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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 ‘교연학’을 탄핵한다
국립대 ‘교연학’을 탄핵한다
  • 한명숙
  • 승인 2021.07.05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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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한명숙 논설위원 / 공주교대 국어교육과 교수

 

한명숙 논설위원/공주교대

교수는 교육과 연구로 인재 양성과 학문 탐구에 종사하는 직업이다. ‘학이시습’의 길에 입문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지속적인 연구 업적을 쌓아 대학 교원으로 초빙된 후 전문 분야의 교육과 연구에 집중하는 삶을 산다. 자주와 자율, 자유와 진리를 추구하며, 지식의 양식을 청춘 대학생들과 나누는 사제동행, 교학상장의 직분을 자족한다. 학식과 지성 사이, 최고의 전문성과 고지식한 무능 사이에 개개의 스펙트럼으로 산재한다. 

교수의 가치는 강의와 연구에서 얻는 희열과 보람으로 대기업 과장급의 복지나 연봉에 못지않다. 선비 정신도 학자 의식도 ‘성과급적 연봉제’의 ‘S, A, B, C’와 바꾸지 않는다. 국가가 가난하던 시절에 대학 재정을 충당했던 기성회비의 급여성 보수는 당대의 이념이다. 2013년의 기성회비 위헌 승소 판결 전이다. 사립대학교는 일찍이 기성회비 징수를 없앴으나, 국립대학 교수는 기성회비 폐지로 급여 일부를 잃었다.

보수의 충당은 기괴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일명 ‘교연학’이다. 교육, 연구, 학생 지도로 나눈 직무 범주에 개별적 성과를 매겨 ‘교연비’로 차등 지급하는 제도다. 일부 사립대학 교원의 봉급이 지식인의 역량을 헐값에 떨어뜨리듯, 국립대학 교수들은 ‘교연학’ 제도가 가하는 고충에 시달린다. 이 지경에 이르게 된 사회의 신뢰와 국가의 신망을 주시한다. 대학의 기능, 상식과 품위, 정의와 민주에 균열을 일으키는 이율배반이 초췌하다.

‘교연학’은 대학교수가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역량을 침해한다. 해마다 수십 장의 계획서와 보고서를 작성하느라 시간과 심력을 허비한다. 행정력을 소모하고 인력을 마모하는 과부하의 시공을 만든다. 새로운 강의 자료를 개발하고, 연구 결과를 학회에 발표하며 논문으로 작성할 시간을 빼앗는 폭력이다. ‘거인의 어깨’도, ‘더 넓은 세상’도 멀어진다. 지성인의 자존감과 사회에 이바지하는 자부심에 상해를 입혀 긍지를 깎아내고 존엄을 무너뜨린다.

학생 지도 문서는 극한 폐단이다. 학생을 보호하고 신성과 엄중을 지키려는 신념은 부당 취득의 감사 대상이 된다. 선정성의 근시안 언론에 매도와 뭇매를 당한다. 학문의 전당에서 나누는 인격적 소통의 유린이 일어난다. 사제 간의 교류를 와해시키는 괴물이다. ‘득천하영재교육’의 세상을 소명해야 하는 참사에 ‘교연비’를 버리는 비극이 발생한다.

‘교연학’ 제도가 만드는 현실은 펜로즈 삼각형의 비현실적 왜곡이다. 실상과 이상의 괴리를 강화하는 역변이다. 교수들에게 면역과 적응의 심적 고통을 안겨 정신적 에너지를 갉아먹는다. 창조적인 사고 활동을 간섭하고 옭아매 해를 끼친다. 교육과 연구를 압박하고 위협하여 호기심과 탐구 체질의 변이를 일으킨다. 교육력 성장의 잠재성을 부수고 연구력 장성의 가능성을 깨뜨린다. 전문성을 축적하며 학문의 길을 가는 시간과 역량의 훼손과 수탈이 일어난다.

국정 농단처럼 나타나 대학교수를 피폐케 하고 대학 사회를 병들게 하는 ‘교연학’을 더는 방치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성과급적 연봉제’와 함께 징벌성과 상호 약탈성이 이중으로 작동하는 보수 체제가 국립대학의 발전과 번영을 가로막을 우려를 직시한다. 도를 넘는 ‘교연학’의 죄상을 밝혀 처벌함으로써 교육과 연구를 보호할 필요성이 상당하다. 무력해진 교수를 감독할 수단으로 지속하기에 실익이 없고 대학 사회에 가해지는 피해와 손실이 막대하다. 

국립대학교의 ‘교연학’을 탄핵한다. 국가는 헌법 제31조 제4항이 보장한 교육의 전문성과 대학의 자율성을 회복한다. 교수의 기본권을 복원하고 연구 풍토를 되살리도록 직무를 보호하며 제도를 보완한다. 대학이 자주적 교육과 자율적 연구로 사회와 인류에 이바지하도록 ‘국립대학법’을 제정하고 관계 법령을 정비한다. 국가 고등교육과 미래 학문 부흥을 위한 지원체제를 구축한다. K-아카데미 세계 건설을 추진한다.

한명숙 논설위원
공주교대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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