을 좋은 연출과 연결하는 매칭 시스템으로 낭독공연의 효과를 극대화한 게 주효했다고 생각해요. 우리 연극계에는 좋은 연출, 좋은 배우들이 많으나 좋은 희곡이 부족해 그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는 면도 있거든요. 좋은 작품을 발굴하는 일의 중요성을 재확인한 계기가 됐다는 데 의미를 매길 수 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이런 반응이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처음 낭독공연을 시작할 때는 몇몇 기관과 협업 가능성을 타진했지만 결국 도움을 얻지 못했어요.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첫 낭독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자 그 성과가 곧바로 나타나더군요. 제2회 때는 남산예술센터로부터의 공동주최 제안으로 이어졌고(3회까지 이어짐), 2020년 남산예술센터가 안타깝게도 문을 닫게 된 후, 제4회 때는 제1회 첫 공연을 맡아 주셨던 김광보 연출님이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국립극단과 공동으로 주최할 수 있었던 거죠. 연극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 온 기관들과의 협업은 우리 활동에 신뢰를 더해주는 중요한 기초가 됐습니다. 특히 올 공연에 참여한 소리꾼 이자람 씨의 판소리 낭독극을 비롯해 세 작품 모두 기대가 매우 높아서, 첫 티켓 오픈시 관객 예약이 폭주해 시스템 에러가 날 정도였어요. 다만, 실제 토, 일 낮공연에는 노쇼도 적지 않아 안타까웠죠. 

창립 4년 만에 이와 같은 안정적인 기반을 확보할 수 있었던 데는 좋은 작품, 인적 네트워크, 협회의 전문가 협업 시스템(중국 전문가, 연출가, 평론가, 기획자), 전문 기획사의 참여가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평가합니다. 특히 내부 인적 역량 부분을 무엇보다 강조하고 싶은데요. 중국희곡 전공자 가운데 연극에 관심 있는 이들, 훌륭한 번역 역량을 지닌 분들을 축적한 게 주요합니다. 김우석, 홍영림, 장희재, 임미주, 함영은, 김순희, 장은경 선생님들입니다. 국내 연극계의 관심과 협회 참여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원로 연극인인 구자흥, 손진책 고문, 연출가들인 김광보, 고선웅, 박정석, 김재엽 선생님 등, 연극평론가 허순자, 김성희, 김미도, 이경미, 김옥란, 김소연 선생님, 그리고 이희진, 이정은 PD님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중국문화원의 사서림, 장중화, 왕언군, 이소붕 선생님 등과 한양대 공자학원의 이해와 후원, 그리고 중국연극계의 원로에서부터 1990년대 이후 출생한 연극인까지, 학자, 연출가, 극단, 기획자들의 도움도 기억하고 싶네요.”

△내년이면 한중수교 30주년을 맞습니다. 한중연극교류협회와 같은 민간 부분, 특히 문화계에서의 역할이 중요할 텐데요. 오랫동안 중국을 연구해온 연구자로서 우리가 어떻게 중국을 이해하는 게 바람직할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중국은 떼어 놓기엔 너무 가깝고 같이 가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이웃입니다. 과거 전통 시대에도 그랬지만, 열강 세력 균형의 전장이자 남북 분단 상황의 한반도에서는 더욱 어려움이 가중돼 있는 현실이죠. 친중이거나 친미, 어느 하나를 고를 수는 없다고 봐요. 지구적이고자 하나 동아시아적이기도 하기 때문이죠. 현실적으로 중국은 최대 교역국이고 미·일을 합한 것보다 교역량이 많다 하니, 소홀할 수 없죠. 문화 예술 시장으로의 잠재력 또한 어마어마한 것이고요. 그러나 중국 시장 진출은 어려움이 많습니다. 중국 시장의 문화적 기초에 대한 이해를 갖추는 것이 중요함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미국의 한국어 사용자나 한국 전문가보다 우리의 영어 사용자나 미국 유학 전문가가 많을 것입니다. 우리는 미국을 더 잘 알아야 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중국의 한국 전문가보다 우리 중국 전문가가 더 많을지는 의문입니다. 적어도 우리말을 하는 조선족 중국인이 중국말을 하는 한국인보다는 많을 것입니다. 또 우리 중국 전문가들의 대부분은 사회과학 영역에서 중국 사회의 정치·경제 현상을 연구·분석하거나 중국문학 영역에서 텍스트를 분석해왔습니다. 

역사에 대한 이해나 지리에 대한 이해,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이죠. 중국인의 사고방식과 정서, 취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요. 연극은 그들의 삶을 가장 잘 담고 있는 문학이자 예술이며, 중국에서는 가장 사랑받는 예술양식의 하나입니다. 민간 차원의 연극 교류를 통해, 그들 삶에서 우러난 진솔한 언어와 감성이 무대 위에서 살아있는 에너지로 펼쳐질 때 공감도가 높아질 것이고, 공감대가 형성되면 다음 행보가 쉬워지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최근 중국희곡 낭독공연을 통해 중국 작품을 우리 관객이 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도 큰 수확입니다. 교류란 상호적이고 호혜적이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우리 것을 중국에 알리는 작업 또한 자연스럽게 확대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후학을 양성하는 교수로서, 그리고 공연 문화계의 일원으로서 정말 많은 일을 해내셨는데요. 교수님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 무엇인지 여쭈어보아도 될까요? 100세 시대인 지금, 앞으로의 계획도 궁금합니다. 

“능력이 부족해 많은 일을 하지 못했고, 언제나 겨우겨우 해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 전공과 취미가 일치되는 선택을 한 것은 참 감사한 일입니다. 중국희곡을 전공하며 공연예술 영역에서 일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또 교육 영역에 제 전공을 활용한 사례로, 한양대 중문과에서 매년 중국어 연극을 공연하는데, 올해로 32회째가 됩니다. 학생들의 공동체 작업으로, 중국어 교육으로, 공연 제작 경험으로 매년 연극대원과 저에게 귀한 경험이자 소중한 기억이 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여성학자로서 가정과 일을 병행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세 딸이 신앙 안에서 잘 성장해 주었고, 귀한 제자들이 각자의 길을 잘 가고 있으니, 큰 보람입니다. 주변에 늘 도움의 손길이 있어서 가능했습니다. 제가 주변에서 받은 사랑과 도움이 커서, 앞으로도 제가 가진 지식과 경험을 더 많이 나눠야 합니다. 특히 우리의 뛰어난 연극인들이 그 재능을 충분히 발휘해 우리 공연예술이 더 풍성해지기를 바라며, 한중 문화의 가교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들을 조용히 해나가려 합니다.”

최익현 편집기획위원 editor@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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