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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영화를 보는 것인가 영화가 우리를 보는 것인가
우리가 영화를 보는 것인가 영화가 우리를 보는 것인가
  • 이승엽
  • 승인 2021.06.24 0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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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OTT(Over-the-top) 시장의 확대와 함께 향후 영화는 어떻게 될 것인가?” 최근 한 1년 정도 전부터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이 질문은 근본적으로 OTT 미디어 환경을 통해 영화를 관람하는 일이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영화에 대한 인식에 어떠한 변화를 주었는지, 그리고 영화 자체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에 대한 질문과 맞닿아 있다.

사실 영화 자체의 변화는 꽤 오래 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1990년부터 2000년 사이에 미국에서는 영화, 방송, 인터넷 통신 등을 통합한 거대 미디어 재벌이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이 기업들은 세계 영화 시장을 완전히 잠식하며 2000년대 이후에 글로벌 미디어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이때부터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영화 제작의 개념이 변했다고 본다. 기존의 영화는 영화관에서 가장 큰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였다. TV, 케이블 방송 같은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할 때마다 영화계는 와이드 스크린, 돌비 사운드 등 포맷을 변화시키던가, 대규모 비용이 드는 블록버스터를 제작하여 다른 매체가 따라 하기 힘든 영화관만의 차별화된 전략을 통해 그 가치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영화는 물론 게임, 방송, 애니메이션, 캐릭터 상품, 인터넷 플랫폼, 테마파크 등 다양한 사업 구조로 이루어진 거대 미디어 그룹은 하나의 원본 콘텐츠를 다른 매체로 다변화한 확장을 통해 다양한 수익 구조를 창출하는 ‘원 소스 멀티 유즈(OSMU)’를 주요 사업 방식으로 채택하였다. 따라서 영화는 다양한 매체로 변용되어 부가 가치를 극대화하는 방식에 부합하는 형태로 제작되기 시작하였고, ‘프랜차이즈 시리즈’와 ‘리부트’ 영화가 이러한 변화에 가장 적합한 영화로 부각되었다. 아울러 관객 연령 제한이 없고 누구나 친근하게 접할 수 있으며 긍정적 이미지를 가진 상품이어야 했다. 여러 차례 리부트에도 불구하고 스파이더맨이 지금 가장 인기 있는 캐릭터 중 하나인 것은 ‘OSMU’가 추구하는 성격에 가장 부합하기 때문이다. 이 점이 지금의 할리우드 영화의 창작 기준일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가 세계 영화 시장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시장을 지배하는 세력이 영화를 시리즈 혹은 TV드라마의 형태로 확장하여 OTT 등 다양한 매체에 배급하기 시작하면 대중은 그 변화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이는 우리에게 이미 구조화된 영화에 대한 인식을 연쇄적으로 변화시킨다. 영화관이라는 공간은 관객이 현실 세계와 분리되어 허구의 세계로 쉽게 옮겨갈 수 있는 역할을 하며 관객이 몰입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조성한다. 영화관을 나서는 순간 관객은 햇살을 맞으며 허구의 세계에서 빠르게 분리되어 현실로 돌아온다. 반면에 OTT라는 환경 속에는 영화관과 같이 현실과 허구 세계의 명확한 분리 작용이 없으며, 영화에 대한 몰입도 역시 느슨해진다. 대신에 OTT 미디어는 개인을 영원히 끝나지 않는 영화와 드라마의 허구 세계에 지속적인 접속 상태로 만든다. 이는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사람들은 물리적 현실에 발붙이고 있지만 그들의 정신은 스마트폰 속 세계에 늘 접속되어 있다. 그들이 보는 것은 현실 속 일상이 아니라 가상, 허구,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정보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일의 의미는 관객이 현실에서 분리되어 창조된 허구 세계라는 창을 통해 현실을 관찰하는 데 있다. OTT 미디어를 통해 영화를 보는 일은 관객이 현실과 허구 세계의 중첩된 영역에 위치하여 계속해서 확대되고 재생산되는 정보를 관망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OTT 미디어의 영화는 애초에 관객이 자신의 플랫폼을 떠나 현실을 바라보게 설계되지 않았다. 관객이 최대한 자신의 시스템 안에 머물길 원하고 따라서 관객이 주체적으로 현실의 정보를 선택한다고 착각할 수 있게 미디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교묘하게 숨겼을 뿐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OTT 미디어의 틀 안에 갇혀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2020)에서 경고한 것처럼 우리가 미디어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생산자가 우리를 관찰하는 또 다른 형태의 ‘빅 브라더’일 수 있다. OTT 미디어 속 영화는 우리의 선택을 주시하고 그 기호에 맞춰 자신을 재단장할 뿐이다.

 

 

이승엽

한양대 연극영화학과 박사과정

영남대 경제금융학부를 졸업 후 직장을 다니다가 퇴사, 한양대 연극영화학과에서 질 들뢰즈의 운동-이미지 이론으로 라스 폰 트리에 영화에 관한 석사 논문을 썼다. 그리고 프랑스 소르본-누벨 대학에서 하룬 파로키의 몽타주 이미지에 대한 석사 논문을 썼다. 지난해 ‘역사-이미지의 기억’이라는 주제로 설치 미술 전시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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