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1-11-29 14:17 (월)
‘참여식’ 교육을 배웠던 독일 생활…귀국후 ‘원탁토론 운동’을 시작했다
‘참여식’ 교육을 배웠던 독일 생활…귀국후 ‘원탁토론 운동’을 시작했다
  • 강치원
  • 승인 2021.06.29 08: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치원의 ‘원탁토론 운동 30년, 내가 얻은 교훈 그리고 미래 교육’③

1990년대 초반 하이델베르크대학 객원교수로 가족들과 함께 독일에 체류한 적이 있다. 자녀들을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보내면서 수업시간에 있었던 이야기를 듣고 문화충격을 받았다. 당시 한국의 교육과는 전혀 달랐다. 큰 아이 표현이다. “독일 교육은 학생들이 직접 해보게 해요.” 수업은 실습, 발표, 질문과 대답 등의 참여식이었다. 

그리고 철저한 과목별 파일 관리였다. 독일은 교사 주도 수업이어서 수업시간 마다 유인물을 나누어 준다. 예컨대 국어 유인물은 국어 파일에 정리해야 한다. 작은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 아이들이 놀이터 모래밭에서 음악수업을 하고 있었다. 선생님과 함께 물병에 물을 담아 도레미파솔라시도 음계 만드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아, 이게 참여식이구나!” 

대학수업은 강의(Vorlesung), 세미나(Seminar), 콜로퀴움(Colloquium) 등 3가지로 나뉜다. 대학생들은 한 학기에 보통 세미나 두 개 강좌를 이수한다. 기말과제는 많은 독서와 독창성을 요구하기에 세개 강좌를 이수하기가 어렵다. 세미나는 발표와 질문 중심이다. 교수가 말하고 있는 중이라도 수강생들이 검지 손가락을 들어 의견을 말할 수 있다. 강의를 듣는 이유는 단지 세미나 학점을 이수하는 데 도움을 얻기 위해서다. 그래서 출석점검이 없다. 강의는 일반인이나 은퇴한 교수 출신들도 와서 듣는다. 콜로퀴움은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 중인 연구자가 지도교수와 동료 연구자들 앞에서 발표하고 토론하는 시간이다. 독일 박사과정은 커리큘럼이나 학점 이수가 없다.

객원교수로 해외 나갈 준비를 하면서 우리 자녀들 영어공부를 위해 미국 대학으로 갈까 고려했었다. 그러나 독일로 가기로 결정한 것은 전공과 더불어 ‘사회적 시장경제’를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가족과 함께 한 독일 체류는 나의 교육철학과 교육방법론을 정립하는 데에 큰 도움을 주었다. 

90년대 중반부터 시작한 ‘원탁토론 운동’

귀국한 후 1990년대 중반부터 펼친 것이 원탁토론 운동이다. 찬반토론이 아니고 토의형 토론으로서 토의에서 논쟁을 거쳐 토의로 나아가는 형식이다. ‘제1회 전국 고등학생 환경 논술토론광장’을 주최하고 진행했다. 수상자들에게 상금을 수여했는데, 당시 한국기자협회장 친구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원탁토론 운동의 시작이다. 당시 모든 신문들이 대입 논술시험으로 장사를 하고 있을 때다. 그때는 ‘토론’이라는 단어를 신문에서 찾기가 어려웠다. 나중에 ‘고교생, 학부모, 교사 원탁토론광장’은 2박 3일씩 보름 간격으로 두 차례에 걸쳐 연수한 후 최종 원탁토론 광장을 여는 행사였다. 원탁토론 광장은 그룹토론과 패널토론을 반복 훈련한 후 최종 패널토론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고교생 행사는 여름방학 중에 열었다. 숙식 연수 장소를 구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나중에는 겨울방학 중에 중학생 행사, 가을 학기 중에 대학(원)생 행사, 봄 학기 중에 초등학생 행사 등으로 확대했다. 모든 열정을 쏟아 부었다. 수많은 학생, 학부모, 교사, 교수들을 만났다. 

2003년 6월, 제1회 원탁토론 한겨레 만민광장을 주최했다.  사진=강치원

토론운동으로 구체화된 ‘서울대와 미국 문제’

당시 나의 두 가지 문제의식은 토론운동으로 구체화되었다. 하나는 서울대 문제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현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 교수연구자 협의회의 전신) 교육위원장을 맡았다. MBC TV 일요광장 좌담 출연 다음날 <월간조선>에서 전화가 왔다. 1998년 5월호 <월간조선>에 ‘대학의 자율화는 서울대 문제를 해결해야 가능하다’는 장문의 글을 싣게 되었다. 이른바 ‘신서울대폐교론’이란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서울대를 폐교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다만 대학 간 공정한 경쟁을 가로막는 장애를 지적하였다. 당시 ‘서울대학교 설치령’이 문제라고 보았다. 예컨대 경북대나 전남대는 ‘국공립학교 설치령’에 따르고 있었다. 서울대만 대학이고 다른 대학들은 대학도 아니고 학교란 말인가? 서울대의 문제는 요즘도 마찬가지다.  

다른 하나는 미국 문제다. 대미관계 불평등 못지않게 우리에게 내재된 미국적 사고방식을 극복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2000년도 제1회 학술 심포지엄,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미국 :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주최하고 진행했다. 3일간에 걸쳐 수십 명의 교수들이 발표하고 토론하는 거대한 자리였다. 그렇게 해서 2000년 12월 두 권의 책이 백의출판사를 통해 출판되었다.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와 『세계화와 한국사회의 미래』다. 

이때부터 조금씩 일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중앙공무원교육원(현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의 전신) 등에 강의를 나갔다. 교통방송 아침 시사 프로그램 ‘강치원의 굿모닝 서울’, 여러 케이블 TV 토론 프로그램 등을 진행했고, 한겨레신문사 문화센터에서 토요일마다 토론강좌를 열었다. 방학 중에는 교수, 교사, 학부모, 학생 등으로 구성된 유럽 답사토론 여행을 추진하여 독일, 프랑스, 스웨덴 등의 학교를 탐방했다. 2006년부터 2007년까지 2년 정도 <중앙일보> 좌담토론 ‘논쟁과 대안’을 매주 진행하면서 국회의원, 교수 등 전문가를 많이 만났다. 그 때 ‘강치원의 토론 이야기’를 20회 정도 연재했다. <중앙일보>에서 『대한민국 논쟁과 대안』을 출판했다.(계속)

2009년 5월에 진행한 중앙일보 토론회 모습. 사진=강치원
2009년 5월에 진행한 중앙일보 토론회 모습. 왼쪽에서 세번째가 강치원 교수다. 사진=강치원

 

강치원 호서대 특임교수 / 원탁토론아카데미 원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