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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보다 결과인가?
과정보다 결과인가?
  •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
  • 승인 2021.07.02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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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_신희선 숙명여대 교수 (기초교양대학)

공정이 화두인 시대, 평가 부담이 늘어나
비대면 수업으로 높은 학점을 위한 경쟁 과열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 정치학 박사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 정치학 박사

‘학점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있다. 코로나19로 많은 대학들이 상대평가 등급 비율을 완화하거나 절대평가로 변경한 결과 B학점 이상을 받은 학생들이 늘었다고 한다. 성적의 정규 분포상 A학점은 적은 비율인데 이 경계가 무너지면서 코로나 이전 세대들과 비교해 볼 때 학점이 상향평준화되고 있다. 다른 대학은 성적을 잘 주고 있는데 우리 학생들만 낮은 학점으로 취업 시장에서 불리할까 싶어 높은 학점을 주었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한 학기동안의 학습 활동이 결과로 드러나는 시기, 학생들은 자신이 수행했던 실제보다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경우가 많고, 교수들은 학생들의 성적을 매기면서 공정하고 타당하게 평가하는 부담이 적지 않다. 성적에 대한 이의신청을 하는 학생의 메일을 받으며 문득 대학 교육에서 ‘평가’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된다.

높은 학점을 위한 경쟁이 학생들의 대학생활을 짓누르고 있다. 학점이 후한 과목에 수강신청이 몰리고 온라인 수업도 실시간보다 몰아서 들을 수 있는 동영상을 선호한다. 학습공동체 안에서 교수와 동료학생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보다 학점을 잘 주는 ‘널널한’ 수업이 우선 순위가 되고 있다. 수강포기 기간에 학원 수강을 끊듯이 낮은 학점이 우려되는 수업은 버려버리고, 학점 상향을 위해 의도적으로 기말고사를 보지 않거나 과제를 제출하지 않는 방식으로 ‘재수강’을 전략적으로 선택하는 경우가 늘었다 한다. 성적이 복수전공, 교직과목 이수, 교환학생, 대학원 진학에 접근하는 기본 값이기에 학점 관리는 1학년 때부터 해야 된다는 성적 담론이 캠퍼스를 지배하고 있다. 

‘공정’이 화두가 되고 있는 시대, 비대면 교육 상황은 평가를 더 어렵게 한다. 강의실이라면 자연스럽게 반짝이는 눈빛과 수업에 임하는 태도만으로도 참여도를 판단할 수 있었지만, 온라인 환경에서 학생들의 관심과 참여는 클릭 수로 파악된다. 학생들의 학습 활동을 정량적으로 기록한 데이터가 보조 역할을 한다. 온라인 강의실에서 ‘학습이력현황’이 학생들의 참여 정도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객관적인 지표로 작용한다. 수업 전에 올려놓은 자료를 꾸준히 살펴보았는지 ‘보기’를 통해 체크하고, 학생들이 과제를 제출하고 동료피드백을 수행했는지 ‘쓰기’와 ‘댓글’ 기능을 통해 비교해 보는 것이다. 그러나 숫자로 된 지표가 학생들을 객관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학생들이 느낀 교육적 효용성과 만족감, 가치를 온전히 살펴보기 위해서는 성적 평가의 잣대가 다양할 필요가 있고 방식도 변해야 한다. 

‘교수’보다 ‘학습’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한 두 번의 시험과 과제로 끝나는 평가가 아니라 세부 평가항목을 통해 매주 수업활동을 독려하는 ‘과정’중심의 평가가 필요하다. 겉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탐구의 과정, 질문의 시간을 지나며 학습내용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도록 돕는 평가가 필요하다. 탄탄하게 다지는 과정이 생략된 결과는 갑작스레 무너질 수 있는 건물과 같다. 학생들이 기계적인 학습이나 학점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자신의 학습과정을 돌아보며 스스로 학습경로를 만들어가도록 ‘포트폴리오(portfolio)’를 평가하는 방법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수업 주제와 관련한 자료를 스스로 찾아보고 공부한 내용을 모듈별로 정리해 가며, 한 학기 동안 무엇을 배웠는지 자신의 삶에 어떤 점을 적용하고 싶은지 ‘성찰일지’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학생이 주체가 된 성장의 서사를 써 가도록 하는 것이다. 

대학은 학점이 아니라 사람이 남는다. 대학생활을 잘 한다는 것은 좋은 학점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성적표의 숫자가 아니라 다양한 체험을 하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선후배, 동료, 스승을 얻는 것이 더 중요하다. 비대면 수업으로 깊이 있는 만남이 어려웠다면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학생들이 언제 어디서나 배움을 찾아 공부하는 습관을 키워가도록 도와줄 필요가 있다.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유령이 대학 캠퍼스를 배회하고 있지만, 인생의 답은 한 발 한 발 내딛는 과정 안에 있다. 이제 긴 방학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을 탐색하고 도전해 보는 ‘시간의 주인’이 되도록, 그 과정을 통해 주도적이고 책임감 있는 어른으로 성장해가도록 결과 중심의 평가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다.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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