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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찰적 근대성’과 디자인
‘성찰적 근대성’과 디자인
  • 최 범 디자인 평론가
  • 승인 2021.07.08 08: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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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파노라마⑦ 최범 디자인 평론가]

‘모던’에서 ‘포스트모던’으로 이어진 디자인 흐름
대중적 욕망과 취향 존중하면서 지속가능함을 추구

 

이탈리아의 에토레 소트사스가 디자인한 책장(1981). 대중적 취향과 유머 감각이 넘친다.
이탈리아의 에토레 소트사스가 디자인한 책장(1981). 대중적 취향과 유머 감각이 넘친다.

1933년 독일에서 나치가 집권하고 바우하우스가 문을 닫았다. 1934년에는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공식 미학으로 채택되면서 아방가르드가 숙청을 당했다. 이렇게 1930년대 유럽에서 모던 디자인은 축출되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모던 디자인이 세계화되는 역설적 결과를 빚었다. 

특히 모던 디자이너들이 많이 건너간 미국에서 근대건축은 국제주의 양식(International Style)이라는 이름으로 뿌리를 내렸다. 구대륙에서 좀처럼 실험 기회를 얻지 못했던 근대 건축가들은 신대륙에서 자신들의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바우하우스의 설립자이자 초대 교장이었던 발터 그로피우스는 하버드대학에서 디자인을 가르쳤고 마지막 교장이었던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는 뉴욕의 UN본부 빌딩을 설계했다. 이러한 유럽 건축가들의 침공(?)에 대해 미국판 민중미술 평론가라고 할 수 있는 톰 울프는 『바우하우스에서 오늘의 건축까지(From Bauhaus to Our House)』에서 이들에 대한 미국인의 숭배를 열등감의 표출이라면서 비판했다.

물론 미국으로 건너간 모던 디자인은 많은 부분 그 전위성과 실험성을 상실하고 변용되어야 했다. 미국에서는 이미 모던 디자인과 장식미술의 결합인 아르데코(Art Déco)가 번성했고 이것이 미국식 진보의 이미지를 담당하고 있었다. 원래 사회주의와 친화성을 가진 모던 디자인은 신대륙의 자본주의와 결합해야 했다. 이를 배신이라면서 모던 디자인의 대의를 끝까지 지키고자 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세는 이미 기울어진 상태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모던 디자인에 치명타를 가한 것은 ‘미국적 삶의 방식(American Way of Life)’의 세계화와 소비사회의 도래였다. 이런 현실에서 금욕적이고 절제된 모던 디자인의 교리는 설자리를 잃게 되었다.

포스트모던 디자인의 전개

포스트모던 디자인은 모던 디자인의 퇴조 이후에 등장한 다양한 경향들을 총칭하는 것인데, 크게 세 가지 흐름을 살펴보도록 하자. 하나는 대중주의(Populism)이다. 대중주의는 말 그대로 모던 디자인의 금욕주의를 넘어서 대중적 욕망과 취향을 존중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포스트모던 디자인의 대중주의는 분명 모던 디자인의 엘리트주의에 대한 반발이기도 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소비사회에의 투항이라는 성격도 띠는 것이다. 물론 오늘날 디자인을 소비사회의 삶과 분리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지만 말이다.

둘째는 역사주의(Historicism)이다. 역사주의는 모던 디자인의 반역사주의에 대한 반발로 과거의 양식들을 다시 호출하는 것이다. 모든 시대는 현재만이 아니라 과거가 공존한다는 면에서 맞는 것이기는 하다. 다만 모던 디자인의 반역사주의에는 과거의 부정적인 면과 단절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과 디자인을 창출하기 위한 측면이 있었다는 것도 잊으면 안 된다. 그 또한 그 시대의 사명이었던 것이다.

셋째는 대안적 디자인(Alternative Design)이다. 이는 산업화가 낳은 소비주의와 환경 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으로 ‘소박한 삶’과 ‘지속가능한 디자인’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현대 소비사회의 결을 거스르는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 세계를 위한 디자인(Design for Real World)』을 쓴 미국의 디자인 교육자인 빅터 파파넥이 이러한 경향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포스트모던과 ‘성찰적 디자인’

포스트모던이란 말 그대로 ‘포스트(post)’를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서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그것은 ‘후기(late)’일 수도, ‘반대(anti)’일 수도 심지어는 ‘초월(ultra)’나 ‘대안적(alternative)’일 수도 있다. 이처럼 포스트모더니즘은 하나로 묶을 수 없는, 모던에 반하거나 넘어서려는 다양한 노력들의 다발이다. 모던이 일원적이라면 포스트모던은 다원적이다. 하지만 오늘날 포스트모던에 대한 이해는 모던의 한계와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로서, 모던과의 단절이라기보다는 여전히 모던의 영향력 내지는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는 관점이 우세하지 않나 싶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성찰적 근대성(reflexive modernity)’으로 볼 수 있으며, 포스트모던 디자인 역시 ‘성찰적 디자인(reflexive design)’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최 범
디자인 평론가. 

디자인을 통해 사회를 읽어내는데 관심이 있으며, 특히 한국 디자인을 한국 근대의 풍경이라는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평론집 <한국 디자인 뒤집어 보기> 외 여러 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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