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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진 중앙대 교수] “ 유능한 군대 원한다면 사람에 투자해야”
[최영진 중앙대 교수] “ 유능한 군대 원한다면 사람에 투자해야”
  • 박강수
  • 승인 2021.06.09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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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인터뷰_ 『전쟁이라는 세계』 쓴 최영진 중앙대 교수

 

“’밀덕’은 많은데 전문가는 없다.”

최영진 중앙대 교수(정치국제학과)의 말이다. 그는 한국의 부실한 군사학 기반을 지적하며 “제도화된 틀도 없고 양성 과정도 없어 지식이 체계적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사관학교에서도 군사를 잘 안 가르친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군사학 전문가다. 20년 전 우연히 한국전략문제연구소 연구에 참여한 게 연이 돼 시작한 공부가 쌓인 결과다. 최 교수는 대한민국 육군과 지상작전사령부, 육군특수전사령부 발전자문위원을 지냈고, <국방일보>에서 ‘전쟁과 미술’, ‘현대 군사 명저’를 주제로 두 차례 글을 연재했다. 뒤의 글들이 지난 4월 『전쟁이라는 세계』(한겨레출판)로 묶여 출간됐다. 두 번의 세계전쟁과 한국전쟁, 이라크전에 이르는 현대전의 이면과 양상을 분석한 저술 36권의 서평이 실렸다. “미국과 영국의 육군사관학교 추천도서 목록을 하나씩 찾아 읽기 시작한 게 글의 뿌리가 됐다”고 최 교수는 설명한다.

‘미국은 왜 자꾸 끝없는 전쟁의 수렁에 빠지는가’, ‘첨단 무기가 많을수록 승리할 가능성도 높아질까’, ‘군에 대한 문민통제는 전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등 흥미로운 주제가 즐비하다. 다만 아직 번역되지 않은 책이 14권, 품절∙절판된 책이 7권으로 소개된 리스트의 약 절반을 구할 수 없다. 군사학에 대한 한국의 빈약한 관심 수준이 드러난다. 아쉬움을 달래고자 지난달 26일 중앙대 연구실에서 최 교수를 만났다. 최 교수는 “밀덕들은 무기 얘기만 하는데 어떤 무기를 갖췄느냐 보다는 무기를 어떻게 운용하느냐가 핵심이다. 이를 알기 위해 전쟁사와 군사학을 공부해야 한다”며 “공부하는 군인의 중요성”을 연신 강조했다.

 

최영진 중앙대 교수(정치국제학과)는 현재 '국방일보'에서 '최신 군사학 연구동향', '국방저널'에서 '군사고전 다시 읽기', '역사 속의 군사전략'을 연재 중이다. 작년부터는 이데일리TV '워-스트리티지'에서 전쟁과 전략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사진=박강수
최영진 중앙대 교수(정치국제학과)는 현재 '국방일보'에서 '최신 군사학 연구동향', '국방저널'에서 '군사고전 다시 읽기', '역사 속의 군사전략'을 연재 중이다. 작년부터는 이데일리TV '워-스트리티지'에서 전쟁과 전략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사진=박강수

 

△ 전쟁에 대한 통념을 깨는 독서였다. “한국전쟁 이후 16번의 전쟁에서 무기 성능이 앞선 국가가 이긴 경우는 절반 뿐”이라거나 “군비지출과 승전 사이 상관관계도 높지 않다”(스티븐 비들, 『군사력』)는 사실이 놀랍다.

“전투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변수가 작동한다. 클라우제비츠는 이것을 ‘전장의 안개’라고 표현한다. 예상대로 되는 게 없다. 계획은 전쟁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존재한다. 지난 2백년간 전쟁 양상을 보면 예상했던 대로 간 전쟁은 거의 없다(로런스 프리드먼, 『전쟁의 미래』). 1차세계대전은 기관총과 야포의 발달 덕에 속전속결로 끝날 줄 알았으나 지루한 참호전으로 귀착됐고, 1차대전 비슷하게 전개될 줄 알았던 2차세계대전에서는 참호전도 화학탄도 나타나지 않았다. 전쟁은 예측할 수 없다는 거다. 그래서 결국 이기는 부대는 ‘빨리 학습하는’ 부대다. 전장에서 빠르게 적을 파악하고 ‘국지적 우세 전략’을 창의적으로 만들어 대응하는 부대가 이긴다.”

 

△ “무기보다 중요한 것은 작전술과 전술적 역량”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군사력 평가는 여전히 무기와 장비, 병력 중심이다. 글로벌파이어파워(GFP) 순위를 보면 한국은 올해 세계 6위에 올랐다.

“무기만 많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무기가 체계적으로 연결이 돼야 한다. 무기 체계를 조직화해 전술적∙전략적으로 잘 운용해야 한다. 이걸 못하면 무기는 쇳덩어리에 불과하다. 중동전쟁을 보라. 무기만 비교하면 아프가니스탄이 미국을 이길 수가 없어야 하는데 반대다. 미국의 최첨단 무기들이 동굴에 숨어들어간 테러리스트들을 못 잡는다. 20년 전쟁하고 1조 달러 퍼붓고 패배한 전쟁이 아프간 전쟁이다.”

 

△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끊임없이 치러냈던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했다. ‘정치적 실패’로 분석하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이 패배한 곳은 전투 현장이 아니라 바로 워싱턴DC”(맥마스터)라는 것이다. 비슷한 미국의 방황은 2000년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도 반복됐다.

“승리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가 안 돼 있는 거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의 전략적 목표는 아프간을 민주화시키고 민중을 해방시켜 테러리스트들이 발 붙이지 못하는 나라로 만드는 거였다. 어려운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아프간 사람들이 미군을 자기 친구로 받아들일 수 있게 행동해야 했다. 물리력이 아니라 주민의 마음을 얻는 전혀 다른 접근이 필요했다. 그런데 민간인이 계속 죽으니 누가 미군을 해방군으로 보나. 주먹질하는 점령군이지. 미국은 늘 그런 식이다. 정치적 목표는 있는데 군사적 차원에서는 전혀 실효성 없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정치적 목표와 군사전략의 불일치가 발생해 아무런 정치적 목표를 달성할 수 없게 된다.”

 

“모병제는 무능하고 가난한 군대 만들어 낼 것”

 

△ 책을 관통하는 주제 중 하나인 “전쟁의 본질은 정치”라는 지적과도 맥이 닿는 거 같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에 나왔듯, 전쟁은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이다. 훌륭한 군인들은 전쟁을 통해 달성돼야 하는 정치적 목표가 뭔지 알아야 하고 이 목표를 정하는 사람은 민간 통치자다. 민군 간에 끊임없는 소통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걸 놓치고 군사적인 사고만 하면 결국 진다. 왜 맥아더가 잘렸을까. 한국전쟁 당시 미국은 전면전을 할 이유가 없었다. ‘자유 세계를 지킨다는 명분을 지키는 선에서 확전을 피하는 것’, 이것이 트루먼 대통령의 정책적 목표였다. 그런데 맥아더는 만주 폭격을 주장하며 정책적 목표를 따르지 않았다. 왜 군인이 그걸 정하나. 우리는 맥아더를 높게 평가하지만 미국 학계에서는 최고 통수권자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소위 ‘우스운 군인’이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갈무리, 2016). “전쟁은 정치적 교섭에 지나지 않고 결코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는 개념”을 제시한 군사학 고전이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갈무리, 2016). “전쟁은 정치적 교섭에 지나지 않고 결코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는 개념”을 제시한 군사학 고전이다.

 

△ 군에 대한 문민통제의 중요성과도 이어지는 이야기다.

“군은 스스로 전쟁 전문가라고 여기기 때문에 일단 전쟁이 시작되면 자기들이 판단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군과 민간 통치자들이 계속 논의하면서 정치적 목표를 바꿔 가야 한다. 미국 남북전쟁의 링컨, 1차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의 클레망소, 2차세계대전의 처칠 등 승전국의 지도자들이 전쟁을 결코 장군들에게 맡겨두지 않고 끊임없이 개입했다(엘리엇 코헨, 『최고사령부』). 민간 통치자가 어떻게 군을 장악하고 통제하면서 지휘를 잘 하느냐, 전략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유능한 장교단이 있느냐 이게 전쟁의 승패를 결정한다.”

 

△ 유능한 지휘관 양성이라는 측면에서 한국은 어떤가.

“솔직히 말하면 엉망이다. 내가 계속 강조해온 게 ‘군인들 공부 시켜야 한다’는 거다. 미국은 자기 복무 기간 3분의 1이나 4분의 1은 교육을 받는다. 그런데 우리 군대는 공부를 안 시킨다. 고등군사반 끝내고 소령에서 장군 진급할 때까지 한 20년 동안 아무런 교육이 없다. 아주 소수만 해외에 나가거나 대학에서 교육을 받는다. 나머지는 다 ‘짬밥’으로 진급하는 거다. 이 군인들은 현역에 있는 동안 딱 두 가지만 수행한다. 명령을 내리거나, 명령에 복종하거나. 내부에서 학습능력을 학습하고 토론하고 그런 연습이 안 되어 있다. 무능해질 수밖에 없다. 국가적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사진=박강수

 

△ 얼마 전 ‘모병제∙징병제’ 이슈가 조명을 받았다. 어떤 입장인가.

“모병제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모병제 시행하면) 아주 가난하고 무능한 군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겪었던 것과 똑 같은 상황이 발생하는 거다. 미군이 왜 무력해 졌나. (지원병으로 전환하면서) 군대가 ‘용병화’ 됐다. 모병은 다른 말로 용병이다. 돈 주고 군대를 사는 거다. 여기에 미군은 PMC(Private Military Company)라고 민간군수기업도 상당수 있는데 둘 다 용병 체제다. 결국 군대를 누가 가느냐. 가난한 사람이 가고 흑인, 히스패닉, 소수 인종이 간다. 더 심각한 것은 군의 이슈가 미국 주류 사회와 분리된다는 점이다. 전쟁에 대한 사회적 판단력이 흐려진다. 내 자식, 친구가 죽는 전쟁이 아니니 돈만 지불하면 되는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나마 미국은 군인에 대한 사회적 인정이 있어 나은 편이다. 한국은 영관급 장교들도 민간사회 나올 때 군복을 못 입을 정도로 군에 대한 인식이 나쁘다. 누가 군대에 가려고 하겠나.”

 

“전쟁을 준비함으로써 전쟁을 예방하는 것이 군의 역할”

 

△ 제언한다면?

“줄어드는 병력 자원에 맞춰서 군대를 운영해야 된다. 30만에서 20만 수준의 군대를 가져야 되고 한국의 민간군수기업도 키워야 한다. 의무병 병력 충원에 대해서는 사회적 지혜가 필요한데 나는 공무원 할 사람들, 정치할 사람들, 선생님들, 국가 세금으로 월급 받아 먹고 살 사람들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공에 봉사할 사람들만 의무병을 하게 하자는 거다. 남녀 불문하고. 지금 남녀를 나누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다. 이미 전쟁 방식 자체가 변해서 여자가 남자보다 잘하는 일이 많다. 이를테면 무인기, 미국에서는 여군들이 다 운용한다. 우리 사회의 우수한 여성 자원들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충원해서 군 내 여성 인력을 30%까지 올려야 한다. 안 가는 사람들은 예술 활동, 기업 활동 하면서 사회에 기여하면 된다. 대신 이들은 동원병력으로 잡아서 1년에 며칠씩 군사 훈련 받게 하고.”

 

△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라도 강한 국방이 필요하다고 보나.

“군의 독특한 측면이 뭔가 하면, 첫 번째, 전쟁이 일어나면 일단 군대는 실패한 거다. 이기는 군대를 많이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다. 전쟁을 막는 게 군대의 역할이다. ‘디펜스(Defence)’다. 그래서 계속 훈련을 하고 강하고 유능한 군대라는 걸 (주변 국가에) 심어줘야 된다. 모순적이다. 전쟁을 준비해서 전쟁을 막는 거다. 두 번째, 일단 전쟁이 일어나면 이겨야 한다. 잘 싸울 수 있는 능력은 거듭 강조했듯 학습이다. 군대의 본질은 학습에 있다. 우리 사회가 군대라는 집단에 대단히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데 이 사람들을 단순히 전쟁만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창의력 있고 학습력이 뛰어난 사람으로 양성해야 한다.”

 

△ 군비 경쟁은 전쟁 위험을 키우기 때문에 군축이야말로 평화로 가는 길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맞다. 그래서 무기만 갖추는 게 아니라 사람에 투자해야 된다는 거다. 무기라는 것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폐기된다. 사람에 투자하는 건 없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비용이 적게 들고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꼭 필요한 무기는 구입하되 더 많은 돈을 사람에 투자해야 한다.”

 

미국의 민영방송사 HBO에서 2001년 제작한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한 장면. 왼쪽에서 두번째가 당시 E중대의 지휘관으로 활약한 리처드 윈터스(배우는 대미언 루이스)다. 사진=IMDB
미국의 민영방송사 HBO에서 2001년 제작한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한 장면. 왼쪽에서 두번째가 당시 E중대의 지휘관으로 활약한 리처드 윈터스(배우는 대미언 루이스)다. 사진=IMDB

 

△ 목차를 보면 『밴드 오브 브라더스』(스티븐 앰브로즈)도 나온다. 동명 드라마가 굉장한 걸작으로 꼽히는데 끝으로 군이나 전쟁의 본질을 잘 다룬 영화나 드라마를 추천한다면?

“「밴드 오브 브라더스」가 최고다(웃음). 그 만한 게 없다. 다만 그 작품을 보면 2차 세계대전의 중심이 서부전선이었던 것처럼 생각하기 쉬운데 실은 동부전선에서 소련군이 4년간 버티면서 싸워준 게 컸다. 독일군 희생자 1천350만 명 중 1천70만 명 이상(약 80%)이 동부전선에 나왔다(데이비드 글렌츠 외, 『독소전쟁사 1941~1945』). 독일은 장교단 교육이 정말 잘 돼 있다. 리처드 윈터스(「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주인공인 E중대 지휘관) 같은 (유능한) 장교가 거의 다라고 보면 된다. 미국은 어쩌다 하나씩 아주 드물게 있는데(웃음). 그런데 아무리 뛰어난 전술적 지휘관이 있어도 위에서 전략을 잘못 쓰면 실패한다. 소련은 나폴레옹 시절부터 작전술에 뛰어난 전통이 있는 나라다. 히틀러가 소련이라고 하는 거대한 나라를 잡아먹으려고 든 게 실수였다.”

 

박강수 기자 pp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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