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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영 제주대 교수 "나는 이렇다... 펜을 내려놓는 글쓰기"
이소영 제주대 교수 "나는 이렇다... 펜을 내려놓는 글쓰기"
  • 김재호
  • 승인 2021.07.01 08: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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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인터뷰_ 『별것 아닌 선의』(어크로스 | 280쪽) 쓴 이소영 제주대 교수

 

예리한 정치경제 분석보단 웃음 건네는 찰나 소중해

각별하게 각인된 어휘를 기억해두었다 꺼내어 사용

최근 이소영 제주대 교수(사회교육과)는 『별것 아닌 선의』를 출간했다. 책 속의 문장들은 유연하면서도 일침이 있다. 한 에피소드를 보자. 몇 년 전 늦은 저녁 택시 뒷좌석에 앉아 있었던 이 교수. 이 교수는 무슨 일인지 서럽게 울고 있었다. 이를 알아챈 택시기사는 말없이 라디오의 채널을 ‘최양락의 재미난 라디오’에서 클래식 FM으로 돌려주었다. 라디오에선 「아베 마리아」, 「살베 레지나」, 「마니피캇」이 흘러나왔다. 이 교수는 택시기사의 마음을 여전히 기억한다며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위로를 내게 건넸던 것”이라고 이 책에 적었다. 

이에 지난 23 이 교수를 서면 인터뷰했다. 책의 54편의 에피소들 중에 꼭 하나만 소개해달라고 물었다. 이에 이 교수는 제2장 ‘우리를 지탱해주는 것’ 중에서 ‘길게 내다봤을 때 축복인 지금’을 꼽았다. 논문 발표와 학술 글쓰기에 대한 이 교수의 경험과 생각이 잔잔히 펼쳐진다. 이런 글도 논문 발표와 글쓰기에 책 속 표현처럼 “미소(微小)한 쓰임”이 있겠다는 생각이다. 

책에는 클래식과 영화, 문학작품 등이 많이 인용된다. 평소 자주 작품들을 즐기느냐고 질문했다. 이 교수는 “터널 같은 시기를 지날 동안, 음악을 듣는 순간만큼은 내가 나여서 좋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라고 답했다. 그는 “영화나 소설의 경우, 이번에 책 준비하며 느낀 건데 내게 각별하게 닿는 종류의 이야기가 있는 듯하다”라며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채 그럼에도 매일의 일들을 하고, 발걸음을 떼어 계속 걷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이다”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소설 『스토너』(존 윌리암스, 1965)와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조르주 베르나노스, 1936), 영화 『포도나무를 베어라』(민병훈, 2006)와 『이다』(파벨 포리코브스키, 2013), 『안드레이 류블로프』(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1966) 등이 있다. 이 교수는 가장 사랑하는 작품으로 『안드레이 류블로프』을 꼽았다.  

이소영 교수가 들려주는 총 54편의 에피소드들은 헛헛한 일상에 온기를 전한다. 사진=이소영 

이 교수는 법학을 전공하고 현재 사범대에서 예비선생님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감성적인 책을 쓰게 됐을까. 이 교수는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국어국문학과)가 <경향신문>에 기획하고 있던 ‘금지를 금지하라’ 학술연재에 참여를 하고 있었다”라며 “거기 실린 내 글들을 보고 편집진으로부터 칼럼을 제안받았다”고 응답했다. 그는 “전문가들이 예리하게 분석할 정치경제적 현안과 세상을 바꾸는 방안에 서툰 논평을 한 줄 얹는 대신, 각자 선 자리에서 건넬 수 있는 만큼의 웃음과 이해와 온기를 건네는 찰나들에 관해 쓰고 싶었다”라며 “감성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기보다는 ‘작은’ 이야기를 하려 했던 것 같다”라고 밝혔다. 

 

카톡에도 조사나 어미 고치고 또 고쳐

이 교수에게 글쓰기란 무엇이고 어떻게 쓸까? 그는 “‘...해야 한다’ 식의 단정적인 주장은 이 책을 통해 하고 싶은, 혹은 할 수 있는 이야기의 울타리를 넘어선다는 생각에 의식적으로 지양했다”라며 “‘그대는 이러해야 한다’가 아니라, ‘나는 이렇다’는 데서 펜을 내려놓는 글쓰기를 하고자 했다”라고 답했다. 생각해보니 대의와 주장들이 과잉하는 시대다. 『별것 아닌 선의』는 그 대의와 주장들이 어떻게 삶 속에 녹아들어 있는지 이야기로 알려주는 듯하다. 

기자로서 부끄럽지만 책에서 ‘맞갖다(마음이나 입맛에 꼭 맞다)’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다. 이 교수는 “책 읽거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각별하게 각인된 어휘를 기억해두었다 꺼내어 사용하는 걸 좋아하는데, 대학 시절 십대 때 박완서 소설에서 읽었던 ‘감자꽃처럼 웃던’이란 표현을 학생회 투쟁대자보 문구로 넣었다가 선배들에게 핀잔을 듣기도 했었다”라고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아울러, 이 교수는 “학회 공지 메일 쓰거나 논문심사서 보낼 때, 심지어 카톡 남길 때조차 사소한 표현들, 가령 조사나 어미 같은 것들을 고치고 또 고친다”라고 덧붙였다. 

이 교수를 직접 만나보진 못했지만 글을 보면 ‘겸손한 태도’가 느껴진다. 그래서 교육관을 물었다. 그는 “비록 학생들에게 근사한 역할 모델이나 멘토가 되어주지 못할지라도, 내가 지닌 모종의 빈틈과 부족함으로 인해 도리어 타인의 그것을 세심하게 알아차리고 보듬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본인을 이렇게 소개했다. “나는 수줍어서 제때 인사 못하고 소심해서 예의 없는, 상대에게 너무 잘 보이고 싶은 나머지 경직되어 실수한 후 맹렬히 자책하는 그런 사람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싱그럽고 당찬 젊음의 틈새에 숨어든 ‘수줍어 인사 못하고’ ‘소심해서 예의 없는’ ‘잘 보이고 싶은 나머지 경직되는’, 나와 닮은 몇 안 되는 얼굴들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볼 수 있는 것 같다.”

만날 과학·학술 분야를 담당하다보니 생각이 굳어지는 것 같다. 그러다 이 책을 읽으며 이야기에 푹 빠졌다. 작은 일상에서 발견하는 감수성 어린 글들은 정책이나 이슈에서 제시되는 대안들보다 더 와닿았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이다. 

△법학을 전공하고, 사범대에서 예비선생님들에게 법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감성적인 책을 쓴 계기가 궁금하다.

2017년 가을 무렵, 중간시험 감독 마치고 나오다 경향신문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어요. 당시 천정환 선생님이 기획하신 <금지를 금지하라>라는 학술연재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거기 실린 제 글들을 보고 편집진 윗분이 칼럼을 제안하셨다고요. 고민하다 “전 숲이 아닌 나무 한 그루에 눈길이 닿아 있어 시사적인 글쓰기가 어렵습니다” 답을 드렸더니, 구애받지 않고 일단 하고픈 이야기를 써보라 하셨어요. 제가 하고픈 이야기가 무엇일까 골똘하다 문득 엉뚱한 기억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언젠가, 무작정 택시 잡아타고 성당 가달라며 울던 저를 위해 기사님이 말없이 듣고 있던 “최양락의 재미난 라디오”에서 주파수를 돌려 클래식 FM을 틀어주셨던 적이 있어요. 당시 뭐가 그리 힘들었는지, 제가 성당 가서 어떤 기도를 드렸는지는 가물가물하지만, 울던 승객을 위해 듣던 라디오 프로그램을 희생하고 성모의 노래들을 함께 들어주신 기사님의 마음은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이렇듯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것들, 도움이 되는 순간들에 대해 써보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전문가들이 예리하게 분석할 정치경제적 현안과 세상을 바꾸는 방안에 서툰 논평을 한 줄 얹는 대신, 각자 선 자리에서 건넬 수 있는 만큼의 웃음과 이해와 온기를 건네는 찰나들에 관해 쓰고 싶었어요. 감성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기보다는 ‘작은’ 이야기를 하려 했던 것 같아요. 그런 지향으로 매회 원고를 준비했고, 3년 넘게 글이 모였고, 거기 새로 쓴 원고들을 더해서 책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클래식과 영화(혹은 예술영화), 문학작품을 참 좋아하는 듯하다. 책의 곳곳에 여러 작품들이 인용되고 있다. 평소에 자주 음악과 작품들을 즐기는 편인가.

자기소개서나 소개팅 자리에서 쓰일 관용구 같지만, 문자 그대로 ‘제 취미는 독서와 영화감상입니다.’(웃음) 음악은 이십대 때 정말 많이 찾아들었는데, 그렇다고 예술에 조예가 깊거나 취향이 뚜렷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연주할 줄 아는 악기도 없고요. 바흐의 <마태수난곡> 듣다 힙합을 이어 듣는 식이었습니다. 하지만 한두 소절 들으면 글렌 굴드가 치는 건반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었고, 필리프 헤레베헤가 지휘하는 미사곡에 감도는 경검함이 여느 지휘자의 해석과 다르단 걸 어렴풋이 느꼈어요. 유희열이 작곡한 곡은 누가 불러도 ‘유희열 감수성’임을 감지했고, 아트록이란 장르가 왜 ‘아트록’인지는 몰랐지만 그렇게 분류되는 음악들이 동일한 장르로 놓이게끔 했을, 소리에 담긴 특유의 온기가 좋았습니다. 터널 같은 시기를 지날 동안, 음악을 듣는 순간만큼은 내가 나여서 좋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요즘도 그 무렵 듣던 연주들을 주로 고르게 되는 것 같고요. 영화나 소설의 경우, 이번에 책 준비하며 느낀 건데 제게 각별하게 닿는 종류의 이야기가 있는 듯합니다.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채 그럼에도 매일의 일들을 하고, 발걸음을 떼어 계속 걷는 사람들의 이야기요. 소설 <스토너>와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가 그랬고, 영화  <포도나무를 베어라>와 <이다> 그리고 가장 사랑하는 작품 <안드레이 류블로프>가 그랬습니다. 

△만날 대학과 사회적 문제에 대한 데이터 분석과 비판적인 질문과 인터뷰를 진행하다보니 기자 역시 지칠 때가 많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니 일종의 '위로' 같은 게 느껴진다. 삶의 순간을 포착하고 글로 표현하시는 게 매우 유연하면서 힘을 지니고 있다. 본인에게 글쓰기란 무엇이며, 어떤 글쓰기를 지향하시는가? 더 나아가 어떤 식으로 글쓰기 작업을 하는가.

물론 평소 논문 형태의 학술적인 글을 쓸 때는 논문적 글쓰기를 하고요.(웃음)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의 경우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이야기라는 느슨한 지향만을 둔 채, 공부하고 가르치는 매일의 일들과 일상의 관계들, 혹은 영화나 소설이나 그림책 등에서 얻은 착안을 소재로 하여 비교적 자유롭게 집필했어요. 다만 “...해야 한다” 식의 단정적인 주장은 제가 이 책을 통해 하고 싶은, 혹은 할 수 있는 이야기의 울타리를 넘어선다는 생각에 의식적으로 지양했습니다. ‘우리 사회는 이러해야 한다’ 혹은 ‘그대는 이러해야 한다’가 아니라, ‘나는 이렇다’는 데서 펜을 내려놓는 글쓰기를 하고자 했어요. 
한편 한층 내밀한 의미에서의 글쓰기란, 제게 책상 위에 펼쳐둔 일기장 같은 의미일 듯해요.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기형도)라는 시구를 보고 일전에 누군가 그랬었어요. 사랑을 잃은 와중에 ‘(엉엉) 우네’도 ‘(꼴깍꼴깍) 마시네’도 아니고 ‘쓰네’라니 대체 시인들은 어떤 사람일지 싶다고요. 시인도 아니고 잃을 사랑도 갖지 못했지만 저 역시 그래왔던 것 같아요. 실제의 저는 언어로 다듬어낸 저보다 얕고 고집스러우며 속도 좁은 사람일 테고, 문득문득 그 간극에 자괴감이 일 때가 있지만요. 그 간극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인해 의지적으로나마 깊고 유연하고 따뜻해지고자 노력하니, 적어도 저를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그로 인해 그만 사랑하게 되진 않으리라 믿으려 합니다. 

△책을 보면서, 기자로서 부끄럽지만 '맞갖다'라는 단어를 처음 접해 사전을 찾아보았다. 우리말에 대한 관심도 많은가. 

책 읽거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각별하게 각인된 어휘를 기억해두었다 꺼내어 사용하는 걸 좋아하는데, 대학 시절 십대 때 박완서 소설에서 읽었던 “감자꽃처럼 웃던”이란 표현을 학생회 투쟁대자보 문구로 넣었다가 선배들에게 핀잔을 듣기도 했었어요.(웃음) 공부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 저 역시 언어에 대한 허영심이 있긴 한 듯합니다. 학회 공지 메일 쓰거나 논문심사서 보낼 때, 심지어 카톡 남길 때조차 사소한 표현들, 가령 조사나 어미 같은 것들을 고치고 또 고쳐요. “듯합니다”를 “같습니다”로, 그러다 다시 “같아요”로요. 동일한 낱말이 반복되는 게 싫고, 상대에게 더 아름답게 닿을 단어로 골라 쓰고 싶어서 말이지요. 요컨대 이런 마음이랄까요. “동봉한 편지에 아버지는 <나는 너를 믿는다. 네 소신껏 희망을 갖고 밀고 나가라. 어차피 인생이란 그런 것 아니겠냐>라고 써놓은 뒤, '아니겠냐'의 '겠'과 '냐' 사이에 v 자를 그려놓고 '느'를 부기했다. 그 편지를 읽을 때마다 나는 '아니겠냐'라고 쓴 뒤에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 중간에 '느' 자를 삽입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린다.” (김연수, 「뉴욕제과점」 중에서)

△책 속 글들에는 학자·교육자로서 혹은 한 인간으로서 부족함을 절실히 느끼는 '겸손한 태도'가 느껴진다. 사람이 완벽할 순 없지만, 학자·교육자나 인간으로서 꾸준히 배움을 이어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본인의 교육관이 무엇인가. 

예전에 학위를 받고 처음 강의 맡았을 때였는데요. 선배님들이 너는 몸집이 작은데다 학생 이미지이니 수업 도중 해실해실 웃고 그러지 말라며 “어른처럼 파마하고 정장을 입어라”는 조언을 주셨어요. 그렇게 강의실 들어갈 때 까만 정장 차려입고 입술을 근엄하게 일자로 만들다 한 학기 만에 결심했었습니다. 카리스마나 도도함만큼 저와 동떨어진 단어가 없는데, 애써 그걸 꾸며내기보다는 차라리 적극적으로 ‘카리스마가 없어서’ 다가서기 더 만만한 선생이 되기로요. 다음 학기부터는 평소처럼 스웨터와 주름치마 입고 해실해실 웃었지요.(웃음) 이런 생각 또한 종종 합니다. 비록 학생들에게 근사한 역할 모델이나 멘토가 되어주지 못할지라도, 제가 지닌 모종의 빈틈과 부족함으로 인해 도리어 타인의 그것을 세심하게 알아차리고 보듬어줄 수 있을 거라고요. 책에 수록된 에피소드들에서 느끼셨겠지만 저는 수줍어서 제때 인사 못하고 소심해서 예의 없는, 상대에게 너무 잘 보이고 싶은 나머지 경직되어 실수한 후 맹렬히 자책하는 그런 사람이에요.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싱그럽고 당찬 젊음의 틈새에 숨어든 ‘수줍어 인사 못하고’ ‘소심해서 예의 없는’ ‘잘 보이고 싶은 나머지 경직되는’, 저와 닮은 몇 안 되는 얼굴들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볼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들에게 “내가 너야. 그래서 나는 알아본단다”라 말해주는 누군가가 되고자 합니다. 때론 마음만 앞선 채 학생들을 대할 때 매 순간 일관성을 갖지 못하기도 하고, 아주 가끔 그래서 상처 입거나 제 쪽에서 상처를 입힐 때도 있지만, 그 지향을 내려놓지 않은 채 품고 싶습니다.

△여러 에피소드들이 마치 잡지 <좋은생각>처럼 펼쳐진다. 그럼에도, 독자분들에게 꼭 소개하고 싶은 이야기는 어떤 것인가.

저자의 손을 떠난 모든 글은 항상 독자에 의해 새롭게 해석되고 구성될 테지만, 글쓴이로서는 제 글들이 <좋은 생각>처럼 힐링을 전하는 ‘미담’으로 읽히진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미담이 무용하다거나 가볍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고, 다만 이 책에서 지향하는 바와는 가장 거리가 먼 단어라 생각되어서요. 저는 남달리 선한 사람도 아니고, ‘선의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지거나 선함의 효용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어요. 특별히 선량하지 않은 누군가가 무심코 건넨 미소한 한 줌의 호의, 학생 시절과 그 이후 저의 ‘홀레 아주머니’들이셨던 선생님들께 받은 이해의 선물, 자신의 결점을 통해 타인의 빈틈을 알아보고 다정한 눈길을 보냈던 순간, 세심증을 앓던 기억, 이런 걸 포착하고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오십여 편의 이야기들 가운데 꼭 소개하고 싶은 에피소드를 하나 고르는 것은 마치 “위그든씨 사탕가게” 진열대에서 사탕과자 고르는 것처럼 어려운데요.(웃음) 읽고 쓰고 공부하고 가르치는 제 일상에 착안한 에피소드들이 주를 이루는지라 <교수신문> 독자분들의 내면에서 어떤 기억을 길어 올리는 데에 쓰임을 가졌으면 해요. 그 가운데서도 제2장에 수록된 「길게 내다봤을 때 축복인 지금」을 고르고 싶습니다. 가까스로 공부를 한 단계 진전시키고 그걸로 칭찬 좀 들으면 마음이 고래처럼 춤추었던, 그렇게 잠시 풀어져 있다 정신 차려보니 어느새 다시 두 단계 내려가 있던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운 고백이지만요. 페이퍼 쓴 후 혹평 받고 자책했던 순간이 길게 내다봤을 때 축복이었던 경험을 함께 나누었으면 합니다. 

△<교수신문> 독자분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씀해달라. 

앞서 말씀 주신 것처럼 저는 법철학을 전공했고, 지금은 ‘법과 사회적 기억의 구성’이라는 주제로 역사왜곡 규제화 등 ‘법을 동원한 기억전쟁’을 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전공학술서가 아니고, 제가 공부해온 바를 대중적으로 풀어낸 교양서도 아니에요. 연구자가 연구서 아닌 성격의 책을 낸다는 게 조심스럽고 겁이 나서 한참 동안 주저했는데요. 이 글들이 세상 누군가에게 닿아 나름의 미소한 쓰임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하여 용기를 내었습니다. <교수신문>을 읽으실 선생님들께 『별것 아닌 선의』가 읽히고, 그분들이 책 페이지를 넘기다 어느 구절에선가 자신의 삶에 누군가가 새겨넣었던, 혹은 누군가의 삶에 자신이 선물해주었던 반짝이는 한 순간을 복기할 수 있다면 참 기쁠 것 같습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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