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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271] 이스라지 나무가 맺어준 인연
[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271] 이스라지 나무가 맺어준 인연
  • 권오길
  • 승인 2021.06.03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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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위키피디아
사진=위키피디아

나에게 식물이름을 알려주는 유 기억 교수는 어찌 저 많은 식물이름을 온통 외고 있는 것일까? 말 그대로 척척박사다! 나 태주 시인 또한 풀꽃에 대해서 도사이시다. 그의 시‘풀꽃’에는“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그리고 ‘풀꽃2’에는“이름을 알고 나면 아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을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또‘풀꽃3’에서는“기죽지 말고 살아봐 꽃 피워봐 참 좋아.”라고 읊었다. 옳거니, 푸나무이름을 꼭꼭 외우고, 자세히 또 오래오래 두루두루 살펴보련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고 했지 않은가.

그리고 대학동기 한 사람은 내가 식물명 외우기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듣고는 참 부럽단다. 그럴 만도 하다. 식물이름은 제 때 제 때 알려주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려운 일이니까. 또한 김춘수의‘꽃’한두 도막(小節)이 내 마음이요, 내가 이놈들의 이름을 외우고하자는 까닭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내가 집에서 글방으로 오는 동안과 춘천시 외곽에 있는 얕은 산등성이를(‘애막골’)산책하는 오후시간에는 엄청 즐겁고 더욱 바빠진다. 애막골은 내가 환갑에 걷고 달리기를 시작한 한 곳으로 이미 20년이 훌쩍 넘었다. 그런데 요새 와서는 그냥 걷는 게 아니라 길가의 푸나무(풀과 나무)를 뚫어지게 보고 찾아 그들의 이름외기를 3년째 하고 있다. 이름을 모르는 녀석들은 보이는 족족 사진을 찍어 강원대학교 생명과학과(옛 생물학과)의 유 기억 교수에게 날려 보낸다. 유교수는 식물분류학을 전공하는 제자교수로 그때마다 빛의 속도로 답(이름)을 보내준다. 노는 입에 염불한다고, 산책을 하면서 궁금증도 풀 수 있으매 일석이조가 아니고 뭐람.

그런데 아무도 애막골이란 지명의 뜻을 잘 모른다. 애막골이 지금은 춘천시동부 변두리에 있지만 옛날엔 시내에서 동쪽으로 제법 멀리 떨어진 야산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애기들이 죽으면 독에 넣어 너덜겅에 묻어버리는 애기장이 있던 곳(애를 마구 묻는 골짜기)이라는 설도 있다. 

필자는 대학 때 생물학을 전공한지라 식물분류도 물론 공부하였다. 분류시간에 달달 익혔던‘남산제비꽃’을 잊은 지 오래다. 아, 그런데 얼마 전에 쥐손이풀을 좀 닮은 것을 발견하고 콕콕 찍어 보낸 사진이 남산제비꽃이란다! 순간 가던 걸음을 멈추고는 식물분류학을 가르쳐 주셨던 고 이 영로 선배선생님과 고인이 된 동기 10명을 떠올리게 되었고, 또 지금 치매로 세상모르고 살고 있는 친구도 생각나 만감이 교차하였다.  

그리고 얼마 전에 앵두꽃이 이지러졌으니 그 녀석이 만발했겠다 싶어 작년에 보았던 곳으로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한창 벚꽃 닮은 꽃망울들 나무마다 활짝 벌어 꽃 대궐이다! 당장 사진 찍어 보냈더니만 작년에 외운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 이름 이스라지나무(산앵두나무)란다. 

이스라지나무에서 할머니를 만나게 될 줄이야. 내가 초등학교 6학년에 세상을 떠난 우리할머니는 중풍으로 반신불수이시라 항상 방에 앉아만 계셨다. 늦은 봄, 이른 아침에 뒷산에 소를 먹이러 간다. 소고삐를 목에 칭칭 감아주고 풀을 뜯게 쳐둔 다음에 우리는 이슬 맺은 산앵도(산앵두) 같은 열매를 따고 또 잔대나 산도라지뿌리를 캔다. 그리고 새콤하며 약간 떫은 이스라지 열매를 따 모아 호주머니에 넣어두어 할머니를 드린다. 산앵두 말고도 딸기, 머루, 다래를 모아드렸지.

사실 이스라지란 말이 참 외우기 힘들었고, 몇 번을 외워도 또 까먹는다. 그래서 ‘이슬과 아지’가 합쳐진 걸로 외우기로 했다. “이슬 같은 열매가 달리는 나무인데, 벚나무보다 작은 나무라 강아지송아지 할 때의 ~아지를 붙인 것이다.”정말 그럴듯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스라지는 순수한 우리말로, 표준국어대사전에 이스랏은 앵두나무를 비롯해 매화, 벚나무 따위 열매를 가리키는 우리 옛말이라 한다. 

이스라지나무(Prunus japonica)는 장미과의 낙엽관목으로 산지에서 자란다. 높이 약 1m로 잎은 어긋나고, 달걀 모양 이거나 긴 타원형이다. 잎 뒷면 잎맥 위에 잔털이 나고, 가장자리에 잔 겹 톱니가 있다. 꽃은 4-5월에 잎보다 먼저 가지 끝에 2~3개가 모여 피고, 암술은 1개이며, 수술은 10개이다. 7∼8월에 앵두같이 붉게 익고, 열매는 이뇨작용, 변비, 소화촉진에 사용한다. 한국, 일본, 중국 북동부 등지에 분포한다.

권오길 강원대 생물학과 명예교수
권오길 강원대 생물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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