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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의 문화등반 16] 나는 불안하다, 고로 존재한다.
[한민의 문화등반 16] 나는 불안하다, 고로 존재한다.
  • 한민 문화심리학자
  • 승인 2021.07.05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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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의 '불안' 사진=위키피디아

불안은 행복에서 가장 먼 감정 중 하나다. 불안은 자신의 존재를 위협받을 때 나타난다. 현대 한국인들에게 있어 존재를 위협받을 만한 위험은 ‘변화’였다. 인류의 역사상 가장 많은 변화가 있었고 또 앞으로 있을 것이다. 그 중 으뜸은 아마도 한국일 것이다. 한국사회는 서구사회가 200년 이상 걸쳐 이뤄온 변화를 5,60년 동안 따라잡아 왔다. 현재 생존해 있는 노인세대들이 태어나고 자랄 때만 해도 한국은 농경사회였다. 5,60대가 사회에 발을 내딛던 때는 개발이 한창인 산업시대였지만 20대가 사회에 진출하고 있는 현재는 4차산업혁명이 진행 중이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근현대의 빠른 변화에 잘 적응해 온 듯하지만 이는 내면적으로 극심한 불안을 견뎌낸 결과였다. 그리고 그 불안의 크기는 점차 임계점을 넘고 있다. 사회의 불안수준이 높아지면 사람들은 변화를 두려워하게 된다. 지금도 어렵게 유지하고 있는 나의 일상이 언제 붕괴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변화가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적응이다. 새롭게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곧 사회에서의 도태를 뜻한다. 이것이 현대인들이 갖게 되는 가장 큰 불안이다. 이러한 불안은 사회적 인정욕구 및 우월감의 욕구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도태될지 모른다는 불안을 없애기 위해 사람들은 우선, 다른 이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 노력한다. 여기서 다른 이의 기준은 대개 사회에서 성공한 이들이 된다. 누군가 부동산으로 돈을 벌었다면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사고 누군가 코인으로 돈을 벌었다면 결혼자금까지 싸들고 코인판에 뛰어드는 것은 불안하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 년 간 눈부셨던 한국의 성장은 변화로 인한 불안을 회피하고자 했던 한국인들의 욕구에 도움받은 면이 크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불안을 해결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현대의 20대는 과거의 20대들이 들였던 노력의 몇 배를 기울이지만 그들이 얻을 수 있는 부와 성공의 기회는 과거와 같지 않다. 

이러한 현상이 지속되면 변화를 거부하는 움직임이 나타난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나면서 나타난 여성혐오, 동성애와 같은 새로운 가치의 등장으로 인한 동성애혐오, 다문화사회로 접어들면서 보이기 시작하는 인종혐오 등은 그러한 불안의 결과들이다. 최근 부쩍 늘어난 사회적 혐오의 이면에는 변화된 사회에서의 도태를 두려워하는 이들의 내적인 불안이 있다. 즉 혐오는 불안을 해결할 대상을 찾지 못하거나 그것과 직면하기 두려운 이들이 선택한 방어기제, 전치다.

현대인들의 불안은 빠른 속도로 변해가는 사회에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하는 절박함에서 비롯된다. 대개의 사람들에게 불안은 큰 고통이지만 한편으로 삶을 이어갈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불안해지면 우리의 몸과 마음은 예상되는 부정적 결과를 방지하거나 회피하도록 준비태세를 취하는데, 이를 ‘투쟁-도주 반응’이라 한다. 불안을 느끼고 이에 대해 반응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생존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유난히 적대적인 사람이나 집밖에 나서질 않을만큼 소심한 사람의 내적 동기는 사실상 같을지 모른다. 

불안을 느낀다는 것은 그만큼 생존의 욕구가 강하다는 뜻이다. 생존의 욕구는 중요하다. 살아 있어야 행복도 느낄 일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불안을 어떻게 해결하느냐다. 심리학자이자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실존적 불안이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실존이란 주체로서의 삶이다. ‘살기 위해 사는’ 것도 아니고 ‘살아지니까 사는’ 것도 아닌 살아야 하는 이유와 목적을 갖고 그것을 향해 가는 삶이 진정한 나의 삶인 것이다. 

그러기에 실존을 위해서는 많은 고민이 필요하고 여기에서 불안이 온다. 불안을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바람직하지 못한 방식으로 해결하려면 개인의 병이자 사회적 문제가 되지만, 나의 불안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이해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그 불안은 실존적 불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민 문화심리학자

문화라는 산을 오르는 등반가. 문화와 마음에 관한 모든 주제를 읽고 쓴다. 고려대에서 사회및문화심리학 박사를 했다. 우송대 교양교육원 교수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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