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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인터뷰] 전경목 전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역사학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았던 조선의 ‘감정’
[저자 인터뷰] 전경목 전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역사학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았던 조선의 ‘감정’
  • 정민기
  • 승인 2021.06.11 0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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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편지로 읽는 조선사람의 감정』 쓴 전경목 전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조선시대 선비들이 주고받았던 ‘편지’에서
묻혀 있던 ‘감정의 역사’가 되살아나다

 

전경목 전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이번 해 2월에 정년 퇴임을 했다. 그는 전북대 사학과에서 석·박사를 하고 전북대박물관에서 15년을 근무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20년 동안 한국 고문서학의 기틀을 세우고 후학 양성에 힘썼다. 

퇴임과 함께 출간된 신간 『옛 편지로 읽는 조선사람의 감정』은 저자가 그동안 연구해온 조선의 고문서를 바탕으로 시작하는 여러 책들 중 하나다. 지난 달 26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저자를 만났다.

저자는 “중국과 조선은 역사 시스템이 워낙 잘 발달되어 있어서 역설적으로 고문서학이 늦게 발달했다”고 했다. 선조들이 잘 정리해 놓은 실록이 있으니 역설적으로 전국에 퍼져있는 편지나 땅 문서와 같은 고문서를 살펴보지 않은 것이다. 대부분의 고문서는 초서나 옛 한글로 작성됐기 때문에 해석이 어렵다는 점도 고문서학의 장벽을 높여 학문 발전을 늦췄다.

실록에는 정치와 문화에 관한 내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실록만으로는 과거를 온전히 파악하기 힘들다는 것이 저자의 입장이다. 예컨대 서울 땅값과 전월세가 폭등했던 일이라던지 노비의 일상과 역할에 대해 상세히 다룬 ‘일상사’는 실록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고문서학은 바로 이 틈을 메우는 학문이다. 당대 선비들이 주고받은 편지나 땅 문서, 노비 문서, 탄원서 등을 통해 과거를 되짚는다.

우리나라에서 고문서학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80년대부터다. 저자는 80년대에 석·박사를 하고 박물관에서 일하며 고문서 수집을 도운 1세대 연구자다. 척박했던 학문의 영토에 씨를 뿌릴 때까지 40여 년의 세월이 걸렸다. 저자는 “오랜 노력 끝에 고문서 수집이 충분히 이루어졌지만 이제 수집된 방대한 자료들을 정리하고 이를 통해 융복합적인 연구 성과를 내는 일이 남았다”고 했다.

저자는 “고문서학 연구가 더 발전하려면 학제간 연구가 강화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에서 고고학을 공부하면 학부 때부터 출토 현장에 나가서 배운다고 한다. 그래서 박사까지 해도 출토 과정에서 나온 볍씨가 언제적 볍씨인지, 야생종인지 재배를 위해 선별된 종인지 구별할 줄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반면 외국의 경우에는 학부 때는 고생물학, 석사 때는 통계학, 박사 때는 고고학을 공부할 수 있다. 저자는 “외국의 경우에는 이렇게 다양한 학문 분야의 경험 때문에 고고학적 단서를 읽어내는 능력이 훨씬 뛰어나다”며 “한국도 이제 위로만 나아갈 것이 아니라 옆으로도 넓게 뻗어나가야 한다”고 했다.

역사학과 고문서학의 차이점

저자는 “역사학계과 고문서학이 과거를 바라보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고 했다. 고문서를 통해 알게된 옛날 사람들의 새로운 사실이 흥미로울 순 있으나 그것은 특수한 사례에 불과할 뿐 일반적인 역사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역사학계의 입장이다. 저자는 역사학계와 입장이 조금 달랐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역사를 논하려면 통계를 이용해야하는데 이 과정에서 제거되는 내용이 많다. 원래 자료에 있던 내용을 충실히 따라가보는 것 역시 중요하다. 

저자의 신간 『옛 편지로 읽는 조선 사람의 감정』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감정’을 주제로 삼았다. 이 또한 역사학과 고문서학의 차이점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다. 일반적으로 역사학계에서 ‘감정’은 학문의 주제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을 낸다고 했을 때 “역사에서 무슨 감정을 다루냐, 말도 안 되는 소리다”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감정이 역사적 사건의 매우 중요한 촉발재였다는 연구가 최근들에 많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프랑스 혁명이 이념이 아니라 불공정에 대한 감정에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는 최신 연구”를 예로 들었다.

저자는 “재료가 달라지면 요리법이 바뀌듯 고문서학과 역사학의 방법론도 차별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전문 역사가들이 편찬한 실록을 읽을 때와 일반 선비들이 주고 받은 편지나 문서를 읽을 때 각각 다른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편지를 쓸 때 사용한 종이, 그림, 글자를 얼마나 정자로 또박또박 썼는지의 여부 등을 살펴보는 방법이 있다. 책에서 저자는 이러한 방법론을 통해 편지를 주고 받는 사람들 간의 미묘한 감정을 읽어낸다.

저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선시대 선비도 결국 우리 조상이기 때문에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오해다”고 했다. 현대인은 서구화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조선시대를 쉽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자 역시 “도대체 우리 조상이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고 했다.

이해할 수 없는 것만큼 호기심을 자아내는 것은 없다. 선조들의 내면을 들춰낸 이 책은 저자의 첫걸음이다. 조선시대 노비의 동성애와 관련된 이야기, 조선시대 소 도살의 실상에 관한 이야기 등 저자는 그동안 연구해온 조선시대의 일상사를 책으로 계속 펴낼 것이라고 밝혔다. 

정민기 기자 bonsens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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