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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성의 극치 수학사, 스스로 불완전함을 드러내다
추상성의 극치 수학사, 스스로 불완전함을 드러내다
  • 김재호
  • 승인 2021.06.28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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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읽기_『수학의 모험』 이진경 지음 | 생각을말하다 | 364쪽

 

근대과학의 아버지는 갈릴레오 아닌 페레그리누스

수학의 질서 찾으려는 갈망을 종교로까지 확대

철학자 이진경이 서구 근대 수학사를 파헤쳤다. 이 책은 이슬람의 알 콰리즈미의 『인도 숫자에 의한 계산』(825) 등이 등장하긴 하는데, 주로 서구의 수학자들 위주로 쓰였다.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사회학) 교수는 진리 게임이라는 수학의 정의부터 시작한다. 수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 교수는 일정 규칙에 따라 반박·계산·모델링 하는 게임이라고 설명했다. 그 규칙을 의심하고 비판한다는 점에서 수학은 자유롭다. 

재밌는 한 예를 보자. “한국에 공룡이 있다면 π는 무리수이다.” 수리논리학에서 이 명제는 참이다. 전제가 거짓이기 때문이다. 명제는 참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는 문장이다. 일생 생활에서 전혀 의미가 없는 문장은 왜 진릿값을 갖는 명제가 됐을까? 이 교수는 “그건 수학자들이 오직 참인가 거짓인가만을, 적어도 누가 보아도 참·거짓을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가 아닌가만을 ‘의미 있는’ 문장의 자격 조건으로 여기기 때문이다”라고 적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에 공룡이 있다면 π는 유리수이다”라는 명제를 보자. 이번에도 전제가 거짓이라서 이 명제는 참이다. 수리논리학에서 전제가 거짓이라면, 그 명제는 결론의 참·거짓 여부와 상관없이 참이다. 예를 들어, “내가 고양이라면 해는 서쪽에서 뜬다.” 혹은 “내가 고양이라면 해는 서쪽에서 뜨지 않는다.” 이 두 명제는 모두 참이다. 전자는 거짓이라는 전제에서 거짓 결론을 이끌어냈으니 참이다. 전자의 대우명제는 “해가 서쪽에서 뜨지 않으면 나는 고양이가 아니다”가 된다. 후자의 대우명제는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나는 고양이가 아니다”이다. 후자는 거짓이라는 전제에서 참인 결론을 이끌어냈으니 참이다. 범인의 거짓말 가운데 진실을 파헤치는 형사의 경우다.  

반대로 수리논리학 게임을 해보자. 그땐 결론이 참이면 그 명제는 전제가 참·거짓이든 상관없이 항상 참이다. 예컨대 “모든 수학 이론이 참(혹은 거짓)이라면 π는 무리수이다”라는 명제는 결론이 참이기 때문에 전제와 상관없이 참이다. 이에 따라 이 교수는 “수학적으로 참인 모든 명제에 대해 모든 수학 이론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아무런 상관없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라며 “수학의 모든 이론이 수학적 진리와 무관하다는 것의 수학적 증명”이라고 밝혔다.  

한편, 근대 과학혁명은 실험과학과 자연을 수학화하며 급진보한다. 실험과학 하면 갈릴레오(1564∼1642)를 떠올릴 법한데, 이 교수는 13세기 프랑스 학자 페트루스 페레그리누스를 언급했다. 페레그리누스는 『자석에 대한 편지』(1269)에서 선구적으로 근대적 실험을 했다. 막대자석을 잘라서 N극과 S극이 있는지, 자석을 둥글게 해도 극성이 유지되는지 등을 알아본 것이다. 

수학의 초상화들은 숫자와 기호, 형태 등으로 추상화된다. 예를 들어 △정확하게 치밀한 계산가 △기호로 진리에 접근하고자 했던 버트란드 러셀(1872∼1970)과 화이트헤드(1861년∼1947) 같은 논리실증주의자들 △수로 등가관계의 추상을 밝혀 사회적 차원에서 혁명적으로까지 접근한 이들 △모양의 추상화로 차이를 구분한 이들(위상수학) △일대일 대응으로 무한을 파헤치려한 집합론 창시자 칸토어(1845∼1918) △프랙털 기하학의 카를 멩거(1902~1985) 등. 이 교수는 이런 수학의 초상화들이 “극한적인 상상력으로 새로운 형태와 관계를 찾아내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수학적 추상화의 작업은 공통성 찾기와 변환하기(기하학을 대수화하기 등) 두 종류가 있다. 

『수학의 모험』 에는 정약용, 독일 작가 케스트너의 글, 영화 「원초적 본능」(폴 버호벤 감독, 1992)과 그림 「셀레베스의 코끼리」(막스 에른스트 화가, 1991), 「붉은 탑」(로베르 들로네 화가, 1911) 등 다양한 사례가 수학과 연결된다. 가장 흥미로웠던 건 불교 경전에 나오는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이다. 이 주문의 뜻은 “수의 법칙이여, 수의 법칙이며, 위대한 수의 법칙이여, 이제 이 수많은 수의 법칙들이 저 사바 세계를 넘쳐 흐르리라”이다. 수학적 질서를 찾으려는 인간의 갈망은 과학뿐만 아니라 종교적 의미도 갖는다. 무한자를 꿈꿨던 칸토어나 우주의 운행을 수학으로 밝혀내려 했던 케플러(1571~1630) 등이 그런 예이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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